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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동
앙드레 지드 지음, 권기대 옮김 / 베가북스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내가 느끼는 삶이란 쓰디쓴 커피와 닮았다고 할까? 성공한 사람들은 설탕이나 첨가료를 어떻게 넣었을까? 단 줄 알고 마셨는데 쓰다던가, 쓴 줄 알고 마셨는데 달았노라. 이런 말은 먼 훗날 나이가 먹은(그것도 멋쟁이 할머니가 된) 내가 어린 새싹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지금은 세상 사람들이 너무 고정관념에 찌들어 있고, 사람이 만들어 낸 틀속에 갇혀서 그에 어긋나면 곱지 않은 시선으로 욕하는 세상이다.
물론, 현재만 그렇다는 건 아니다. 예전에도 그랬다. 얼마전 읽었던 <다빈치의 생각의 연금술사>를 보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있다. 아테네의 어느 길목을 지날 때 나그네는 그의 침대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는데, 침대라는 틀에서 몸 길이가 벗어나면 잘라버리고, 부족하면 늘리는 무서운 얘기였다. 오직 몸 길이가 일치하는 사람만이 살아남은 그 침대에 묶인 채 같은 방법으로 죽음을 맞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이야기. 나는 여러모로 생각하고 공감했다. 자신이 지은 죄악이 되돌아온다는 것, 그리고 현재 우리 눈에 진리인 ‘틀'에 얽매여 행한 모든 것들이 훗날 돌아보면 한심한 짓거린 아니었는지.
그런 생각을 갖고 타인에게 얘기해봤자 철학하냐, 재미없다 소리나 들을게 뻔하고, 실천할 수 없다는 등 조롱이나 당하기 십상이지만 중요한 것은 고정관념이나 틀 속에 얽매여 있진 않나 하는 발상의 전환이다. 나와 다르면 불안해지고 미워하게 되는 습성들을 하루 아침에 고칠수야 없겠지만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보는 눈을 기르자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갖고 이 책을 접하는 것이 여러모로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사실 기대를 했던 앙드레 지드의 작품, 코리동이다. 그의 대표작은 단연 <좁은문>이며, 그 밖에 <전원교향악>과 <콩고여행> 등이 있다. 나는 그의 작품은 단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었고 그런만큼 표지에 새겨진 ‘미발표 소설'이란 문구는 내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쉽게 말해서 두 사람이 대화만 한다. 단 두사람…… 즉, 남성의 동성애에 대한 언급을 시작하는 코리동과 ‘나'라는 존재의 대화체이다.
소설이라 함은 주인공과 조연(?)이라 할 수 있는 등장인물들이 등장하고, 시대적 혹은 공간적 배경이 존재하며, 갈등을 풀어나가는 요소들이 등장하는 것 아니었던가? 책을 펼쳤을 때 첫번째 대화,라는 문구를 눈에 새겼을 때는 그렇구나, 하고 지나갈 수 있었는데 두번째, 세번째 대화가 눈에 밟히자 정녕 끝까지 대화만 할 작정이구나, 하며 단념하게 했다.
책에 내용은 동성애에 대한 코리동의 견해를 여러가지 믿음직한 작품이나 인물들의 말들을 거론하며 선입견을 버린 이의 입으로 어떠한 메세지를 전하고 있다.
그 메세지가 어떤 것인지는 읽어보기를 권하겠다. 구구절절 옳은 소리만 하는 것인가, 아니면 ‘두번 째 대화'부터는 왜곡된 시선으로 뭐 이딴 책이 다 있어? 하며 책장을 덮게 될 것인지는 각자의 선택에 맡기겠다.
나는 별을 두개 줄까 세 개 줄까 고민했었다. 그러나 별을 인색하게 주기에는 그의 어록은 너무나 멋졌다. 그래서 별은 네 개로 확정! 무기력해진 내 마음에 작은 불씨를 다시 지펴준 그의 책이기 때문이다. 초반에 실망감을 숨길 수 없었는데 그것은 처음부터 너무 큰 기대감을 갖고 작품을 접한 것이 한 몫했다. 그러나 마지막에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것이 등장했다. 그의 주옥같은 어록모음은 기승전결도 없어보이는 이 소설을 금새 국보급 선물로 변하게 해주었다. 맛보기로 보여주자면 이렇다.
모두가 위장을 하는 세상에서는 꾸밈없는 얼굴이 되레 위장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길을 바꾸면서까지 해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란 없다. 어떤 일이든 모두 생기는 대로 맞닥뜨리자.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그들보다 훨씬 더 멀다.
중요한 것은 솔직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솔직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 슬픔이 생기도록 만드는 것은 오로지 우리의 눈물이다.
이 밖에도 주옥같은 말이 정말 많다. 그의 작품은 직접 눈으로 체험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