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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조진국 지음 / 해냄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역시 그답다.
<소울메이트>와 <안녕, 프란체스카>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로, 주옥 같은 명대사가 단연 돋보인다. 베스트셀러 출간 후 두번째.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이 아이러니한 제목부터 끌렸다. 읽으면서 역시나 아름다운 노랫말처럼 착착 감기는 글귀는 만족감을 주었지만 그보다 더 눈길이 갔던 것은 구성력이었다.
'오렌지', '헬멧', '고양이' 라는 주제를 주고 글을 써봐라. 사랑에 관한.
이렇게 주문을 한 듯한, 적절한 글의 완성.
그는 오렌지 하나로 '너'와 오렌지 빛 사랑을 적절히 연출했다. 사랑하는 남자를 헬멧에 비유하는 독틈함도 꿈결 같이 흘러가는 문체에 사랑스러워졌다. 그런데 작가가 남자여서 그럴까. 그녀는 보통은 그러지 않을 기다림에 익숙해 있다. 여자들이 화장을 하느라, 옷을 고르느라, 그에게 더 예뻐보이려 꾸물대는 동안 약속 시간을 훌쩍 넘겨버리기 일쑤... 아닌가? 그런데 여기서 화자는 남자를 기다린다. 30분이 넘도록. 물론 기다림에 사랑의 의미를 부여했기에, 적절한 설득력을 부가했기에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자작가가 여자의 입장에서 쓰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역시 감성의 깊이가 깊은 것 같지만, 여자와 남자는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그런 느낌은 전박적으로 이야기가 끝나감에 따라 여자보다 섬세할 수 있구나. 이런 생각으로 변해갔다.
하일라이트로 꼽자면, 토끼와 거북이!
익히 알고 있을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나는 그의 해석에 만 점을 주고 싶다.
이책을 읽기 전엔 이런 생각이 주를 이루었다.
게으르지만 능력있는 토끼! 근데 잠은 집에 가서 자야지.
성실함을 내세운 거북이! 근데 수중전으로 하면 빠른데? 바보 아냐?! 등의 개그표현이 난무했었다. 개그 소재로 쓸 때 말이다.
기본적으로 무난한 해석이 주를 이루었는데, 작가 조진국은 달랐다.
기존엔 성실함, 꾸준함 등을 내세운 교훈이었다면, 사랑하는 연인들의 관계로 빗대었다. 돌아보지 않는 토끼. 그리고 토끼의 등을 보고 달리는 거북이. 연인관계로 바라본 그 해석이 마음에 들었다. 누구나 토끼가 되기도, 거북이가 되기도 하지만 모두들 거북이였던 자신을 망각하지 않을까?
사실, 그가 마음에 든 이유는 따로 있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는. 떠나간 사람을 떠나 보내지 못하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삶을 마음을 다해 살아가는 그들이 내 눈엔 거북이로 보였다."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거북이들의 아픔을 아는 작가. 그래서 좋은 느낌으로 다가왔는지 모른다. 아름다운 문체보다도 거북이들에게 힘이 되어줄 진심이 담겼으니까. 그런 진심이 향기로 다가왔다. 책갈피에 베인 여자 향수냄새. 따뜻함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