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목사님댁 말썽쟁이 ㅣ 일공일삼 61
캐서린 패터슨 지음, 이다희 옮김 / 비룡소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어느 한적한 마을에 존경받는 교회 목사님
항상 마을 사람들의 크고 작은 일들을 내일처럼 챙기느라 정작 가족은 뒷전일 터.
1순위가 마을에서 불우한 이웃이라면 다음은 교회 신도 그리고 나머지가 가족.
그 중에서도 마을에서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 다니는 요요 소문난 말썽쟁이 로비가
바로 오브 더 탑 이 책의 주인공이죠. 본디 사람들은 목사님의 아들이라 하면 얌전하고
점잖기를 기대하는 법이지만 로비는 그런 사람들의 기대가 아주 비현실적이라 딱 잘라 말해요.
뭐 이를 테면 보는 시선들이 목사님 아들은 늘 청결해야 한다든지, 착해야 한다든지
그런 게 본인과는 맞지 않다는 거예요. 그렇다보니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다른 애도 아니고..목사님 아들이 그러면 안 되지!" 늘 예의 주시하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신경써야 하는 억울한 면이 없진 않네요. 구구절절 로비의 말이
틀린 말 하나 없어요. 사람들의 기대처럼 목사인 아빠는
한없이 선하고 보통 사람의 여덟 배에서 열 배는 청결하다니까요.
로비가 자꾸 어긋나고 삐뚤어지는 이유는 환경탓이 큰 거 같아요.
물론 사건의 중심에는 반항심 많은 로비가 있지만 마냥 생각없이 사고를 치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목사님댁 아들로 품위를 유지하려 싸움을 피하는 건 가족에 대한 사랑도 없고,
용기도 없고 의리도 없는 비겁한 변명일 뿐. 그의 생각은 '목사는 내가 아니라 우리 아빠'라는
사실이죠. 그렇다고 본인 스스로가 목사인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건 아니에요.
평소 아버지는 누구하고도 바꾸고 싶지 않을 만큼 좋지만 괜히 자기때문에
자식교육 운운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입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걸 원치 않아요.
결국은 모두 책임을 목사인 아버지 탓을 할 테니까요. 그래도 목사님 아들로
충격적인 속바지 게양 사건은 좀 심했네요. 마치 거친 사나이들의 서부영화같은
온갖 멋진 척 갖은 폼은 다 잡지만 한편으로는 귀여운 구석이 넘쳐나요.
책표지에서 풍기는 반항아같은 느낌이 어릴적 TV 시리즈로 봤던 톰소여 느낌이 확 나죠.
이야기 배경이 되는 마을 풍경이나 정서가 상당히 비슷한 거 같아요.
톰소여 모험에서 빼놓을 수 없는 통나무 별장.
로비 역시 숲에서 버려진 통나무집을 차지하기 위한 사투가 벌어지는데요.
사나이 자존심에 상처가 될 위기는 또 찾아오죠. 그런데 가장 힘든 위기의 순간마다
그보다 두 살 많은 엘리엇 형이 있어요. 로비의 설명에 따르면 인생이라는 경주에서
형을 앞지르는 순간부터 형과 책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없고, 야구도 수영도 모든 걸
같이 할 수 없는 거리가 그를 철들게 한 거 같아요. 누구든 형을 얕잡아보거나
놀리는 건 참을 수 없어요. 그 때문에 자주 싸울 수 밖에 없다는 건 형을 그만큼
사랑하고 책임감도 느끼는 게 아닐까 싶어요. 하물며 부모님에게는 큰 아들이
가장 아픈 손가락이 틀림없죠. 마을 독립기념일 축제때 행방불명 된 엘리엇 형때문에
아버지라는 큰 산이 힘없이 무너져내리는 걸 지켜봤던 로비. 그토록 사람들이
목 아프게 우러러보는 키 큰 목사님이 아니라 엄마한테 매달려 우는 겁먹은
아이같아서 울컥했죠. 한편으로 형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을 질투하면서
주어진 환경을 자기 식으로 해석하는 글들이 재밌어요.
자기가 가진 장단점부터 자기가 읽은 온갖 책을 비유하며
자기 논리대로 세상과 맞서 뒷걸음치지 않고 정면돌파하는 거죠. 때론 거칠게
충동적으로 위기를 모면하다 더 큰 위기를 겪고 정신 못차리게 혼쭐 나기도 하지만
패기는 절대 기죽지 않아요. 타고난 심성도 곱고요. 무엇보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19세기 말,
세상이 끝난다는 종말론을 믿으며 더 이상 하느님을 믿지 않기로 결심하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목사님 아들로 하느님을 믿지 않기로 결심한 자체도 논란거리지만
여전히 행동의 잣대를 기독교의 교리에 두는 거가 모순 덩어리죠. 비록 때와 날은
알지 못해도 미리 준비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얼마나 어리석고 억울한 일인지 더 늦기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해보고 싶어하죠. 첫번째로 낭만적인 기차 여행을
꿈꾼다거나 단 한번도 타보지 못한 자동차를 상상하면 후회따윈 없을 거 같아요.
그만큼 모험 가득한 십대 소년의 순수한 성찰이 로비의 날것 그대로죠.
세계적인 동화작가 캐서린 패터슨의 화려한 수식어 없이도 이 책이 빛나는 이유이기도 해요.
저 개인적으로는 제가 좋아하는 비룡소클래식을 읽는 기분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