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로 불참.

1. 한국 여성신학자 (정)현경
[다시 태양이 되기 위하여]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거야]
[미래에서 온 편지]

p.193

또한 사랑의 행위에 있어서 윤리의 근거가 달라지죠. 사랑해야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에요. 전후가 바뀌어요. ‘당위 의 윤리’가 아니죠. "인간은 이웃을 사랑해야 해. 난 저 사람을때려 주고 싶지만, 하나님이 사랑하라고 하셨으니까, 사랑하겠어." 이렇게 의지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존재 자체로 인격적으로 바라보면, 그리고 ‘나‘와 ‘너‘로 서로 마주보고 존재의 흐름을 느낀다면, 무엇보다 서로를 감싸는 하나님의 사랑을 같이 느낀다면, 그렇다면 사랑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감정이라는 겁니다. "스며듦"이라는 단어가 가장 적절할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사랑의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겁니다.

p.198

예수님의 십자가는 목표가 아니라 대가였다는 해석입니다. 십 자가를 위해 태어나고 걸어간 삶이 아니라, 그가 만나고 관계했던 모든 사람에 대한 급진적 사랑을 포기하지 않은 대가였다는 말이죠. 그건 살려 내고 싶은 간절한 마음 때문에 하게 되는 행동이고 그 결과가 십자가였다는 거예요.

p.203 주석 (자유주의 페미니즘 한계)

페미니즘이 주장하는 ‘자유‘가 가장 잘못 결합하는 한 가지 사례는 여성이 갖는 전근대적 기득권과 후기 - 근대적 기득권만을 선택적으로 취합하는 것이에요. 예를 들어 전통적으로 여자는 주체가 아니었기 때문에 공적 책임을 지지않아도 되었어요. 남자들에게 억압도 받았지만 한편으로 ‘가부장제 유지의 도구’로서 보호도 받았죠. 그 문화적 습속을 가져와서 "여자는 약해. 나를 지켜줘야 해" 이렇게 의존적인 주장을 하고, 반면 "각자도생의 후기-근대사회에서는 나의 직업 기회, 성공 기회를 남에게 양보할 수 없어. 싸워야 해" 이렇게 말하면서 행여 성차별로 인한 불이익을 겪으면 어쩌나 혈안이 되어 있는, 그러면서도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종종 만납니다. 이건 명백히 잘못된 결합체예요. 페미니즘이 제일 먼저 절연해야 하는 것은 전근대적 여성응시입니다. 여성이기 때문에 당했던 차별적 부분만이 아니라 기득권도 포기해야 해요. 그래서 저는 ‘나의 자유‘ ‘나의 권리‘ ‘나의 높아짐‘ ‘나의 확장‘ 이런걸로 페미니즘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자유주의적 페미니즘의 오용 가능성을 늘 주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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