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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토피아 - 소외와 편견이 없는 유토피아
키티 피츠제럴드 지음, 김선형 옮김 / 김영사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소외와 편견이 없는 유토피아, 피그토피아!
제목 그대로 새로운 고전이 탄생했다. 성장기 소녀, 홀리 록과 돼지머리 괴물로 불리는 잭 플럼의 이야기.
성장소설이자 끔찍한 결말을 담는 피그토피아는 두 화자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쉽게 구분하는 방법은 화자가 반말을 할 때는 잭, 존댓말은 홀리로 구분할 수 있다.
번역가의 말을 빌어 더 자세히 표현하자면, 잭 플럼의 언어는 '유아어'를 닮았다. 몇 개 되지 않은 어휘를 조합해서 마음을 표현하니까.
나는 중간 중간 이상한 어휘와 문맥을 보면서 오타인 줄 알았는데, 지극히 정상적으로 타이핑 한 것이 맞았다. 그의 세계관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던 거다. 잭은 돼지들에 관한 일을 제외하면 자신에게 닥친 일도 관찰자의 시점으로 보듯 이야기 하니까 신기했다. 모든 것을 초월한 사람처럼 따뜻한 마음으로 공격적인 상대를 여리게 보고 보호해주려는 마음을 간직한 인물이다. 어찌보면 추악한 세상을 아는 30대였지만, 오히려 더 순수했다.
그리고 홀리의 언어는 솔직하다. 존칭을 써서 소녀적인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지만, 상대를 느끼는 표현이 거침없으며 누구보다 마음이 따뜻한 어른으로 성장할 것 같은 희망을 안겨준다. 처음엔 다른 사람들의 생각처럼 잭을 괴물이라고 부르고, 격한 행동을 보였지만, 그에게서 아름다운 영혼을 발견하고 소통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어른들처럼 이목이 두려워 진실로 소중한 친구를 포기하려 하지 않는 열정을 간직한 당찬 소녀. 그녀가 고민하는 것들이 대체로 공감이 갔다.
잭 플럼의 세계는 돼지들의 세계이며, 돼지 궁전 외의 일상은 끔찍 그 자체였다. 특히나 함께 사는 유일한 사람인 '엄마'라는 작자 때문에 더!
위스키를 입에 달고 사는 엄마. 폭언과 폭력을 일삼는 엄마. 불편한 몸을 휠체어에 의지하며 모든 수발을 들게 하는 엄마. 남편을 원망하며 욕하면서도 그리워하는 엄마. 그 모든 것을 아들의 탓으로 돌리는 엄마!
엄마라는 이름으로 용서하고 참아내기엔 너무 가혹한 삶을 살고 있는 잭이 가여웠다. 남들이 모두 손가락질을 해도 세상에 단 한 사람... 엄마라는 존재는 감싸안고 품어주는 사람이 아니었던가. 그를 보면서 엄마가 학대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단걸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모두가 효도를 부르짖어도 잭 만큼은 예외로 행동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비참한 돼지우리였다. 그의 삶은...
외로운 사투를 벌이며 고독과 슬픔으로 몸부림쳤을 잭. 그리고 자신을 진심으로 이해하려 하지 않는 엄마를 보며 힘겨워 하는 홀리.
잭과 홀리는 누가 뭐래도 친구다. 돼지궁전은 서로의 영혼을 치유해주는 소중한 연결고리가 된다. 하지만 방해자가 너무 많다. 원치 않는 남자친구를 보금자리로 끌어들이려는 홀리의 엄마도 그렇고, 잭에게 돌을 던지는 돼지 소년들도 그렇고...
잊을만 하면 나타나 친한 친구가 되자며 다가오는 사만다는 더욱 더 그렇다. 사실, 사만다 같은 사람들은 찾아보면 눈에 많이 뛴다. 사실, 따지고보면 잭과 홀리보다 더 불쌍한 영혼인 것 같다. 진실한 친구 한 명 없고 애정결핍과 아동 성폭행으로 비툴어진채 홀리에게 집착하는 사만다.
잭 플럼의 세계가 사라지는 순간, 홀리는 무사히 성장통을 마치고 어른이 되어간다.
지키고자 했던 영혼이 통하는 진정한 친구를 잃었을 때, 비로소 어른이 된다는 스토리가 충격 그 자체였다. 너무나 현실적인 동화. 피그토피아는 천국같은 해피엔딩이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끔찍한 현실을 반영한 뜨악스러움이 존재한다. 분량도 많아서 처음엔 언제 다 읽을까 우려가 됐던 소설인데, 의외로 가슴에 무언가를 심어준 소설이 되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단어나 잭이 바라보는 세상을 보고 있으면 마음을 휘벼파는 어떤 것이 느껴진다. 예를 들자면, 어른이 되는 사용 설명서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향수도 어른이라는 상징성을 염두해 둔 것 같았고, 성관계에 대한 순수한 소녀의 시선 또한 이해가 된다. 대부분의 내용이 현실과 이어져 가슴을 짖눌르기에 충분했고, 책을 읽는 내내, 언제 잭에게 불운의 기운이 뻗칠까 조마조마해지면서 사만다를 보면 갑갑했다. 홀리와 잭의 우정이 끝까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과 홀리의 엄마가 딸의 말을 믿어주고 이해해줬으면 하는 바람도 머물렀다. 결국은 현실에 가까운 결과를 낳았지만...
잭 플럼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세상을 보는 그의 두 눈엔 어떤 것들이 담겼을까?
만약 내가 잭이라면 아마도 그처럼 모든 것을 초월한 도인처럼 행동하긴 힘들었을 것 같다. 모르긴 몰라도 분노와 고통이 버무려진 인간도 괴물도 아닌 어정쩡한 인물로 살지 않았을까... 엄마에 대한 학대를 참고 견디지도 않았을 것 같지만, 적어도 잭 플럼과 똑같은 선택의 순간이 온다면, 홀리를 위해 목숨을 내버릴 수는 있을 것 같다. 잔혹 동화를 읽은 듯한 느낌이 오래도록 가시지 않았는데, 작가는 글을 쓰면서, 그리고 번역가는 번역을 하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지금 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