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덕 마녀의 수상한 죽 가게 - 다 타버린 마음을 끌어안고 사는 당신에게
나우주 지음 / 김영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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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었다.
팽그르르. 돌아간다.

가을 아침 길에서 본 그 하나의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비바람이 밤새 지나간 길에
낙엽하나가 공중에 떠 있었습니다.
나무와 땅 그 중간에 무중력의 상태인 것 처럼
떠있는 가을 나뭇잎하나
바람이 후 ~ 불어와
팽그르르 돌고 있는 신비한 모습
자세히 보니 하나의 거미줄이 붙잡고 있었습니다.

번아웃.
뜨거운 열기조차 남지 않은채 완전히 타버린 칠년의 시간을 보낸 작가의 시간이 어른들의 동화가 되었습니다.
궁산의 마녀가 된 작가의 일상이 남겨진 변덕마녀의 수상한 죽 가게.
작년 이맘때 읽은 번아웃 이전의 작가의 문장이 사람, 생, 사회의 올가미에 붙잡혀 몸부림치던 이들의 모습들로 읽었습니다.
지금 일년만에 작가의 문장은 거친 비바람에도 떨어지지 않은 계절에서 본 가을의 잎처럼 붙잡고 있는 무언가를 보게 됩니다. 그것은 아마 작가의 마음을 불태웠던, 재로 만들었던 글, 자음과 모음이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음과 모음이 서로 이어지고 맞춰진 하나의 단어, 하나의 문장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있습니다.
자음과 모음의 비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감정들에서 작가의 지난 날 마음이 어떠했을지 감히 공감할 수 있을지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두려운 마음에 읽기 시작한 작가의 번아웃 소생을 위한 마녀의 죽 이야기는 현대를 살아가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는 것과 누구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마음을 다스릴 특효약을 찾자."(p.13)
마음의 상처. 찢어지고 부서진, 바스러진 그 마음을 다스릴 특효약. 그 특효약을 찾았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사랑했던 그것이 자신을 찢었고, 부러트렸고, 바스러지게 되었지만, 그것으로 자신을 소생할 수 있는 약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 변덕마녀의 수상한 죽가게 는 번아웃, 삶에 지친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읽으면서 느껴지는 감정들을 놓지 마세요.
그 감정들이 내는 소리와 진동을 느껴보신다면, 변덕 마녀의 수상한 죽가게에서 마음을 다스릴 죽 한그릇 든든하게 채우실 수 있습니다.

"마녀는 끊임없이 자신을 몰아붙였습니다. 사람들이 죽을 먹고 힘을 낼수록, 칭찬할수록, 더 잘하고 싶었습니다."p.40

"마녀는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내려놓은 게 아니라 도망친 거였구나...."p.96

"부는 바람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너는 네가 누군지 아느냐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냐고. 숱한 곳을 돌고 돌아온 바람은 그러나 마녀의 젖은 뺨을 쓰윽 말려주고 태연이 날아가버릴 뿐이었습니다. "p.113

"마녀는 바꿀 수 없는 것에 미련을 두고 서성입니다. 서서히 죽어갈 용기를 갖고 싶습니다. 어떤 죽을 끓이면 그런 마음이 될까....."p.132

" '모든 것은......그렇게 되어가고 있구나.'
노을이 희부윰한 빛을 한 줌씩 한 줌씩 거두어갑니다. 겨울 초입입니다. 곧 많은 생명이 저절로 죽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또 태어나겠지요."p.141

"살아남아줘서 고맙습니다."p.149

밭의 이랑과 고랑이 생각났습니다.
자신의 밭에 하나의 이랑 처럼 심어진 한 줄의 문장
한 줄의 문장 사이의 고랑 같은 흰 여백과 또 한 줄의 문장이 돋우어진 이랑 위에 서 있다고 생각해봅니다.
삶이란 이랑과 고랑 위에 흘린 눈물, 땀, 피. 그 마음을 오늘도 열심하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삶을 보여주는 책이라 소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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