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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자 펠레 ㅣ 레인보우 북클럽 10
마르틴 안데르센 넥쇠 지음, 정해영 옮김, 최창훈 그림 / 을파소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지은이에 대한 소개글에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면을 날카롭게 파헤치면서도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충실하게 묘사하고 선량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려 낸 유럽문학계의 거장이라는 표현이 있다. 책을 읽어보니 묘하게 공감하는 순간이 많았다. 하지만 내가 지금 읽은 <정복자 펠레>는 마지막이 어른이 되기 위한 모험의 시작으로 끝이 난다. 어떤 성공 스토리가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감이 컸던 만큼 실망감도 더했다. (4부작이란 걸 미리 알지 못했다.) 하지만 소설의 시작은 훌륭했다. 네덜란드 인이 함께 하기엔 다소 폐쇄적이고 삭막한 분위기를 잘 연출했고, 어떤 시작이 올지 궁금증을 유발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동안 온다 리쿠나 신예 소설가들이 보여주던 깔끔하고 짤막한 문체에 길들여져 있던 내게, 마르틴 안데르센의 문체는 또다른 매력을 선물했다. 잡담과 같은 군더더기는 깔끔히 잘라내고 중요한 상황을 그럴듯하게 묘사하는 그는 세상을 훤히 꿰뚫는 듯했다. 적어도 내가 이 두꺼운 책을 손에 쥐고 자주 읽게 만다는 매력은 충분히 있었다. 특히나 스톤 농장에 합류하게 되고 으스스하게도 여인의 울음 소리를 듣게 되는 순간이 궁금증의 절정이었던 것 같다.
소설의 주인공은 펠레. 늙고 힘없는 노인, 라세의 아들 펠레였다. 그들은 스톤 농장에서 일을 하며 끼니를 해결했는데, 처음엔 순진해서 사람들에게 놀림을 당하던 펠레도 점점 세상에 적응하며 성장하는 모습이 압권이었다. 펠레가 분하게 당하는 순간이나, 놀랍게 상황을 모면해가는 상황을 지켜보며, 순간순간을 상상하게 됐는데, 상상속의 펠레는 어리지만 당차고 의로운 아이로 자리했다. 늙은이와 어란 아이를 일꾼으로 받아줄 마땅한 곳이 없는 터라, 그들 부자는 사연많고 탈도 많은 스톤 농장에 지내게 되지만 가진 것 없어도 가장 행복해 보였다. 동물을 사랑하고, 어찌 보면, 하찮은 쥐의 죽음에도 눈물을 보일 줄 아는 이 아이야 말로 크면 큰 인물이 될 거란 생각이 들곤 했다. 영화의 원작소설이라 그런지 영화로 본다면 그 감동이 배가 될 것 같았다. 이미 다수의 상을 받은 걸로 봐서 감동적인 스토리임은 틀림 없었다. 뭔가 큰 정복자다운 결실은 아직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이 아이가 잘 자라만 준다면 모진풍파 끝에 결실을 이룰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왜 그리 긍정적인 상상을 하게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그간의 행적을 보고 그리 생각되는 것 같다. 아버지 라세를 위해 주먹을 날리기도 하고, 모험을 마다하지 않는 호기심과 상상력, 자신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배울 점을 알고자 하는 펠레의 마인드가 마음에 든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영화로 한 번 보고 싶단 생각이 든다. '내 인생 최고의 영화'라는 찬사가 띠지를 장식하고 있어서 더 끌리는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가족의 소중함을 아는 이 아이에게 배울 점을 몇가지 얻은 것 같다. 잠시 눈을 잃었을 때에도 긍정적인 생각을 하던 할머니(칼레 삼촌의 장모)에게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