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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선생
조흔파 지음 / 산호와진주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에너지 버스 아니고, 에너지 선생?"
요즘 읽고 있는 책 제목이 에너지 선생이라는 말에 돌아온 대답이었다. 이런 말 듣기 충분하다.
표지를 보던 엄마의 "만화책 아니야?"라는 말도 이해가 될 법 했고. 그런 이미지의 에너지 선생은 내게 어떤 이미지로 남았냐 하면, 조금은 옛날 배경인 만큼 스승에게 꼼짝 못하는 소년의 일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주인공의 이름은 수동. 그의 가족들이 대거 등장하고 에너지 선생님과의 동거시절을 떠올리며 시작된다.
두사부일체를 안다면, 아사부 일체는 아는가?
내 멋대로 지어봤다. 아버지와 스승은 하나다. 이런 뜻으로.
아버지의 은사이자 아이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그는 사실 아버지보단 한 수, 아니 두 수 위로 보이긴 했다.
에너지 선생은 이 집안의 최고 어른이다. 동거가 시작된 이유는 수동이 아버지의 잦은 외박때문이었다. 수동이 아버지의 버릇을 고치고야 말겠다며 집에 들어온 에너지 선생. 물론 사업상의 이유로 외박을 한 것이지만, 에너지 선생에겐 통하지 않는 변명이었다.
그런데 그 불똥이 다른 식구들에게까지 모두 튀었다. 포고령이라는 이름아래, 모든 것이 하루 아침에 바뀌어야 했다.
먼저, 귀가시간 제한!
남자는 9시, 여자는 8시로 정한 통금 시간. 쫌 불공평한 감이 있지 않나?
그리고, (수동이 아버지를 제외한) 자가용 이용금지!
4남매는 등교길에 차기사 아저씨의 뒷 자석대신 버스를 이용해야 했으며,
취침 시간 엄수!
불 끄는 시간 11시, 기상 시간 6시라니... 포고령을 읽는 내내 나에게 에너지선생이 없다는 것이 다행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편지 검열, 방 안에서 세수 금지, 시끄러운 소음 금지 등이 있었다.
불평 불만 첫만남! 그리운 에너지 선생과의 추억.
이제는 돌아가신 선생님을 그리는 수동의 모습이 첫 페이지를 자리 잡는다. 에너지 선생과의 추억 속에 존재하던 말썽꾸러기 수동이는 어엿하게 성장하다 못해 사람들에게 인사를 받는 처지다. 이제 어엿한 사장님으로 머리마저 희끗희끗하다.
살같이 빠른 세월, 그 추억이란 것이 다소 진부할 수도 있는 생활이었고, 때론 수동이가 맞는 것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있었다.
다 큰 제자의 외박을 고치려 갑작스레 들이닥친 에너지 선생이 솔직히 이해가 안되었다. 약간의 오지랖이 넓을 지도. 아니면 정이 많을 지도. 그것도 아니면 약간 괴짜?!
그러나 명랑 소설답게 아주 명랑하다. 어른을 공경하는 문화를 잘 나타내 주는 책이랄까? 에너지 선생은 이십대인 내 또래보단 엄마, 아빠 세대가 보는 게 더 어울릴 듯 하다. 단, 냉정히 말한다면 지금의 트랜드는 염두해 두지 않은 소설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향수를 느끼고 싶다면 당연 7080세대에겐 적극 권해주고 싶다.
이책만의 특징은 문체가 간단명료하여 책을 게을리, 멀리 한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있다는 것. 또 작가가 남자라는 게 여실히 느껴진다. 작가 조흔파의 작품은 70년대 큰 인기를 모았고 하이틴 영화의 붐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의 작품으로 <고교 얄개>는 나도 들어보았다. <에너지 선생>도 인기였다는데 최근 처음 알게 된 것이다. 20년 만에 다시 책으로 펴 냈으니 그 세월의 무력함 앞에선 무릎 꿇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이겠으나, 반대로 20년 만에 냈는데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란 생각도 들었다.
아쉬운 것은 크게 공감을 하지 못했다는 것. 의미있었던 것은 30년 전 영화가 되었던 이 작품을 모르고 지나갈 수 있었는데 이렇게 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점에 의의를 둔다.
책 속의 에너지 선생님은 죽었지만, 현실엔 언제나 살아 숨쉰다. 우리 주위를 잘 살펴보면 지금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런 분에게 이 책을 전해드리고 싶다. 에너지 선생을 보며 내 얘긴데, 하며 빠져들지 않을까?
"에너지 버스 아니고, 에너지 선생?"
요즘 읽고 있는 책 제목이 에너지 선생이라는 말에 돌아온 대답이었다. 이런 말 듣기 충분하다.
표지를 보던 엄마의 "만화책 아니야?"라는 말도 이해가 될 법 했고. 그런 이미지의 에너지 선생은 내게 어떤 이미지로 남았냐 하면, 조금은 옛날 배경인 만큼 스승에게 꼼짝 못하는 소년의 일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주인공의 이름은 수동. 그의 가족들이 대거 등장하고 에너지 선생님과의 동거시절을 떠올리며 시작된다.
두사부일체를 안다면, 아사부 일체는 아는가?
내 멋대로 지어봤다. 아버지와 스승은 하나다. 이런 뜻으로.
아버지의 은사이자 아이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그는 사실 아버지보단 한 수, 아니 두 수 위로 보이긴 했다.
에너지 선생은 이 집안의 최고 어른이다. 동거가 시작된 이유는 수동이 아버지의 잦은 외박때문이었다. 수동이 아버지의 버릇을 고치고야 말겠다며 집에 들어온 에너지 선생. 물론 사업상의 이유로 외박을 한 것이지만, 에너지 선생에겐 통하지 않는 변명이었다.
그런데 그 불똥이 다른 식구들에게까지 모두 튀었다. 포고령이라는 이름아래, 모든 것이 하루 아침에 바뀌어야 했다.
먼저, 귀가시간 제한!
남자는 9시, 여자는 8시로 정한 통금 시간. 쫌 불공평한 감이 있지 않나?
그리고, (수동이 아버지를 제외한) 자가용 이용금지!
4남매는 등교길에 차기사 아저씨의 뒷 자석대신 버스를 이용해야 했으며,
취침 시간 엄수!
불 끄는 시간 11시, 기상 시간 6시라니... 포고령을 읽는 내내 나에게 에너지선생이 없다는 것이 다행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편지 검열, 방 안에서 세수 금지, 시끄러운 소음 금지 등이 있었다.
불평 불만 첫만남! 그리운 에너지 선생과의 추억.
이제는 돌아가신 선생님을 그리는 수동의 모습이 첫 페이지를 자리 잡는다. 에너지 선생과의 추억 속에 존재하던 말썽꾸러기 수동이는 어엿하게 성장하다 못해 사람들에게 인사를 받는 처지다. 이제 어엿한 사장님으로 머리마저 희끗희끗하다.
살같이 빠른 세월, 그 추억이란 것이 다소 진부할 수도 있는 생활이었고, 때론 수동이가 맞는 것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있었다.
다 큰 제자의 외박을 고치려 갑작스레 들이닥친 에너지 선생이 솔직히 이해가 안되었다. 약간의 오지랖이 넓을 지도. 아니면 정이 많을 지도. 그것도 아니면 약간 괴짜?!
그러나 명랑 소설답게 아주 명랑하다. 어른을 공경하는 문화를 잘 나타내 주는 책이랄까? 에너지 선생은 이십대인 내 또래보단 엄마, 아빠 세대가 보는 게 더 어울릴 듯 하다. 단, 냉정히 말한다면 지금의 트랜드는 염두해 두지 않은 소설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향수를 느끼고 싶다면 당연 7080세대에겐 적극 권해주고 싶다.
이책만의 특징은 문체가 간단명료하여 책을 게을리, 멀리 한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있다는 것. 또 작가가 남자라는 게 여실히 느껴진다. 작가 조흔파의 작품은 70년대 큰 인기를 모았고 하이틴 영화의 붐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의 작품으로 <고교 얄개>는 나도 들어보았다. <에너지 선생>도 인기였다는데 최근 처음 알게 된 것이다. 20년 만에 다시 책으로 펴 냈으니 그 세월의 무력함 앞에선 무릎 꿇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이겠으나, 반대로 20년 만에 냈는데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란 생각도 들었다.
아쉬운 것은 크게 공감을 하지 못했다는 것. 의미있었던 것은 30년 전 영화가 되었던 이 작품을 모르고 지나갈 수 있었는데 이렇게 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점에 의의를 둔다.
책 속의 에너지 선생님은 죽었지만, 현실엔 언제나 살아 숨쉰다. 우리 주위를 잘 살펴보면 지금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런 분에게 이 책을 전해드리고 싶다. 에너지 선생을 보며 내 얘긴데, 하며 빠져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