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사람
아리요시 사와코 지음, 김욱 옮김 / 청미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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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이라는 시기를 지나서 나이듦으로 시간의 나이테가 두꺼워지는 지금, 이제 늙음이라는 길을 천천히 걸어들어갑니다. 그 길의 마지막에 있을 죽음에 오늘도 한발자국의 삶을 내딛게 됩니다.

황홀한 사람은 70년대 일본 사회의 한 가정을 통해서 중년 부부 노부토시와 아키코, 대학입시를 앞둔 아들 사토시, 그리고 시어른이면 치매노인인 시게조의 시간이 한 공간에서 뒤섞여 소용돌이 치는 지를 보여줍니다.

처음부터 끝이나는 모든 시간과 장소에서 노부토시와 아키코부부는 나이듦에 대해서 얘기를 듣고 또 말합니다.
인간(人間)이라는 존재가 이루고 있는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공간에서의 시게조는 죽음이라는 바람에 의해서 서서히 풍화되어 그 모습이 잃음과 잊음으로 이 책을 읽는 저에게 남겨집니다.

왜곡되지 않는 시간을 직시하고, 언젠가는 누구나 맞게될 나이듦과 늙음과 죽음에 묵직한 무게의 추를 쥐어주고 있습니다. 치매노인의 모습이 가정의 테두리에서 알아서 하는 문제가 아니라 지역사회와 국가의 시스템 안에서 노인의 삶을 포용하므로 포옹해 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글입니다.

고령화로 인한 여러 문제들(치매, 고독사, 노인운전, 생계 등)이 1970년대에서 현재까지 어떤 식으로 해법을 찾아 흘러왔는지도 찾아보게 됩니다.(바닥에 깔린 주간지들에서)

소설 속 인물들의 모습이 이렇게 또렷하게 남아 기억할 때 글을 읽어가는 내내 나의 앞과 뒤에 있는 가족들을 깊이 생각나게 합니다.

독서모임을 통해서 이 황혼에 기대어 있는 황홀한 사람을 읽어보고 나눔을 하기에 좋은 주제의 책이라 생각합니다.

오랜 여운이 남고, 고민하게 하는 소설입니다. 소설의 마지막 아키코처럼 이제는 준비된 시간을 맞닿뜨리고 싶어집니다.

🪔자신도 하나뿐인 가스풍로에 불을 붙이며, 쓸쓸히 죽을 날을 기다리는 삶 속에 묻혀버리게 될까? 아키코는 검은 숯이 온통 빨갛게 타오를 때까지 망연히 서 있었다.(p119)

🪔시게조의 망령 체조를 지켜보던 사토시가 "엄마 아빠는 저렇게 오래 살지마"라고 소리치던 모습이 자꾸만 아른거렸다.(p274)

🪔시게조는 아키코가 자기 손을 붙잡고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듯했다. 흐리멍덩한 눈을 반쯤 감고 꿈과 현실의 경계에 있는 황홀한 세계를 헤매고 있는 것 같았다.(p284)

🪔노인은 죽이지도 살리지도 않는다는 건가?(P394)

🪔노인성 치매라는 말도 될 수 있으면 사용하려고 하지 않는 의사를 아키코는 전폭적으로 신뢰했다. 상당히 되돌아가신 것 같군요. 이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노화의 극한에서 인생은 되돌아가는 것인가. 그것을 되돌아간단고 하는 것이었던가. (p406)

🎋나이듦과 늙음, 죽음에 깊이 공감가는 책으로 꼭 추천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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