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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공간의 위로 ㅣ 세리프
그레텔 에를리히 지음, 노지양 옮김 / 빛소굴 / 2024년 5월
평점 :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그녀는 타버린 숯이 되었습니다.
사랑으로 채색된 시간이 한순간 죽음이라는 검정으로 환칠되어지고 사랑을 잃었습니다.
사랑을 잃었고 잊어야 했기에 사랑을 잊으려고 황량한 와이오밍의 땅과 하늘, 숲과 들, 양떼와 소들의 시간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길이라 생각했던 삶을 어디에도 길이 없어 헤메이는 땅, 와이오밍. 인간의 존재라는 것이 인간과 인간에 기대어 있지 않은 땅, 인간의 존재가 땅에 엎드려져 있으며, 인간의 존재가 하늘에 드러누워 있고, 양들과 소들이 가는 길로 가는 인간의 존재, 자연이라는 보이는 것과 볼 수 없는 것에 기대어 있는 인간의 존재만이 있는 그곳은 상실의 마음으로 검게 타버린 숯이 된 한 여인의 시간이 머물기에 열린 공간이었습니다.
와이오밍이라는 공간은 황무지 대평원이며, 계절은 뜨거움의 높은 여름만큼이나 차가움의 낮은 겨울의 긴 시간이 머물러 있고, 드넓은 황야의 거리는 사람들에게 고립과 비고립의 변동을 가져왔습니다. 그들의 언어는 잃어버린 그녀의 사랑처럼 잃어버려져 있고 생략된 단어와 단어 사이의 침묵에 숨겨진 말은 직설적으로 인간의 원초적 본능, 생의 처음을 울부짓는 아이의 울음과 같은 소리입니다.
그녀의 시간은 양털을 깍고, 양떼들을 몰아갑니다. 상실의 슬픔을 깍아내고, 그 아픔을 몰아가는 것으로 일상의 모든 것이 거칠게 쓰여져 있습니다.
그녀가 만난 와이오밍의 사람들은 자연을 닮았습니다. 부서진 사람과 무너진 사람들, 사라진 사람들의 열정은 뜨겁고 또 차가운 계절의 시간을 닮았으며, 그들의 시간은 자연을 따라 모여들고 흩어지며 또 헤메이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검게 타버린 숯이 되어 머무른 와이오밍. 그녀는 나에게 목탄의 느낌으로 쥐어집니다. 그녀의 글은 목탄으로 그려진 거칠고 투박하며 가장 진한 선과 면들로 채워진 그들의 삶을 내 앞에 그리고 있습니다. 그녀의 시간 조차도 탄화된 숯의 검정으로 부서지듯 그려져 있음을 읽습니다.
그러한 거친 그녀와 그곳의 사람들의 그려진 삶의 선에서 엷은 부드러움으로 숨겨진 감정, 아니 짙은 검정의 흩어진 엷은 검정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부딪힘 속에서 문질러진 그녀의 거친 목탄의 선들은 엷은 면들을 곱게 채운 검정이 되었음을 읽게 됩니다.
상처 입은 인간들의 삶을 문질러 부드럽게 흩어지게 하는
인간의 손이며, 자연의 지우개이었음을.
그곳은 치유이며, 회복이었습니다.
그레텔 에를리히의 열린 공간의 위로는 목탄화입니다.
인간의 가장 깊은 어둠-사랑하는 이의 죽음-에서 탄화내어 그려진 숯의 거칠고 투박한 어둠이 사람들과 자연으로 완성되어진 짙은 어둠과 옅은 어둠의 명암으로 완성되어지고 오래 굳혀진 열린 공간의 그림들이었습니다.
"죽는다는 것은 너무나 많은 것을 앗아가는 일이었기에 조금이라도 불필요한 것, 역설로 압축되지 않는 모든 것은 사라졌다."p.57
"중요한 것은 거침없음이 아니라 '거침없이 견딤'이다."p.75
"가을 내내 우리는 두 개의 목소리를 듣는다. 한 목소리는 모든 것이 익었다고 말하고 다른 목소리는 모든 것이 죽어간다고 말한다."p.175
"가을은 결실도 죽음이며 성숙도 부패의 하나임을 가르쳐준다. 물가에 오래 서 있는 버드나무는 녹이 슬기 시작한다. 나뭇잎이란 사실 계절을 나타내는 동사가 아닐까."p.179
열린공간의 위로는 거칠고 투박한 검정으로 빛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