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
퍼시 캉프 지음, 용경식 옮김 / 끌레마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살냄새에 가장 어울리는 향수, 머스크를 40년간 꾸준히 애용한 엠므 씨.

어느날, 유부녀인 애인 이브는 그에게 향이 달라졌다는 말을 무심코 내뱉었다. 그 한 마디에 혼란스러워하고 집착하게 되는 엠므 씨. 뭐가 달라졌을까?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새로 산 향수의 용기가 달라졌을 뿐이었다. 그는 다쓰고 폐기직전이었던 병을 찾아내어 용기에 담아서 뿌려본다. 결과는 마찬가지. 향이 달라졌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예전의 향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조금은 유난스럽기도 하지만 그럴만도 한 것이 엠므 씨에겐 향수가 유혹과 정복전략에 강력한 무기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그는 향수 제조사인 그라스에 편지를 보내게 되고, 2주를 기다린 끝에 담당자 베르투 씨에게 기다리던 답장을 받게 된다. 

알고보니, 대그룹 회사에서 '그라스' 향수 회사를 인수하면서 머스크 제조 과정에 따른 어려운 문제에 봉착, 빠른 결단을 내린 것이다. 본래 머스크는 발정기 사향노루의 하복부 분비선에서 뽑아낸 물질로서, 공급이 불확실하고 원가가 비싸기 때문에 희소성을 원하는 구매자층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제조과정을 변경하게 된 것이다. 베르투 씨는 회사를 대변하기를, 그룹이 지켜온 이미지나 현실적인 조건에 부합하지 않아 그에 대응하는 대체물로서 인공머스콘을 원료로 한 새 상품을 출시하였고, 향수 전문가들의 후각에 의한 판단으로는 구제품과 향이 동일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용기의 변화만 있을 뿐, 이름은 그대로 머스크로 판매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신제품이 구제품 머스크를 잊게 해줄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엠므 씨는 편지를 여러번 읽고 또 읽었지만, 속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사실 그는 머스크가 어떤 식물에서 추출한 수액정도로 예상을 하고 있었기에 충격은 두배였다. 그런데 발정기 수컷의 분비물이라니! 구제품 머스크의 향이 도는 얼마동안 그는, 발정기 사향노루였던 것이다.

 

그는 결심을 굳힌다. 천연 향수 머스크를 156병 확보하기로. 

그가 젊은 날, 숱한 작업의 성공을 거머 쥐게 만든 '로통드'에서 실패의 쓴 맛을 보고는(그도 그럴 것이 69세였다.) 더욱 향수의 필요성을 절실히 실감한다. 이윽고 실천에 나선 엠므 씨는 외국에 있는 머스크 판매상의 명단을 얻고, 그들을 만나러 다닌다. 라이베르티 씨에게 얻은 수익에 대해 그는 감사했지만 목표엔 턱 없이 부족했다. 명단의 열 다섯 명에겐 각각 다르게 쓴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짧은 광고 문안을 작성해서 일간지에 냈다. 이런 노력은 그를 웃게, 울상 짖게도 만들었다. 31개월간의 양을 확보했지만, 아르헨티나에서 온 소포는 운반도중 병이 깨져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공격적인 성향이 가득한 남자였다. 포기하기 보단 다른 방법을 모색하는 사람. 그게 엠므 씨였다. 그의 선택은 주문 생산하는 방법! 가족 규모의 작은 회사를 택하고, 향수를 주문하기 위해 담당자와 대면하게 된다. '가격은 얼마든지 지불하겠다. 원하는 천연 사향으로 제조해준다면.' 이런 생각으로 가득한 엠므 씨에게 날벼락 같은 말이 담당자의 입에서 떨어졌다. 그라스를 인수한 회사는 향수 제조법까지 샀기 때문에 특허권과 상표와 공업 소유권에 대한 법의 보호 아래 만들 수 없다는 것. 뿐만 아니라, 경쟁사의 제품을 모방을 할 경우에는 자신들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는다며 거절한다. 순조로울 것 같았던 그의 계획에 잇따른 차질이 생긴다. 156병을 목표로 한 것은 자신의 수명에 따른 계산이었는데, 그가 손에 쥔 것은 3년치 사용량뿐이다.

향수를 줄여가는 그는 기운이 빠지고 무기력해진다. 그녀와 관계를 가질 때에도 그동안 욕망에 사로잡혀 못 보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는 늙고 초라해진 자신의 몸이...

정확히 말하자면, 오로지 자신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자신감은 깨져버린 향수처럼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는 거세된 사향노루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그는 점점 외부와 단절되어 갔다. 외출하기 보다는 머스크 향내가 진동하는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어만 갔다.  

 

이제 향수를 구하려는 노력은 삶을 마감하려는 노력으로 변해버렸다.

베커 씨에게 아파트 팔기, 에클레스콘 씨의 작업실에서 포즈 취하기, 쟁크사와 장례 절차 정하기, 변호사와 유언장 작성하기 등으로. 

다음은 자살 방법을 고민했다. 결론은 자신의 옷 방에서 넥타이로 목매달기. 이미 선친이 자살한 방법과 같았다. 평소에 선친의 묘에 엿먹이기를 빼놓지 않고 실천하는 그였다. 그는 무엇으로 목을 맬지 고민하던 중 넥타이로 결론 내리고는 날짜문제로 또 고민한다. 마사지사 자클린 양이 그가 죽은 후 마사지를 하기 좋을 시간과 날짜로 말이다. 충동적인 결단이 아닌 고민 끝에 행해지는 자살이라니. 계산하에 실행하려는 것 자체가 특이했다.

그러나 작가는 너무나 진지하게 아무렇지 않게 우스깡스럽거나 어이없는 내용에 대해서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재주를 지녔다. 읽고 보면 너무 엉뚱해서 점점 뒷 이야기가 궁금해지기에 이르렀다. 그는 머스크의 양에 따라 죽는 날도 정하려는 것 같으니, 향수에 대한 사랑은 삼손이 자신의 머릿칼을 아꼈던 만큼이나 대단했다. 남들에게는 단지 소모품 중 하나인 향수일텐데. 엠므 씨에게 머스크는 삶의 이유이자 짝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처럼이나 대단했던 것 같다.

아무튼 묘한 매력을 지닌 이야기임은 틀림없다. 엠므 씨뿐 아니라, 자클린이란 여자의 생각 또한 그 못지 않았으니까.

향수를 향한 집착이 자살로 이어지는 묘한 이야기. 출판사에선 가장 우아하고 완벽한 자살이라 칭하는데 보는 사람마다 그 느낌은 다를 듯 하다. 자살을 이런 식으로 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남을 배려하는 자살이었지만 자살 과정이 참... 그의 죽음에 슬프지 않게 만든 그 천연덕스러움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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