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위대한 것은 시대마다 새롭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새롭게 해석하는 눈이 없으면 과거와 전통과 권위에 매달리게 된다.
세상이 불안해지면 말씀으로 기도로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소리가 나온다.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지만 때로는 이것이 세상의 변화를 회피하려는 손쉬운 선택이 될 수 있음을 한 번쯤은 돌아봐야 한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현상이나 사건을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읽고 해석하는 눈이 필요하다. - P8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과 일상이라는 두 개의 텍스트를 주셨다. 하지만 요즘 우리는 일상(현실)이라는 텍스트를 잃어버린 것 같다. 이 두 텍스트를 잘 연결시킬 수 있어야 ‘인생‘을 제대로 살 수 있는데, 문학은 바로 이 일상이란 텍스트를 읽는 연습이다. 즉 문학을 읽으면서 작품 속 메시지를 해석할 줄 알게 된다면 평범한 일상에서 펼쳐지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이 얼마나 섬세하게 살피고 계신지 깨닫게 된다. - P17

교회도 논리적인 사람은 결코 선택할 수 없는 길을 걸어왔다. 낮은 데로 더 낮은 데로…. 교회가 빈자와 약자를 품었기에 사람들은 교회를 찾았고, 쉼과 힘을 얻었다. 그때에 강단에서 선포되는 복음에 대해 다들 귀를 열고 들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지켜보면서 복음이 무엇인지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복음은메마른 이상향이 아니었으며, 만져지고 경험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를 좇는 깨끗한 인생을 보면서 사람들은 매혹되었다.

논리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 나라는 비현실적이고 세상은 악이 이기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논리만이 세상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는 걸 사랑이 보여 주었다. 어디에도 논리적인 사랑을 하는 사람은 없다. 바보같은 사랑에 빠지고 시를 읽으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비논리의 논리를 깨닫는 것이다. 문학 또한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믿음을 세워사는 훈련은 비논리의 논리로 가르친다. - P71

그리스도인은 ‘왜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원하나?‘로 자기 점검을 해야 한다. 즉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묻는 것이다. 이것은 소명의 문제이자 가치관의 문제다. 인생의 끝자락에 섰을 때 무엇을 보고 싶은가? 그때 보고 싶은 것을 한 줄로 정리해 보라. 한 줄은 그것을 쓴 사람의 내적 자아를 드러내는데, 핵심 가치는 자신을 지키는 데드라인 역할을 한다. 그것이 여러분의 삶을 하나님나라로 이끌어 갈 것이다. - P139

공중 나는 새도 하나님이 먹이신다. 비록 동물권은 대다수 신앙인들이 생각조차 않는 주제일 테지만 실제로는 중요하다. 동물을 대하는 태도와 사고가 사회적 약자, 인권, 정의에도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동물은 낯선 주제인 것 같지만 십계명의 네 번째 계명 신명기 5:14에서는 사람이 쉴 때 동물도 쉬게 하라고 말한다.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

이 구절이 새롭게 보이지 않겠지만 제3세계에서는 하루도 쉬지못하는 곳이 너무도 많다. 이런 삶은 여러 가지 위장된 모습으로우리 곁에 있는데, 동물은 그것을 읽는 코드다. 동물 보호는 동물이 아니라 사람을 변화시키는 길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총기 살해범들은 대부분 동물을 학대한 경험을 갖고 있다고 한다. 또 동물보호는 동물의 고통을 시민들이 함께 노력하면 막을 수 있다는점에서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동물의 고통을 줄이려는 생각이 사회적 약자, 인권, 사형제 변화에도 적용되고 다문화, 탈북자, 난민 같은 논의로도 연결되어진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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