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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의 아버지
카렐 판 론 지음, 김지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뻔한 스토리를 독창적이고 상큼하게 다룬 작품, 내 아들의 아버지.
한국 드라마로 만들어졌다면, 분명 불륜이 난무하는 그렇고 그런 소재의 드라마라고 할 게 뻔한 주제를 이렇게 상큼하게 다루다니!
사실, 한국에서만도 혈액형 검사로 시작된 불씨가 친자확인 소송까지 이어지는 현실이 적지않다. 전문 법인까지 만들어질 정도면, 그리 적지 않다는 말이 된다. 만일 당신이 이제껏 키운 아이가 내 애가 아니라면?
상상만 해도 발에 힘이 풀리고 아찔할 것이다.
자식을 꼭 낳아야 한다는 사명감. 그것은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본능인 종족번식때문이 아니다.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하고, 하기 싫은 일을 감례하는 동기부여가 되며, 때론 자식이 의지가 되기도 한다. 꼭 낳아봐야만 아는 것 아니지 않나. 가족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것이다. 핏줄이란 유대감, 원수 같아도 절대 놓을 수 없는 끈. 늘 엉키지만 그래도 한올 한올 조금씩 풀면서 모양을 잡아가는 것이 우리네 가족의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무정자증을 선고받는 다면 기분이 어떨까.
자신의 인생을, 함께한 과거를 통째로 도둑맞은 것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이제껏 쏟은 애정, 공들인 시간, 나와 닮았다고 믿어왔던 이곳 저곳의 생김새, 하는 짓이 꼭 빼다닮았다던 습관들. 이 모든 것이 다 물거품이 되며, 어디가 하소연도 하기힘든 '얘기치 못한 사기 피해자'로 전락하고 마는 끔찍한 일인 것이다.
그런 극악무도한 짓을 버린 인물을 저주할 수도 없다면 분노를 어떻게 터뜨릴 것인가. 아내 모니카는 이미 십년 전 세상을 떠나 고인이 되었다. 그는 결국 아들에게 비밀로 하고 아들의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발단을 길게 늘리지 않고, 군더더기 없이 시작했다.
당신은 불임입니다!
"집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니 각자 알아서... 해산!" 이렇게 시작하는 <홈리스 중학생>만큼 파격적인 전반은 아니지만, 독창적인 느낌으로 이어진다. 남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세상을 배치하며 전혀 거리낌없이 내용에 충실할 수 있도록 문학적으로도 손색이 없고, 개성이 잘 들어나면서도 반전이 존재하는 신기한 책이었다. 그의 연애관이나 친구 아르민이나 등장하는 사람이 범상치 않은데, 여기서 또한 현실과는 다른 또 다른 세계를 만난 것 같아 색다른 경험이었다.
“우리 중에 스스로의 머릿속에서도 지워버리고 싶은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은 사람이 있단 말인가? 자네라면 함께 잠자리를 했던 여자들로 구성된 배심원들 앞에서 가장 타락하고 파렴치한 죄를 고백하고 싶겠나?”
친구인 아르민의 말이다.
세 가지 근거를 정리한 수첩, 그 근거를 추론하는 상황, 그리고 마지막 그는 누구인가 밝혀지기까지. 독자는 여러가지 가설을 세울 것이다.
과연, 보(아들)의 아버지는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