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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불찰 씨 이야기 - 장편 애니메이션, 우리는 어떻게 2억 5천만 원으로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나?
한국영화아카데미 제작연구과정 1기 지음, 황희연 엮음 / 씨네21북스 / 2008년 11월
평점 :
<제불찰 씨 이야기>는 '이구소제자'라는 특이한 직업을 다룬 독특한 구성력과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만들기 전, 작업팀에게는 3억 원이 주어졌다. 보통 3억 원으로 장편 애니를 만들어 봐라, 라고 말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 돈의 위력은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까, 상상해 보았다. 일반인인 내겐 큰 금액이라고만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소개글에 따르면, 1시간짜리 TV 애니메이션의 경우 편당 제작비는 약 10억 원,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은 평균 약 25억 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좀 더 화려한 결과물을 얻어내려면 100억 원 이상도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10년 이상의 시간 투자도 옵션으로 생각할 문제라고 한다. 이전까지는 관심도 없었던 제작비의 실체를 알고나니 입이 떡 벌어졌다. 제 불찰 팀에게 주어진 시간은 1년. 금액은 3억 원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제작비의 일부분인 2억 5천만 원으로 모든 것을 완벽히 해냈다. 다양한 분야에서 스펙을 쌓은 인원이 모여서 결국 해낸 것이다. 물론, 1년이란 시간동안 바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원작자에게 금액 지불해야지, 캐릭터 디자인해야지, 작업하는 당사자들에게 돌아갈 임금도 줘야지, 컴퓨터 작업도 완벽히 해야지. 애니메이션의 준비과정만 해도 복잡했을 텐데. 머릿수가 많은 만큼 의견충돌도 많았을 텐데. 등의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실제로 의견이 나뉘어져 한 방향으로 끌고 가는데도 고비가 많았다고 한다. 그들이 흘린 땀방울 만큼의 값어치를 하는 작품이 나와야 함은 파트너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좀 더 지혜로운 방법으로 완성했으리라 생각한다.
제작과정만으로도 힘든 여정이 상상되며 경외심마저 들지만, 결과물은 사심없이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완성된 애니메이션은 원작인 이적의 <지문사냥꾼>의 단편인 <제불찰 씨 이야기>와는 차별화되는 것이 분명 있었다. 기존엔 없었던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으로 나타내고자 하는 방향이 좀 더 명확해져 보였다. 무당 캐릭터와 근육남의 캐릭터로 좀 더 에로틱한 이미지가 연상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부족한 제작비 현실을 감안해서 결정한 원작과 다른 결말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원작에서의 허무한 죽음보다는, 현실을 비판하는 그의 죽음이 좀 더 상징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 공들였던 많은 인력과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판단을 조심스레 해본다. 실제로 애니메이션을 보지 못했기에 확신하긴 힘들지만, 다른 애니메이션과 다른 독창성이 돋보이는 작품임은 틀림없었다. 이야기는 거미가 된 제불찰 씨의 재판을 받게 된 사연으로 이어진다. 타인의 귀를 파는 '이구소제자'란 직업을 갖고 있는 제불찰 씨는 어릴 적 잃어버린 누나를 그리워하며 찾는 도중 사장의 음모로 인해 몸이 줄어드는 알약을 먹게 된다. 거미만큼 몸이 작아진 그는 사람들의 귀 청소뿐 아니라 머릿속도 들여다 보게 되는데, 그러던 어느 날 타인의 머릿속에서 본 누나의 영상으로 모든 것이 명확해 진다. 자신에게 언제나 따스했던 누나는 실제로는 제불찰을 귀찮아하며 도망가려고 했다는 것을. 그리고 누나의 억울한 죽음을 기억해 낸다. 결국 분노로 인해 거미로 변하게 되고 누나의 전 남자친구를 살해하게 된다. 마지막이자 처음 시작으로 사람들에게 재판을 받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무엇이든 자기탓으로 돌리는 제불찰 씨의 이름에서도 캐릭터의 성격이 잘 나타난다. 매번 당하고, 착하게 웃고, 남을 위해 일하는 이땅의 많은 제불찰 씨도 화가 나면, 자신의 모든 것과 다름 없는 소중한 것을 잃게 되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인 것 같다. 동시에 남의 슬픔이나 일에는 별 관심이 없는 현대인의 냉정함도 느낄 수 있었다.
환상적이지만 너무나 현실적인 애니메이션, <제불찰 씨 이야기>. 실제로 이 애니메이션을 꼭 보리라,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