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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디푸른
김연경 지음 / 강 / 2024년 7월
평점 :
2001년 페테르부르크에 유학을 와있는 청년 청우와 청우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주인인 노파 카테리나 이바노브나, 그리고 한국에서 유학을 온 또다른 여성 초연, 노파에게서 피아노 교습을 받고 있는 러시아 여자 안나.
네 인물의 교차된 생의 한날에 마주하게될 생과 사의 공간과 젊음과 늙음의 대비가 되는 시간을 읽게 됩니다.
노파를 살인하고자 계획하고 환상에 중독된 청우의 시간,
청우를 좋아하게 되는 안나의 시간,
노파의 짜고 다시 풀어내는 일련의 반복된 뜨개질의 행위는 소설 속 인물들을 엮고 풀어내는 의미를 가지는 듯 읽게 됩니다. 실타래에 풀린 실들의 이음과 맞춤으로 하루의 시공간이 결자해지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네 인물에 스며들어 있는 색의 느낌이 있습니다.
회색의 노파, 백색의 안나, 청색의 청수, 적색의 초연.
서로의 한 순간은 만남과 이별에 익숙해질 즈음, 두 여인의 죽음으로 공허하고 습한 밤공기가 내려 앉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명절에 고등학교 친구들 둘을 만났습니다.
30년만에 만나는 친구들은 마치 만나지 못한 30년의 시간이 무색하게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한 친구가 우리가 지금 나이까기 살아있는 것도 복이지 않나? 지금 나이까지 살지 못하고 죽음으로 기억되는 친구들의 이름과 함께 한잔의 술을 삼켰습니다.
청춘의 시간을 삼켜버린 기억들에서 지금 우리에게 자주 만나지는 말고 다음에 또 보자. "계모임 하나 만들까?" 이런 말들만 가슴에 듣고 헤어졌습니다.
소설의 느낌과 비슷한 여운을 남기는 만남이었습니다.
김연경 작가님의 푸르디 푸른은 그런 젊은 날의 푸른 불꽃을 가슴에 있었음을 생각나게 합니다.
젊음의 아픔을 한잔에 , 젊음의 사랑을 또 한잔에, 젊은 날의 기억을 마지막 한잔에 채워 목안으로 넘기는....
쓰고 달고 찬 그보다 더 차디찬 러시아의 청춘에 마시는 문장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불꽃으로 표현한다면, 청춘은 푸른 불꽃의 시간이 아닐까.. 그래서 작가의 푸르디 푸른은 청년의 타오르지 못한 불꽃이 아닐까 싶습니다.
러시아 문학 번역가로 그 이름을 알고 있던 김연경 작가님의 신간 푸르디 푸른을 읽고 작가 김연경님의 이름로도 기억해 보게 됩니다.
"낙조를 보고 있으면 저 태양이 꼭 구멍 같다는 생각이 든단 말입니다. 부재의 현현, 비존재의 극치라는 생각이."p.40
"해안도로를 지날 때는 바다가 검푸른 색으로 변해 있었고 노을 역시도 검붉은 빛을 띠었다. "p.106
"노파의 죽음은 어쨋든 나른한 피로감과 안락감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이상하게도, 희멀건 백야의 빛이 싹 사라지고 바깥이 어둠침침해진 것 같았다."p.160
소설은 김연경작가님의 99년 러시아 페테부르크와 모스크바에서의 유학시절..이십대 중반의 시절. 푸른 불꽃의 시간이 태워지고 있습니다. 담배를 태우던 불꽃, 커피와 홍차를 끓이던 불꽃, 소설속 청년의 한 일부조각으로 남겨져있음을읽게 됩니다. 나의 이십대는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