에드가 드가(클래식 클라우드 #024)

이연식

아르테/ 228p 


"우아한 아름다움은 평범한 속에 있다"

 

    19세기 파리는 인상주의의 요람이었다. 드가, 마네 등을 중심으로 하는 몇몇 작가들의 관습과 형식에 메이지 않는 직관적인 시도로서 탄생한 인상주의가 19세기 미술사의 주류로 규정되어 버렸다.


    드가가 살았던 19세기 프랑스는 여러 차례의 혁명과 소요와 전쟁 그리고 기술의 발전과 사회의 갈등 등을 경험했고 그에 따라 예술적 생태계도 커다란 변화를 겪는다.

    1871 최초의 사회주의 정권인 파리코뮌이 성립되었으나 베르사유 공화정부에 의해 퇴출된다. 전쟁과 내전을 겪으면서 경제적으로 위축된 위기에 살롱은 더욱 보수적으로 변해 갔으며 작가들은 보수적으로만 치닫는 미술계에서의 활로를 찾는 일환으로 '무명의 화가, 조각가, 판화가 협회' 출범시켰으며 전시회에서 어느 기자의 비꼬는듯한 혹평에서 '인상주의'라는 이름이 부여된다.

    1874년에 이들의 첫번째 정식 인상주의 전시회가 열렸다. 물론, 드가의 주도에 의해서였다.

 

 

    눈은 바깥세상보다 느리고, 손은 그런 눈보다 느리다.

    [P.014]

    드가는 순간을 깊이 의식했기에, 순간을 그릴 없다는 또한 깊이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 그는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은 화면을 만들어 냈다. 역설적이다.

    [page.169]

 

    화가들은 누구나 순간을 포착하려 했다. 하지만 순간 순간이고,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순간에 담기지 못한다. 드가역시 시간과 움직임이라는 개념에서 많은 고민을 하였다.

    19세기 중반부터 사진은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으며 탄생은 미술의 흐름을 결정적으로 틀어놓았다. 일단 초상화 고객 대부분을 잃어버린 것이다.

    드가는 사진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가졌었다. 시간과 움직임과 캔버스의 함수관계를 파고들고 싶었으리라. 훗날 드가는 사진을 작품으로 남기기도 하였지만, 초기에는 구도와 순간적 사실, 특히 그가 즐겨 그렸던 승마와 발레등 움직임과 관련된 작품활동의 보조수단으로 활용하였다.

움직임이라는 것은 시간의 연속성이며 캔버스는 모든것을 한정적으로 제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가는 일상 생활과는 달리 작품활동에 있어서는 형식과 틀을 벗어나고자 ...했다.

사진외에도 석판화(모노타이프) 심지어 조각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많은 작품을 남겼다.

 

    모노타이프는 석판에 붓으로 그림을 그린후 종이에 다시 찍은것으로 판화이면서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회화였다. 그는 일단 찍어낸 손가락으로 뭉개고 닦으면서 변화를 주었고, 때로는 파스텔로 덧칠하기도 했다.

     그는 조소작업도 했던것으로 알려진다. 1881 여섯번째 인상주의 전시회에 조각품 <열네살의 어린 발레리나> 출품하기도 했다.


  • 인상주의의 안식처 오르세미술관 

과거 오르세 (Gare d'Orsay) 역사건물을 개조하여 1986 미술관으로 재탄생하였다. 19세기 작품들을 주로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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