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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사용 설명서
이병준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부인에겐 다소 분노를 일으키는 남편을 위한, 아내 사용 설명서
처음 이 책을 보고 재미있겠단 생각만 했지, 분노가 일어날 거란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초반 몇 장을 볼 때에 일렁이는 화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수그러 들 수 있었지만...
대체 부부는 왜 원수가 되는 걸까? 깨소금 달달 볶아도 모자랄 판국에... 정말 남편들은 아내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울 때가 있단 말인가?
믿을 수 없다. 믿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서로 싫은 것을 미루고 상대에게 책임전가를 하거나 심한 말을 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자존심을 건들면 부부생활이고 나발이고 뭐가 예뻐서 상대의 마음을 받아준단 말인가. 암, 상처가 아물기 전에는 상대의 머리털 하나도 진저리 칠 수 있는게 사람 사이인 것 같다.
그러면 저자는 무슨 복을 누르겠다고 이런 위험한 책을 냈단 말인가. 처음엔 <남편 사용 설명서>. 이젠 <아내 사용 설명서>까지!
자세히 살펴보면, 아내를 AS맡기지 말라는 전개가 대부분이다. 결국, 남편들이 느끼는 아내의 이상행동들을 쭈욱 나열 한 뒤, 해결책을 제시하는 방식인데, 왠만한 것들은 정상이니 받아주고 넘어가자는 답변으로 일관한다. 아내의 말에 호응하고 좀 더 이해해주자는 취지인 것 같다.
그런데 왜 아내를 배려하고 자상하게 대하는 것이 팔불출이란 말인가?
우리 결혼했어요. 라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보면, 가상이지만 신혼부부처럼 느껴지는 각각 개성이 다른 부부들을 볼 수 있다. 거기서 알렉스는 뭇 여성들의 달콤한 상상을 채워주기 바빴지만, 동시에 일부 아줌마들에게 현실성이 없다는 면박을 듣거나 남자들에게 최수종 씨 다음가는 공공의 적 취급을 받곤 했다. 반면, 정형돈 씨는 남성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여성들에겐 말과 댓글로서 단매를 맞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나 역시 게으른 뚱보 캐릭터로 나온 그를 볼 때 미간에 세로로 주름이 졌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남편의 애정이 넘치는 건 개인의 자유이니 문제될 것이 없지만, 부족한 건 해가 된다고 본다.
애정이 있다면, 연약한 여자에게 모든 것을 다 시키고 싶을까? 귀차니즘이라고 변명한다면 여자도 충분히 귀차니즘 발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용의가 있다. 그리고 너무 가사와 육아를 아내에게만 전적으로 맡기는 것은 직무유기 아닌가? 요즘은 여자도 맞벌이하는 시대 아닌가! 나는 여자들이 티 안 나는 집안 일을 하면서 늙어가는 것을 마음 아프게 생각한다. 만약 미래에 결혼한 내가 그렇게 된다면, 무지 유감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사일을 하기 싫어하는 여성의 주장을 철부지로 취급하고 별종으로 보는 시선은 부당하다고 여길 수밖에...
이 책의 저자는 기본적으로 여자는 이래야 한다, 라는 생각이 틀에 박혀서 솔직히 그건 마음에 안 들었다. 여자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하는 사회에서 손가락질 받지 않고 당당히 살려면 자신의 바람을 포기하고 살아야만 한다. 결국 자신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물론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면 당시, 서운한 점, 불만인 점을 그때 그때 털어놓아야 하고, 의무 역시 다해야 한다. 그건 맞는 말이지만, 어디까지가 여자가 책임져야 할 범위인지 잘 모르겠다. 이제까지 우리 어머님 세대가 해 오던 모든 가사노동을 여자만 해야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니까.
세상은 조금씩 바뀌고, 생각도 바뀌는데 부디 남자들만 고리타분하게 사고하지 않길 바란다. 그리고 틀에 얽매인 여자들도 말이다.
당당히 요구할 것은 하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택해서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내 사용 설명서의 취지가 남성들에게 너희는 아내의 이런 점을 어여삐 봐주고, 이해하고, AS를 받지 말아라. 남편들 너희는 우성인자다, 라는 식의 스타일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결과적으로 행복하게 다름을 인정하고 잘 살자는 취지이므로 책에 대한 사례는 참고할 만 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남자 입장에선 반길지 모르지만 여자가 이 책을 본다면 살짝 분노 게이지가 올라갈 지도 모르니 주의하기 바란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 담겼다 해도 아내가 보기엔 살짝 자극적인 문구가 다소 많이 등장하니까. 하지만 만약 저자가 <남편 사용 설명서>에서도 똑같이 자극적인 문구를 썼다면 나는 그를 환영하겠다. 어찌 됐든, 팔리기 위한 문구를 사용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