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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공가의 행운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길(도서출판) / 2024년 12월
평점 :
도시 플라상 외곽의 공터 에르 생미트르.
모든 죽음을 삼켜버린 죽은 자들의 묘지였던 땅.
개발로 인해 죽음은 파헤쳐지고, 남겨진 공터에는 죽은자들의 호흡... 그 마지막 날숨의 소리만이 나즈막히 지면의 수풀에 닿는 땅.
젊은 연인의 숨결은 피로 스며들고, 땅은 붉음으로 물들어 가는 역사의 분철된 한 단면을 읽습니다.
실베르, 미예트 젊은 연인의 약속은 그렇게 피로써 죽음으로써 하늘을 바라보았고, 또 땅을 바라보았으며 하늘과 땅은 연인의 죽음을 품어 주었습니다.
혁명의 붉은 깃발에 앞서는 자, 숨는 자, 버티는 자, 이기는 자, 피로 물든 죽음의 도시에서 살아남아 권력과 재물의 운을 얻게 되는 피에르와 펠리세테 부부,
사랑이라는 회오리 바람 속에 움츠려 있는 아델라이드 부인에게서 사랑과 죽음은 그녀에게 들어온 자와 나아간 자는 하나의 줄로 이어져 그녀를 올가미에 걸린 영혼이 되게 하였습니다. 핏줄이라는 올가미에 걸린 여인. 그녀가 사랑한 이들의 죽음으로 그녀의 죽음은 사랑의 또 다른 모양이었지 않는가 싶습니다.
아델라이드와 루공, 아델라이드와 마카르에게서 태어난 피에르 루공 , 앙투안, 위르쉴. 서로 엉켜버린 정신과 신체, 그들의 관계는 이후 세대의 삶을 옭아매어 버리고...이 모든 시작이 되는 이 첫번째 책에서 고단한 세월의 바람을 맞아 풍화되어 가는 한 집안의 이야기는 오늘날 저마다의 행복과 불행에 환칠된 가족들의 이야기, 도시의 이야기를 겹쳐 보게 됩니다.
저물어 가는 숲의 어둠 속에서 늙은 늑대는 길을 잃은 먹이감을 노리고, 도시의 달그림자 속에서 피로 물들인 죽음들을 먹음으로 실세가 되는 과정은 인간의 욕심이 자라난 열매는 결국 조카(실베르)의 죽음과 어머니(아델라이드)의 죽음(실제 소설에서는 그녀의 죽음은 나오지 않습니다....)
이 소설의 의미는 소설 속 피에르의 둘째 아들 의사인 파스칼의 시선으로 보게 됩니다.
"그는 한 가족의 성장과 하나의 몸통에서 다양한 가지가 뻗어 나오는 광경을 떠올렸다. 나무의 씁쓸한 수액은, 어둠과 빛의 다양한 여건에 따라 제각각 다르게 휘어지는 줄기들과 멀리 있는 줄기들에도 똑같은 씨앗들을 운반한다. 그는 짧은 순간 번쩍이는 빛 속에서 루공마카르가의 미래, 금과 피가 난무하는 사냥터에서 맹렬한 욕구를 충족하려는 한 무리의 사냥개를 언뜻 본 것 같았다."p.387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관계도를 여백의 종이 위에 그려보면서 얽히고 섥혀버린 이 한 장의 종이를 접어 넣습니다.
이것은 이제 다음 책을 읽을 수 있는 지도가 되었습니다.
주사위를 굴려 봅니다. 다음으로 가야할 숫자는 신이 멈춰세워 줄 것입니다.
루공마카르가의 사람들, 그들의 인생의 숫자도 이미 판 위에 굴러가고 있습니다. 신은 그들을 어느 숫자에 멈춰세울지 또 그들은 어떤 시간과 장소 위에서 피의 붉음으로 땀의 냄새로, 눈물의 무늬를 보여 줄지 기다리게 됩니다.
루공가의 행운을 읽으면서, 20권의 총서에 대해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국내에서는 20권 중 일부 번역이 안된 책도 있으며, 각 출판사마다 번역과 표지에 색다름을 추구하므로, 프랑스판이나 영어판에서 보게되는 것과 다름을 안겨줍니다. 개인적으로 어느 출판사에서든 하나의 총서가 하나의 통일된 표지의 느낌으로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며, 특히, 외국 도서의 번역에 대한 호불호로 인해 여러 번역본을 비교 당하게 되는 독자로써 이번 박명숙번역가님의 번역만으로 이 책은 별다섯개입니다. (실제 온라인 서점에 올린 별다섯개는 번역된 문장의 가치가 빛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에밀졸라의 루공마카르 총서에 대한 우리나라 독자들의 평가나 출판사의 인식이 어떤지 궁금해 지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