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5장 1-3, 11-32절
1. 나는 왜 예수 앞에 나오는가
- 오늘날도 두 부류가 예수님 주위를 맴돈다.
세리와 죄인들 - 동생 - 부도덕한 외부인 -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 형 - 도덕적인 내부인 - 수군거려 이르되

p.20–21 들어가는 말
아들들을 위해 사랑을 탕진하시는 하나님
흔히 탕자‘(蕩子)로 번역되는 문구의 형용사 ‘prodigal(프러디걸)은 ‘제멋대로 군다‘라는 뜻이 아니라 Merriam-Websters Collegiate Dictionary(메리엄웹스터 대학생용 사전)에 따르면 ‘무모할 정도로 씀씀이가 헤프다‘라는 뜻이다. 하나도 남김없이 다 쓴다는 의미다. •••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하나님은 앞뒤 재지 않고 아낌없이 다 내주시는 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분은 자녀인 우리에게 그야말로 ‘탕부(父)이시다. 하나님의 무모한 은혜야말로 우리의 가장 큰 소망이요, 삶을 변화시키는 경험이며, 이 책의 주제도 바로 그것이다.
p.41
예수님의 가르침은 종교를 등진 사람들을 항상 끌어들인 반면 당대의 종교적이고 성경을 믿던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교회들은 대체로 그런 효과를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예수께 끌렸던 부류의 외부인들이 현대 교회에는 끌리지 않고 있다. 가장 전위적인(avant-garde) 교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우리가 끌어들이는 사람들은 보수적이고 반듯하고 도덕적인 경향이 있다. 인습을 벗어난 난잡한 사람들이나 소외되고 망가진 사람들은 교회를 피한다. 그 의미는 하나뿐이다. 우리의 설교와 행실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예수님과 같지 않다면,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가 예수님이 선포하신 메시지와 같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동생들의 마음에 가닿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 교회가 생각보다 더 형들의 세상이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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