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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긍지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김영신 옮김 / 불란서책방 / 2024년 8월
평점 :
소설이었나 싶은데 하나의 존재가 분철되어지고 분리된 존재들의 산문 같기도 하고....
문장에서 무채색인가 싶기도 하다가 바로 다음 장에서는 파스텔톤으로 색칠된 문장을 만나기도 합니다.
무엇에 밀어내는 것 같은 저항을 받다가 어느샌가 끌어당기는 흡입을 느껴지는 오묘한 빛깔의 책입니다.
현대적인 도시의 느낌, 갑자기 내린 비의 땅에 흘러내른 빗물의 블록길처럼 그런 느낌을 주는 소설.
그런데 작가의 연혁은 벨에포크시대의 여성 작가의 이름인데, 마치 현대의 시간과 현재의 공간에 살아 있는 것 같다는 그 이름 콜레트.
프랑스가 국장으로 예우한 최초의 여성이라는 이름이 영국의 버지니아 울프와 동시간대의 삶을 살았다는 점에서 슬픔의 긍지는 비틀어지고 찢어진 시대의 시간을 살아야 했던 여성의 문장이 이토록 현대적인가 싶은 놀람과 경외를 그 이으름앞에 헌사하게 됩니다.
슬픔의 긍지에서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여성과 고양이와 개들-작은 불도그, 플랑드르 목양견-의 이야기는 공간을 채워가는 침잠된 계절의 공기와 색깔을 느끼게 합니다.
꿈과 현실, 낮과 밤, 공간과 공간의 비틀어짐을 보여주는 다름은 낯선 이국의 거리에서 길을 잃고 저녁을 맞는 듯 합니다.
분리된 존재로써의 이성과 감정은 여성과 또다른 여성의 존재로 서로 대화하고 싸우며, 화해하고 하나가 되어집니다.
전혀 다른 존재의 동물에서도 대화의 이음과 맞춤이 있고, 인간으로부터 받아들여지는 감정의 분리와 교류, 이성이라는 것으로 껍질을 형성하는 듯한 차단과 보호는 말할 수 없는 존재와의 교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산문의 연속된 비틀어짐에서 존재하되 보이지 않는 감정들이 투영된 빛이 굴절되어지고 비산되어진 스테인드글라스의 느낌으로 나를 책의 가장자리 빛이 닿지 않는 어둠에 앉혀 놓고 있습니다.
여인의 삶이 불안과 분리의 문장으로 쓰여 있습니다. 존재로써의 여인 나와 불안한 불륜의 대상이 되어버린 여성의 존재로 남겨놓는 시대의 남자와 시대의 잣대를 변기에 토하고 물을 흘러 내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슬픔의 긍지에 담겨진 뜻은 지향하는 의지는 무엇인가 묻지 말아 주세요.
나약한 존재로써의 비틀거림도 아니며 시대의 고약한 술에 취한 흐느적 거림도 아니며 기울어진 바탕에서 살아야 했던 여성들이 남겨놓은 문장의 생존이라고.....
프랑스 문학에서 여성의 존재를 알게 된 벨에포크 시대의 콜레트가 아닌 현대의 수많은 여성 - 아니 에르노, 델핀 드 비강 같은 여성 작가- 같이 존재하는 이름으로 기억해보게 됩니다.
강정 시인의 추천글에서
"콜레트는 그 모든 것을 거울 속에 담아 자신을 숨기고, 숨긴채로 더 아름답거나 더 탐욕스러운 자신을 빚는다. "p.12
"남성들이 쌓아 올린 논리와 온전해 보이는 구성체로서의 언어가 부지불식 뿌리부터 앓는다. 소리없이, 말의 무의미성을 스스로 내파 또는 고발하며 거대한 남근이 자신의 그림자에 먹힌다."p.14
"오, 그 또한 단지 한순간일 뿐, 파스텔 색조로 되살아난 사랑스러운 보드라움도 부스러지고 흩어진다..."p.27
"나의 큰 즐거움 중 하나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일이다. 파리의 수많은 여성의 얼굴이 신이 창조한 그 상태로 중년까지 유지될 거라고 믿는 이는 아무더 없을 것이다."p.100
"우린 목적도 없이 밖으로 나가고, 이유없이 걷고, 지치지도 않았는데 길을 멈추죠..."p140
"석양 속에서 검은 새 한 마리가 솟아오른다, 죽어가는 태양이 쏘아 올린 화살이다."p.175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벨 에포크 시절의 작가입니다. 문화사적으로 '아름다운 시절'이라 불리는 그때는 그어라 글쓰는 여성에겐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여성작가에겐 이름이 없었습니다."p.198 (발문 중)
이름이 없었던 여성작가의 이름을 기억하며, 나의 독서에 비워진 공간을 채우는 하나의 조각으로 이어지고 맞춰지는 도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