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으로 성경읽기

1. 성경 속 여성 리더십
미리암, 드보라, 야엘, 슬로브핫의 딸들, 훌다, 와스디

2. 문화적 콘테스트 속에서 성경 읽기
- 위줄을 버려라 떠나라?
- 폭스트콜로니얼 관점은 우머니스트 관점과 맞닿음

p.222

즉 이스라엘 공동체에서는 자리보다는 하나님의 영 안에서 그가 가진 신앙의 깊이나 지혜가 리더십의 원천이었다는 것이죠.

p.255

닉싱은 관계 재정립을 위한 적극적 소통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성공 여부는 나의 닉싱을 해석하고 반응하는 너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이, ‘와스디’라는 이름을 떠올렸을 때에 제가 기억하고 싶은 메 시지입니다.

p.231 과연 그래도 될까?

••• 솔직히 남자와 여자에 대해 말한 사도바울의 본문은 그냥 ‘떠나면’ 돼요. 주인과 노예에 대한 본문처럼요.

p.233 ‘여자의 머리는 남자’에 대한 맥락읽기

"여자의 머리는 남자"라는 것도 위계의 의미가 아니라는겁니다. "여자 머리를 보면 어느 남자의 아내인지 알 수 있잖아. 그와 같이 ‘남자의 머리가 그리스도’라는 건데, 두 경우 다 영광의 이름이야." 이런 맥락인 거죠. 그러니까 첫째 다른 종교 전통과의 구별을 위해, 둘째 영광과 존중의 의미로 권면한 내용이라는 겁니다. 물론 이는 하나의 해석이에요.

p.235 위줄 버리기?

물론 이어지는 구절에 나오는 남편들에게 물으라든가 디모데전서 2장에서 ‘하와가 아담보다 늦게 지음받았다‘고 하는 언급들은 분명 가부장적 제한이 있죠. 이 부분은 ‘위줄‘로서, 혹은 더 이상 문화적 실효성이 없는 구절로서 상대화할 수 있는 부분이에요.

p.236

에베소서가 전형적으로 바울학파의 작품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나요? 이 서신은 기독교 공동체 첫 세대의 작품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게 왜 중요한가요? 적어도 예수님 이후 첫 세대의 교회는 ‘제도’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어요. 예수님께서 곧 오실 줄 알았으니까요. 이는 남녀 문제나 결혼, 가정에 대한 바울의 생각에 영향을 미쳤죠. "기왕이면 그냥 이 세상에서 복음 전파하며 혼자 살아라. 그게 제일 좋다. 그러나 이미 결혼했걸랑 그대로 지내라. 혹 혼자 사는 것을 못 견디겠거든 괜히 욕정에 불타 죄를 짓는 것보다는 결혼하는 것이 낫겠다. 단 새로 결혼하는 상황이라면 그리스도인끼리 했으면 한다." 결국 결혼이라는 제도에 관한 ‘소극적’ 수용입니다. ••• 그러나 에베소서의 본문은 첫 세대가 가도 예수는 안 오시고 세상은 지속되고 공동체는 존속되어야 하는, 이렇게 새로운 상황에서 쓰인 거예요. 세속 질서 안에서 살아가야 했으니 당연 당시의 가부장적 질서를 인정할 수밖에요. 이렇게 본다면 해당 본문의 문화적 제한성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p.242 포스트콜로니얼

포스트콜로니얼 입장에서는 성경 역시 제국주의 틈바귀에서 가장 힘을 가지지 못했던 히브리 민족의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텍스트로 읽히죠.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의 모든 층위가 켜켜이 연결된 현실을 드러내는 텍스트요. 그래서 성경을 획일적이고 단층적으로 읽을 수 없다는 겁니다. 성경이 ‘언제나 해방적인’ 텍스트는 아니라는 것을 ‘페미니스트’ 시각에서 말해 왔는데, ‘포스트콜로니얼‘하게 접근하면 설명이 더 쉬워요. 성경은 해방적 본문과 더불어 억압적 본문도 포함되어 있다는 겁니다. 억압받는 인물이 언제나 피해자인 것만도 아니고요. 모든 관계망이 복합적이고 중층적이에요.

p.243 아프리카 신학자 무사 두베

"백인 남자가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 그는 성경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는 땅을 가지고 있었다. 그 백인 남자는 우리에게 말했다. 자 우리 모두 눈을 감고 기도합시다. 기도가 끝난 후, 눈을 떠보니 그 백인 남자는 땅을 가졌고, 우리는 성경을 가졌다." 이런 역사적 경험 때문에 힘을 가진 제국의 시각에서 제공하는 성경 해석을 거부하고 식민 상황에서 이를 ‘넘어서기’ 위한 주체적 성경 해석을 시도하는 거예요.

p.247 우머니즘과 포스트콜로니얼

"맞아, 우리는 아기를 품었던 경험이 있는 여자들이지. 그래서 살려 낸다는 것, 지킨다는 것, 보호한다는 것이 뭔지 잘 알아. 나도 살고 너도 살리는 페미니즘은 우리의 능력이야." 이렇게 주장하는 상징이라면 "아줌마"라는 단어를 ‘포스트콜로니얼’하게 수용한 셈이죠.

p.252 우머니스트 성경읽기 원칙

1. "살아라" 말씀하시는 창조 명령을 따르는 데 힘이 되는 본 문 찾기와 해석
2. "살려라" 말씀하시는 구원 명령을 따르는 데 힘이 되는 본문 찾기와 해석
3. 여성의 힘과 권위를 지지하고 격려하는 데 힘이 되는 본문 찾기와 (재)해석
4. 성경의 ‘경줄’을 잡고 오늘의 상황에서 ‘위줄‘을 잡아내는 재구성과 재생산의 실험.

p.253 주체적 성경읽기 - 개신교 탄생이유

이런 원칙을 가지고 주체적 성경 읽기를 하려면 적어도 신학적, 신앙적으로 단단해야 할 수 있지 않느냐는 우려였어요. 물론 공부해야지요. 읽고 생각하고 비판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소양도, 역사적 배경 이해도 필요할 겁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믿으세요. 우리가 신앙 안에서 계속 고민하고 기도하며 붙잡고 있는 것은 다른 텍스트가 아닌 ‘성경‘이니까요. 위험하니 하지 말자고요? 성경을 다시, 그리고 제대로 읽어 냈던 루터도 당시 가톨릭 주류로 볼 때는 이단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한 일은 오히려 경줄을 다시 찾는 것이었죠. 하지만 그도 완전히 읽어 내지는 못했어요. 그게 인간의 한계이고 그래서 우리에게 사명이 남겨진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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