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소년이 서 있다 민음의 시 149
허연 지음 / 민음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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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있는 자는 이미 밖에 있던 자다>



불빛이 누구를 위해 타고 있다는 설은 철없는 음유시인들의 장난이다. 불빛은 그저 자기가 타고 있을 뿐이다. 불 빛이 내 것이었던 적이 있는가. 내가 불빛이었던 적이 있는가.

 

 가끔씩 누군가 나 대신 죽지 않을 것이라는 걸. 나 대신 지하도를 건너지도 않고, 대학 병원 복도를 서성이지도 않고, 잡지를 뒤적이지도 않을 것이라는 걸. 그 사실이 겨울 날 새벽보다도 시원한 순간이 있다. 직립 이후 중력과 싸워온 나에게 남겨진 고독이라는 거. 그게 정말 다행인 순간이 있다.

 

살을 섞었다는 말처럼 어리숙한 거짓말은 없다. 그건 섞이지 않는다. 안에 있는 자는 이미 밖에 있던 자다. 다시 밖으로 나갈 자다.

 

세찬 빗줄기가 무엇 하나 비켜 가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남겨 놓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그 비가 나에게 말 한마디 건넨 적이 있었던가. 나를 용서한 적이 있었던가.

 

숨 막히게 아름다운 세상엔 늘 나만 있어서 이토록 아찔하다.

 

 

이 시집을 읽어보니 나도 모르게 수긍할 수 밖에 없는 매력이 있다. 이미 밖에 있던 자라니, 있는 사실 그대로일 뿐인데도 어찌 이렇게 설득력이 있는지. 시인의 글은 담담하지만 아픔이 묻어난다. 제목에도 행에도...

 

’간밤에  추하다는 말을 들었다.’ 이나 ’나쁜 소년이 서있다’를 보면 유난히 배고픔에 대해 절실하다.

간밤에 추하다에선 배고픈 고양이처럼 쓰레기라도 뒤지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고, 나쁜소년...에서는 세월의 흔적들과 시인으로서의 배고픈 삶이 담겨있다. 다른 시들도 마찬가지, 거의 인생이 슬프단 느낌이 대부분이었다.

그는 도미를 미움에도 초연하고 용서하는 자로서 바라보기도 했다. 시인으로서는 흔한 일일테지만 그리 되고 싶은 마음을 노래한 것 같기도 하다.

작가는 세상과 벽을 맞대고 소통한다. 그럼에도 잘 살아가고 있다. 때론 가혹한 현실을 용서하며...

’길바닥이다’를 보면 홈리스로 길바닥에서 살아가는 또 죽어가는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이 떠올랐다. 슬픔이 담겼는데도 청승맞지 않다. 그래서 좋았다.

 

작가와 파란 색은 땔래야 땔 수 없나보다. 유독 자신을 나타낼 때는 파란색을 쓴다. 마치 청춘이 지나갔음을 알리는 신호같다.

그는 산을 오르고 또 산을 내려온다.

슬픈 빙하시대 시리즈는 꼭 읊어 볼만 했다. 아픔이 녹아 있는 그런 삶. 그런 사람.

그래서 그런건지 주위 모든 것들을 관찰할 때도 아픔이 서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아름답게 미화하려 하지는 않아서 좋았다. 그냥 사실적으로 자기 자신을 비하하는 표현도 서슴치 않는다. 그런 표현이 나쁘지 않았다.

 

시집을 읽어보긴 했으나 이렇게 소장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얼마전 시집을 접하면서 수필보다 더 절절한 것이 시라는 것을 깨달았고, 읽으면서 감정이 전해졌다. 그렇지만 책은 무한한데 출판되는 시집의 수는 그에 비해 부족하다. 그만큼 선택권의 폭은 줄어 드는 셈이다. 나쁜 소년이 서있다는 꾸밈없이 표현한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았다.

 

’ 수천만 년 전’은 알갱이 속의 그리움을 노래했다. 출근하면서 낙타가 고래였고, 고래가 낙타였던 시절을 생각하고 있다. 수천만 년 전 알갱이가 무엇이었을 지 어쩌면 한번쯤 생각해 볼만 하다. 예전에 화석을 배울 때 전에 지층이 바다였었고, 조개들이 있었던 증거로 화석이 발견된 사진을 볼 때면 그런 생각을 해봤던 것 같다. 시인처럼 은유적이고 시처럼 표현을 못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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