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수를 놓는 마당에 시를 걸었다
공상균 지음 / 나비클럽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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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바람을 타고 내게로 왔다.
시인은 바람이 수를 놓는 마당에 시를 걸었다.
시인의 시는 바람을 타고 내게로 왔다.

시인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하게 되는 것이 어디 있을까.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소확행이 아닐까.
시인의 글 중 예순일곱에 멈춰버린 아버지의 얼굴을 읽으며 칠순하나에 멈춰버린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글을 배우시지 못하셨습니다. 매년 새해의 시작이면 지난해에 적어놓은 전화번호를 새수첩에다 크게 큰글씨로 옮겨적는 것이 한해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수첩에는 달력의 한 귀퉁이를 찢어서 적은 번호도 있고 광고지의 테두리에 적어놓은 전화번호도 있었습니다. 크게 누구누구라고 이름을 부르면 아버지는 그 사람 전화번호는 이쪽에 적고. 친척들 전화번호는 멀찌감치 몇장을 넘기어 적어놓으라고 하셨습니다. 칠순하나에 멈춰버린 아버지의 얼굴이 시인의 글로 인해 보고싶어집니다.
엄마의 눈물에서 몇년 전 어머니께서 출생신고가 2년이나 늦어 노인연금을 늦게 받으셨다고 이야기하시기에 어머니 출생신고 2년 늦은 만큼 더 오래 사시면 되지요. 했는데 시인의 글에서 "어머니, 앞으로 십 년만 더 쑥을 캐주세요." 말씀드렸던 것처럼. 시인의 시간이 남긴 그 흔적의 글에서 나의 시간을 보게 되었고, 누군가에게 있을 법한 그 희노애락의 시간은 닮았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시를 읽고 마음에 와닿는 시를 만나면 공책에 옮겨 쓴다.ㅡ눈으로만 시를 읽을 때와 소리 내서 읽을 때 그 느낌은 다르다.시를 옮겨 적으면서 소리내어 몇 번 읽으면ㅡ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설렘이다.'
작년 여름내내 매일 A4용지에다 시를 옮겨 적어보았습니다. 사랑의 시, 이별의 시, 짧고 긴 시를 적어보면서 시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시인이 그러했듯이 자신의 목소리로 시인의 시가 자신의 시가 되어가듯이 소리내어 읽어야하고 소리내어 적어야한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시는 나에게 시를 읽는 그 시간만큼은 평소와 다른 호흡과 속도를 가지라고 이야기하는듯 하였습니다. 조금은 느리게...살아가보라고 삶의 지휘자가 지휘봉을 젓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시인의 글을 읽으면서 한걸음만 느리게 살면 인생도 맛있을거라는 시인의 말이 공감이 갑니다. 시를 천천히 소리내어 읽듯이 말입니다.
지리산 농부 시인의 꿈꾸는 시간과 공간이 이 책 안에 고스란히 담겨서 전해져 옵니다.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삶의 모습이 아니라 세상에서 살아가는 즐거움을 전해주는 이 책은 누구에게나 잠시 일상의 시간을 느리게 해 줌으로써 따뜻한 삶의 위로를 선물하고 있습니다.
바람이 수를 놓는 마당에 시를 걸었듯이 이 책을 읽으면서 각자의 마당에 자신의 시를 걸어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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