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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리쾨르 ㅣ 컴북스 이론총서
이양수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6년 5월
평점 :
20세기 실존주의를 대표하는 사상가인 사르트르, 보부아르, 하이데거 등에 비해 리쾨르는 한국에서 크게 조명받지 못한 사상가다. 여기엔 리쾨르의 이론이 다소 종교적인 색채를 지닌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윤리학이 각광받고 있는 오늘날 리쾨르는 다시 소환될만한 인물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내러티브를 존재와 세계를 이해하는 틀로 삼기 때문이다.
리쾨르는 자신의 사상을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했다. 그는 사르트르가 강조했던 주체 개념을 포기하고 존재에서 환원되지 않는 무엇인가를 찾아 실존주의에서 현상학으로, 현상학에서 해석학으로 이동한다. 그곳에 자리한 것이 바로 내러티브다. 우리가 말한다는 것, 특히 모국어로 말한다는 것은 어떤 입장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말한다. 개인적 말하기는 존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말한다. 주체가 아닌 존재라는 것이 중요하다. 주체는 행위하는데 선택의 자유가 있으나, 존재는 세계 속에 던져진 존재다(시작은 하이데거의 피투성Geworfenheit과 유사하다). 세계의 시간은 존재의 시계바늘 이전부터 돌아가고 있었고, 이 시간은 존재에게 존재의 의지와는 무관한 비자발성을 부여한다. 즉 우리의 행위는 자발성과 비자발성의 변증법적 합에 의한 것이다. 이 때 존재의 말하기, 즉 내러티브는 일종의 '포에틱 미메시스'로서 세계의 시간과 존재의 시간을 엮어낸다. 존재는 단순히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수용과정을 겪는다. 언어의 상상이 현실을 재구성하고 확장시키는 것이다.
리쾨르에서 생기는 의문점은 그가 존재의 행위에서 비자발적 측면을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꿈이나 환상과 같은 지각불가능의 영역에 크게 발을 들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그가 스피노자 철학에 전부 동의한다고 말한 것을 생각하면 행위의 비자발적 측면은 존재의 잠재적 힘인 puissance와 긴밀히 연결될 수 있는 주제다. 만약 그의 후기 주제였던 해석학을 바탕으로 리쾨르의 연구가 지속될 수 있었다면 문학 등 예술 작품 연구에 하나의 패러다임을 제공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떤 면에서 이 책은 리쾨르에 대한 글이기도 하지만, 리쾨르의 표현들을 빌려 쓰인 이양수 필자의 연설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짙게 호소하지만 그 내용은 논리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