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적‘이라는 말을 마르틴 루터의 가운데 이름이라도 되는 듯 남용하는 위험한 버릇이 있다. 특히 뭔가 부담스러운 말 앞에 ‘성경적‘이라고 붙이길 좋아하는데 이를테면 경제, 성性, 정치 그리고 결혼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마치 하나님이 그런 것들에 대해 정확한 의견을 갖고 계시다는 인상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의견이 우연히도 우리 생각과 일치한다. 성경에서 어떤 부분을 진지하게 취해야 할지 취사선택하지 말라고 주장하면서, 이런 식으로 ‘성경적‘이라는 단어를 규범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거의 언제나 선별적이다. - P17

어느덧 나뭇잎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고 성경적 여성으로 살기로 한 1년의 첫날이 눈앞에 다가왔다. 나는 왠지 모르게 잠언 31장 25절 말씀에 꽂혀 있었다.

"능력과 존귀로 옷을 삼고 후일을 웃으며"(개역개정).

대형 의류 매장 콜스의 여성복 코너에서 ‘능력‘과 ‘존귀‘를 찾을 수 없다는 것쯤은 알았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이 이런 시도를 한다는 것의 부조리함을 생각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후일에 웃는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묘한 해방감도 느껴졌다. - P21

하늘은 낮고 흐렸다. 온 세상이 밀폐용기 속에 갇힌 것 같았다. - P129

교회의 여장부이신데, 이분을 보면 속에 있는 걸 다 털어놓고 싶어지는 부류의 사람이다. 판단하는 데는 느리고, 듣는 것과 도움을 주는 것에는 빠른 그런 분이다. - P142

두려움 때문에 진실을 찾는 사람들처럼, 나는 내가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할 지 누군가 말해 주기를 간절히 원했다.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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