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바울은 동성애혐오자였다.

요즘 바울과 관련된 책들을 많이 읽고 있는데 바울이 살아낸 시대가 바울에게 매우 힘겨웠다는 걸 느낀다. 바울에 대해 알아가면서 그 전에는 그저 위대한 인물로만 멀게 느껴졌었는데 이제는 내가 오늘날을 살아가는데 있어 참고할 인생 선배의 느낌이다.

동성애에 대한 바울의 입장은 잘 정리되었다. 동성애는 죄이고 이는 다른 죄들과 다를 것이 없으므로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그들을 포용해야한다.

다만 궁금한 지점은 ‘동성애가 정신적인 사랑이냐 육체적인 쾌락이냐’다. 교회에서는 육체적 쾌락에 초점을 맞추어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이 책에서도 그런 뉘앙스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에서 말하는 동성애는 정신적인 것들도 포함된다. 서로 다른 정의로 이야기를 하기에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게 요즘 나의 생각이다. 좀더 생각을 가다듬어야겠지만(사랑이란 무엇인지부터 정의해야겠지..) 이에 대해서 우리는 어떠한 개념과 입장을 가져야 할 지가 동성애에 대한 나의 의문이다.

동성애와 별개로 사랑에 대한, 예수님에 대한 와닿는 구절들이 많았던 장이다. 책은 1월에 마저 읽고 정리하는 걸로..

p.167-168

두번째 사항은 바울이 에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신자로 만들고자 했던 대상이 바로 이런 로마 남자들, 곧 자유인과 노예, "능동적인" 동성애 파트너와 "수동적인" 동성애 파트너들이었다는 사실이다. 목양적 관점에서 보면,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성에 대한 회심자의 견해가 하룻밤만에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 말하자면, 바울이 개척한 교회들에는 방금 묘사한 온갖 행위에 관여했던 교인들이 있었다는 뜻이다.

p.170-172 바울의 입장

바울의 주장인즉 이방인의 특징적인 죄는 우상 숭배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압도한 것에 있다. 이 죄가 성적 욕구에서보다 더 뚜렷하게 나타나는 곳은 없다. 달리 말하면, 동성애 행위는 자연스러운 욕구가 방향을 잃은 결과다. •••
그러나 동성애 행위가 정열을 잘못 둔 유일한 사례는 아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바로 그 사람들, 곧 욕구가 방향을 잃은 이방인들이 또한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고 말한다(롬 1:29~31). 바울이 동성애에 가장 주목하는 로마서에서조차 그것을 하나님의 뜻에서 일탈하려는 인간 성향을 보여 주는 여러 행실의 목록에 포함시키고 있다.
결국 바울은 동성애에 대한 구약의 관점을 공유했다. 그 행위가 죄스러운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위반하기 때문이다. •••
바울이 동성애 행위를 금하는 구약의 규정에 찬성한 것은 사실이지만, 어디서도 동성애에 대한 구약의 형벌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똑같이 사실이고 똑같이 의미심장하다.

p.175

그런데 바울이 험담도 살인과 함께 묶어 놓는 것을 주목하라. 말하자면, 바울은 죄를 계층으로 나누지 않는다는 뜻이다. 모든 죄는 욕망을 잘못된 곳에 두었다는 증거다. 우리는 본래 사랑의 동반자 관계를 위해 창조되었으나 (죄로 인해) 그 관계를 권력투쟁과 험담으로 무너뜨린다. 가족은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대변하도록 창조되었으나 (죄로 인해) 부모가 자녀를 노엽게 하고 자녀는 반항한다. 바울이 게이 그리스도인에게 베푼 목회적 충고는 비방하는 자와 도둑과 간음하는 자, 그리고 예수님을 좇고자 분투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베푼 것과 똑같았을 터이다.

p.176

그래서 우리는 바울이 종종 감행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이는 한편의 새로운 이교도 회심자들과 다른 편의 신실한 종교적 인물들 사이에 흐르는 위험한 해역을 항해하는 것, 한편의 공의와 공평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다른 편의 행위로 의롭게 된다는 옛 제도에 도전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 사이에서 항해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바울의 복음이 이방인에게 어리석은 것이 된 이유는 무척 반(反)문화적이고 반(反)직관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동일한 복음이 유대인에게 걸림돌이 된 이유는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는 문을 활짝 열어젖혔기 때문이다. 우리가 방금묘사한 두 가지 기둥, 곧 방탕한 자유주의와 무자비한 율법주의 사이에는 바울보다 작은 확신을 품고 이 해역을 항해하려고 애쓰는 수많은 성실한 신자들이 있다.

p.182

오히려 동성애를 금하는 토라의 규정을 그대로 보존한 것이다. 동의하는 동의하지 않는 바울의 입장은 명백하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바울을 따르기 원하는 사람들은 해석학적인 도전이 아니라 목회적인 도전을 받게 된다. 달리 표현하자면, 우리가 탐구해야 할 진짜 이슈는 바울이 동성애에 관해 무슨말을 했는지가 아니라 그가 동성애 행위에 관여하는 자들을 어떻게 다.
루었는가 하는 것이다.

p.183

이와 같이 우리도 바울의 입장에 서 있는 듯하다. 바울은 한편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은혜를 베풀라고 촉구한다. 동시에 다른 편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스스로를 제한하라고 촉구한다. 바울의 목표는 그들이 일종의 타협책으로 중간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었다. 바울의 목표는 그들이 그리스도인의 교제권에서 만나게하는 것이었다. 바울이 그들에게 촉구한 것은 두 가지였다. 먼저, 성령께서 그들 모두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계속 빚어내어 한 가족으로 만들어 가시는 만큼 그들이 서로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었다(롬 8:29). 그리고 그들 모두가 이 세상을 본받지 않으려고 애쓰는 만큼 그들이 서로에 대해 인내하게 하는 것이었다(롬 12:2).

p.183, 185

결론적으로, 우리는 바울과 같이 기독교 공동체의 기초는 완전한 삶이나 합의가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 바이다. 바울은 독자들에게 의견을 같이하기 전에 서로를 동료 신자로 받아들일 것을 주장했다. 앞으로 나아가는 법에 관한 토론은 이런 공동체, 곧 모든 당파들이 서로 헌신하고 순종하는 공동체에서 일어나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성애자 친구들을 사랑하듯이 동성애자 친구들도 사랑해야 한다. ••• 복음의 스캔들은 복음이 누구를 배제시키는가에 있지 않고 누구를 포용하는가에 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영접하신다. 동성애 행위를 이런 식으로 보면 우리는 우리 문화와ㅠ현대파유비리새린 사이의 중간에 놓이게 된다. 바로 바울이 서 있던 곳이다. 예수께서 험담하는 사람을 수용하시듯이 게이도 수용하신다. 물론 둘 중 어느 행위도 찬성하지는 않지만 그 모두에게 용서와 성령을 베푸시는 분이다.

주석 - 사진내용

16) Webb은 자신의 방법을 "구속적 운동 해석학"으로 묘사하기를 더 좋아한다. "어떤 이들은 이 해석학적/적용적 접근을 ‘진보적‘ 내지는 발전적 내지는 궤도적‘ 해석학이라고 부르기를 더 좋아할지 모른다"고 그는 말한다.
WilliamWebb, Slaves, Women, and Homosexuals: Exploring the Hermeneutics ofCultural Analysis (Downers Grove: InterVarsity Press, 2001), p.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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