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
로버트 J. 소여 지음, 김상훈 옮김, 이부록 그림 / 오멜라스(웅진)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서기 2013년, 타임머신 개발에 성공으로 두 명의 고생물학자가 떠나는 시간여행.

  

이 소설을 요약하자면, 공룡 멸종의 원인을 찾아 백악기로 떠나는 시간여행이다. 그만의 상상력으로 멸종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었다. 과정에 필요한 요소들로 말하는 공룡, 알고 보니 숙주인 공룡을 조정하는 파란 젤리 '해트'. 그리고 다섯 번째 소행성의 정체와 미래에서 온 탐사대인 그들에 대해 이야기해야 했다. 극적으로 끌어내기 위해, 일과 사랑에서 모두 맞딱드려야만 하는 두 남자의 대립구도도 빠질 수 없었다. 

 

다소 독특한 구성이 멸종의 개성을 돋보이게 해줬는데, 두 개의 이야기로 나뉜다는 것이다. 하나는 일기를 통해 본 화자의 과거 백악기의 시간과 나머지는 현재 그의 시간으로. 의아하게도 그는 과거에 백악기에 있었던 기억이 없었다. 그저 일기를 통해 알게 될 뿐이다. 이 것이 사실이라면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업적이 아니던가. 그래서 그는 사실을 알기 위해 타임머신을 발명한 칭-메이 황을 찾아간다. 현재의 그가 과거를 통해 사랑의 소중함을 깨닫고 해피엔딩을 맞이하지만, 원수를 죽이느냐 살리느냐 윤리적인 문제가 뒤따르지만...

 

하지만 처음 얼마동안 <멸종>은... 내겐 어려운 과학 소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주기적 멸종론, 양자역학, 평행우주론 등. 처음 들어보는 과학적인 이론을 들며 대화하는 것이 많았다. SF소설이라 내심 뭔가를 기대했던 나로선, 솔직히 생소한 용어와 딱딱한 스타일에 거부감이 많이 들었다. 당연히 이 정도쯤은 기본적인 지식인양 말하는 두 고생물학자 때문에 이질감은 더했었다.

 

멸종의 원인으로 꼽힌 알바레스 가설을 읽으면서도 집중이 잘 안되었고 말이다. (아래는 발췌한 글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제 2의 달의 붕괴가 촉발한 지구적 규모의 한랭화에 기인한다고 한다. 이 달의 잔해는 지구 주위를 돌다가 지구의 적도 위에서 일시적인 고리를 형성하면서 햇볕을 차단했고, 그 결과 지구 기온은 백만 년 가깝게 낮은 상태를 유지했다는 설명이다.

클릭스를 포함한 다른 과학자들은 알바레스 가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미지의 암흑성이 소행성대나 오르트 성운을 주기적으로 교란한 결과 일어난 운석 충돌에 의한 폭발이야말로 백악기-제2기 및 시신세-점신세 멸종을 포함한 정기적인 멸종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지금이야 무슨 말인지 이해했지만, 초반에 이 구절을 읽는 동안은 글이 눈으로 읽히는지 코로 읽히는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집중력이 떨어진 게 사실이다. 아무튼 이 가설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이 화자인 브랜디였다. 그는 여러 학자들이나 클릭스의 주장에 의혹을 제기하면서 언쟁 끝에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로 한 것이다! 과연, 공룡의 멸종이 과연 무엇 때문일까? 학자들 대부분이 원인으로 꼽은 사례는 운석이었는데. 그들의 주장은 틀린 것일까?!

 


결국, 증명을 위해서 두 사람은 햄버거형 타임머신에 탑승하게 된다. 그런데 열악학 연구비용 때문이라고 하지만, 달랑 두 사람만 보내다니. 그건 마치 도박과 같았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은 일명 '거대한 도마뱀'뿐일 텐데. 언제 어디서 죽을지도 모르는 모험인 것이다. 더군다나 한 여자를 두고서 벌이는, 삼각관계의 골이 깊은 두 사람이었다. 사랑은 현재진행형이었으니 타인의 눈을 피해 죽이고 싶은 욕망도 분명 들끓으리라... 다행히 서로를 적대시하는 마음이 있더라도 그들은 본분에 충실한 프로들이었다. 여러 가지로 의견이 대립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연구에 대한 열정이었다.

 

자존심 싸움이 될 백악기 탐험! 준비물은 타임머신 기기인 스턴버거, 쌍안경, 여분의 식량과 의약품, 디지털 카메라, 팜탑, 워키토키와 무전기 등이었다. 무려 6500만 년 전으로 돌아간 그들은 공룡들과 두 개의 달을 보며 백악기임을 확신한다. 첫 번째 달은 루나. 두 번째 달의 이름을 '트릭'이라 명명한다. 마치 두 달을 그들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은유적으로 그랬다. 다섯 번째 행성을 그녀의 이름, '테스'로 부르는 것처럼.

 

사실 브랜디는 모르는 척 할 뿐. 이혼 전에 부인의 간통 사실을 확인한 바 있었다. 그러니 클릭스를 마음 속 깊이 증오할 수밖에. 그래서일까? 파란 젤리와의 접촉으로 나왔던 단어, '흑인'. 클릭스에 대해 품고 있던 자신의 무의식이 링크되었을 때 나 역시 동화되었다. 브랜디가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했던 인종차별적인 사고에 적지 않게 놀라고 있었을 때, 나 역시 공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클릭스는 유명한 학자이지만 어쩔 수 없는 흑인이었다. 자신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는 본능이 들키는 순간이었으리라. 무섭지만 공감하고 말았다. 그런 본능은 완전히 지우지 않은 채 언제든 살아나려 기다린단 그 문구가...

 

그런 브랜디가 클릭스를 죽일 수 있는 정당한 이유가 생겼을 때. 습격당해 정신을 지배당한 클릭스를 죽이지 않은 이유는 뭘까? 그만이 아내에게 부르던 애칭, 램찹(새끼 양구이)이 그의 입에서 나왔을 때, 무덤까지 간직할 비밀을 아내가 그에게 떠벌린 사실을 들었을 때. 충분히 살인충동이 들었으리라.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그를 조절할 수 있었던 건 한 때나마 친구였던 우정 때문일까, 윤리적인 자신을 지키고 싶었을까.

 

아무튼, 학살무기로 쓰이는 '트로오돈'도. 바이러스처럼 숙주에게 딱 달라붙어 기생하는 파란 젤리 '해트'도. 두뇌싸움으로 권력을 열망하는 '인간'도 지구를 둘러싼 아귀다툼에선 온전히 자유롭지 못한 듯 보였다. 처음 이질감은 중반쯤부터 많이 희석되었지만 완전히 사라질 순 없었다. 그래도 근래 들어 본 소설책 중에선 가장 영미권 소설다운 책을 읽은 것 같다. 멸종 원인이 살짝 허무하긴 했지만. 허무맹랑한 상상력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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