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라이프 마인드 - 나이듦의 문학과 예술
벤 허친슨 지음, 김희상 옮김 / 청미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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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은 유리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하루, 한달, 한해가 한장의 유리가 되어 겹쳐져온 삶이다.
어린아이의 투명한 유리 위에 겹쳐진 십대의 시간, 20대 청년의 시간에서
맑음과 밝음의 유리의 시간,
그리고 상처난 시간의 유리,
내 삶의 유리는 때로는 뿌옇게 겹쳐지기도 하고,
때로는 금이 가기도 했고, 때로는 깨어지기도 했다.
중년의 시작이 39살이라면, 29살에서 39살까지 세월의 유리는 환칠된 선과 색, 과거와 현재, 미래를 투영할 수 없는 시간이었음을.
시간의 절벽으로 내몰렸던 위태로웠던 삶의 유리, 그 탈출구가 되어준 것이 책이었다.
책을 읽음으로 나는 수많은 곡선과 사선의 색이 환칠된 유리가 아닌 하나의 색으로 물들은 유리가 되어갔다.
중년의 모든 계절을 맞이해본다.
중년의 희노애락, 중년의 철학과 삶, 중년의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삶의 모양들을 보기 위해서는 중년의 책을 들여다보게 된다.
몽테뉴의 에세에서, 단테의 신곡에서, 세익스피어의 희비극에서,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T.S 엘리엇의 시에서,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에서, 시몬 드보부아르의 글들에서 중년의 계절이 가진 풍광을 보고 느끼며, 만져보게 된다.
올해가 내 삶에 가장 깊이있는 독서가 되고 있습니다.
토마스 만의 마의산.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부활, 닥터 지바고, 인간의 내밀한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이렇게 깊이 읽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작가의 시간에 남겨졌던 문학처럼, 나의 유리에 남겨져가는 문학을 기록하고 또 색을 물들여 봅니다.
책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마의산을 오르고, 전쟁과 평화에서 전쟁을 치르며, 부활의 길을 따라 걸으며, 닥터 지바고의 계절을 느껴본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문학이 좋은 이유, 나이듦의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할 것을 하다가 죽는다'. 슬픔을 새기는 일을 일찌감치 시작하는 것이 늦게 시작하는 것보다 낫다."p.36

"중년은 아는 것이 없다는 겸손과 항상 이미 알고 있는 것 사이를 오가는 인생의 단계이다."p.78

"신곡이 중세의 사상과 신학을 압축한 것이라면, 그 핵심은 인간이 인생을 살며 가지는 두려움이다."p.114

"중년이라는 인생의 시기는 삶이라는 희극이 죽음이라는 비극과 처음으로 완전하게 조우하는 현장이다."p.166

"중년과 씨름하는 사람에게 에세가 주는 중요한 교훈은 시간의 다스림이 자아의 다스림이며, 겸손함을 키우는 것이 성숙함의 본질이라는 것이다."p.167

"어떤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그 일을 하는 더 좋은 방식이 된다."p.241

"예술과 나이 먹음은 같은 깨달음에 이르는 서로 다른 경로일 따름이다. 그 깨달음은 바로 이것이다. "지혜는 누구도 독점할 수 없다."p. 406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 들려줄 인생 스토리를 스스로 써내려갈 능력을 우리는 키울 수 있다."p.447

나이듦의 문학과 예술에서 중년의 삶을, 죽음으로 살아가는 삶을 읽은 나는 마치 가을 호수에 가라앉은 낙엽들의 퇴적물처럼 중년의 삶이 퇴적되어진 젊음과 열정을 작대기로 휘휘 젓음으로 진창을 만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읽게 된다.
내가 읽었던 책, 읽어나가는 책들로 인해 오직 수면을 흐르는 바람의 모양처럼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청미출판사에서 나온 미드라이프 마인드를 읽은 나의 마음이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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