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무지 amathia 인간의 체념] 29-32

불평등과 억압이야말로 문명의 토대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살아가는 조화로운 문명은 아직 이 세상에 건설된 적이 없다. 주인이 노예를 착취하고, 남성이 여성을 억누르고, ‘우리‘가 ‘이방인‘을 멸시한다. 인간이 성취한 훌륭한 문명의 성과는 그런 불평등 위에서 얻어진 것이다. 문명이 온전히 잘 유지되려면 이 모순을 은폐하고 억압을 숨기는 거짓이 필요하다. 지금의 이 상태가 원래의 자연스러운 질서라고 강변하는 논리정연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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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에우리피데스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문명의 억압을 해체하는 디오니소스의 승리 또한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낳았는지도 보여준다. 처은에 관객들은 펜테우스의 무지와 독재에 대해 신이 응징하는 이야기에 동참한다. 그러나 그 흐름의 정점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의미의 변화가 일어난다 이 신은 과연 정의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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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은 연민compassion을 느낀다. 그것은 함께com 고통passion을 나누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미덕이다. 고통을 통해 인간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지혜를 얻는다. 그럼으로써 돌연 인간은 고귀함을 획득한다. 이것은 동물이나 신은 가질 수 없는 덕성이다. 동물은 단지 고통 속에 희생당할 뿐이며, 신은 아예 고통을 느끼지 않으므로 고귀한 덕성을 알지 못한다. 이제 아마티아, 즉 무지는 디오니소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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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자연의 세계에 대한 무지로 인해 처벌받는 펜테우스나 인간에 대한무지로 잔혹한 복수를 행하는 디오니소스나 사실 큰 차이가 없다. 그들은 정반대인 듯하면서도 내적으로는 너무나도 유사한 쌍생아 같은 존재들이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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