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부터 베스낚시를 시작했지만, 전날 내린 비로 안동호가 만수위가 되면서 먹이 활동이 활발한 이름 아침에도 입질이 전혀 없었다. 햇볕이 좀 내리쬐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하늘은 다시금 폭우를 쏟아낼 기세였다. 긴 생머리를 야무지게 묶은 그녀는 지갑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었다. 나는 이 근처에서 잠깐만 낚시하다가 나갈 참이라고 하려다가 말을 삭혔다. 대륙의 바다,라고 불리는 안동호 위에 여자와 같이 떠 있는 것만으로도 묘한 쾌감이 있었고, 인적 없는 보트 위에서 질퍽하게 정사를 벌여보는 상상만으로도 괜한 흥분에 사로잡혔기 때문이었다.

나는 케스팅을 하면서 간간히 그녀를 훑어보았다. 그러나 여자는 종잡을 수 없었다. 때론 시무룩하게, 때론 발랄하게, 때론 마네킹처럼 표정 없이 앉아 있었다. 그러다 여자는 더 멀리가면 안 되겠냐고 뜬금없이 재촉했다. 깊숙한 곳으로부터 몸과 마음이 불끈거렸다. 밧데리가 하나 뿐이어서, 더 멀리가면 돌아오기 힘들다는 말도 하려다가 말았다. 다음 주에 베스 프로 낚시 대회가 있어서 비교적 보트가 많이 떠 있었고, 배터리가 끊기면 노 하나 정도 빌려 돌아가면 될 터였다. 그것도 안 되면 안동호 관리소에 전화해서 도선이라도 부르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여자 이름 석자도 몰랐다. 나는 그냥 그녀가 타고 싶다고 해서 태워 줬을 뿐이고, 삼 일간 내린 비에 안동호에 갇혔을 뿐이고, 그녀는 어디론가 사라졌을 뿐이다. 그녀가 보트에 올라타고 나서, 뜬금없이 어제 정말 죽으려 했다,고 말했다. 하늘이 터진 듯 엄청난 폭우가 안동호에 퍼붓기 시작하던 오후 2시 무렵이었다. 전날 비로 수위가 불어 예민해진 베스들이 바닥 깊숙이 자리 잡은 듯하여 나는 무거운 웜 채비로 바닥을 훑고 있었다. 파다다닥 빗방울이 떨어지던 그때, 나는 그녀에게 죽겠다는 결심이 바뀐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나 여자는 무릎 사이로 고개를 파묻은 채 말이 없었다.

‘귀신인가, 이 여자...’

나는 기색을 감추고 허하게 웃었지만 여자는 다시 한 번 확인 사살하듯 어제 정말 죽으려 했어요,라고 말했다. 앙다문 입술 사이에서 새어 나온 그 말은 내 머리칼을 쭈삣거리게 만들었다. 하늘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안동호에 비를 퍼부었다. 강풍을 동반한 빗줄기는 안동호의 수면을 사방팔방으로 정신없이 몰아부쳤다. 여자는 비에 흠뻑 젖었고, 나는 원피스를 들춰내고 싶다는 생각도 감히 못했으며, 여자에게 날씨를 탓하며 서둘러 그만 돌아가자고 했다. 

그러나 때늦은 생각이었다. 배는 이미 안동호 한복판으로 와 있었다. 노는 하나뿐이었다. 최대한 땅으로 배를 몰아야 된다는 생각에 여자에 한 눈 팔 겨를이 없었다. 나는 바삐 악셀을 밟았다. 그러나 풍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린 후 배는 털털거렸다. 노 하나로 배를 저어보려 했지만, 그보다 더 급한 것은 배에 찬 빗물을 퍼내는 것이었다. 죽기 싫으면 빗물 좀 퍼내라며 여자에게 비상용 손바가지를 던졌다. 여자가 힘없이 바가지질을 했지만 빗물은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보트 위에 올려 놓았던 핸드폰도 비에 젖어 먹통이었다. 진압군 같은 시커먼 비구름이 안동호를 사납게 덮쳐 버렸다.

내가 계속해서 그녀를 모른다고 부인하자 놈은 예의 그 썩은 표정을 하며 나를 압박했다. 놈은 어떻게 상식적으로 멀쩡히 제정신을 가진 여자가 교통도 힘든 안동호 선착장에 가서 처음 보는 남자에게 보트를 태워 달라고 하겠냐는 것이었다. 그 말은 내가 무슨 꼬임수를 썼으니 여자가 따라나선 것이지, 아무 이유 없이 절대 보트에 올라타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 같았다. 나는 내가 그 여자가 아니라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자, 탁형사는 목격자까지 있는데 왜 뻔한 거짓말을 하냐며 나를 거칠게 몰아붙였다.

목격자라니... 

나는 놈에게 차라리 소설을 쓰시죠,라고 비꼬며 말했다. 이대로 놈의 폭언에 계속 밀리다 보면 모든 것을 다 뒤집어쓸 것만 같았다. 놈은 아랑곳하지 않고, 탐문 수사 하던 중 잉어골 지류에 살던 할머니가 배 위에 있던 남녀를 봤다며, 내가 여자에게 성큼 다가서더니 한참동안 실갱이를 벌였다는 증언을 전했다. 나는 움찔하며 그녀를 만난 첫 장면부터 빠르게 되돌려 보았다. 비슷한 상황이 반사적으로 떠올랐다.

내가 직벽 근처에서 케스팅을 하니, 그녀가 나를 따라 갑자기 일어섰고, 동시에 배가 휘청 뒤흔들렸다. 내가 황급히 그녀의 손을 잡아챈 적이 있었다. 사실 그날 구명조끼가 하나밖에 없어서 아슬아슬했다. 베스 포인트가 발견되면 케스팅 위치에 따라 보트를 자주 회전시키는데, 경험이 없는 초보의 경우 중심을 잃기 쉬웠다. 나는 그녀에게 노 묶는 줄이라도 꽉 잡고 있어야 한다 말했지만, 잡아챈 손목이 아팠는지 그녀는 왼손으로 손목만 매만지고 있었다. 나를 살인자로 만들 생각이 아니면, 이 줄을 꼭 잡아야 한다고 놈에게 구체적인 행동까지 보이며 증명해 보았지만, 모든 게 허사였다.

형사는 나를 무슨 희극 배우 보듯 킬킬대며 웃었다.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암담했다. 다 설명했다 싶으면 또다른 질문이 나왔고, 아예 질문의 싹을 자르기 위해 더욱 구체적이며 정교하게 상황을 설명해 보아도 다른 비슷한 질문을 던져 피를 말렸다.

“언제 죽인 거야? 첫째날이야 둘째날이야 셋째날이야? 낮이야 밤이야?”

“그게 아니라니까요!”

나는 긴 한숨을 표나게 내쉬며, 억울함과 답답함을 토로했다. 내가 뱉은 말들은 모두 증발해 버렸다.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해명은 그 다음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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