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 상 ㅣ 만화 한국 대표 문학선 14
박완서 원작, 김광성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14년 7월
평점 :
우리나라 현대 소설을 만화로 읽는 문학선,
주니어김영사 《만화 한국 대표 문학선》 열 네번째 이야기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아직 읽지 않은 원작 그대로의 감동이 전해져요.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모습은 집이 있어도 고향을 버리고
다시 엄동설한에 피난을 떠나야 하는 비참한 신세. 그야말로 어느 나라 경계인지
애매모호한 무법천지. 스스로 눈치껏 살아 남는 본능에 충실할 뿐.
이념따윈 중요하지 않아요.
총상을 입은 집안의 대들보 가장인 친오빠때문에
피난길에 오르지 못한 주인공 가족. 부득이 현저동 아랫동네에 눌러앉고 마는데요.
가뜩이나 인기척 없는 텅빈 마을에 쥐도 새도 모르게 숨어서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게 살 길.
오빠의 불안은 날로 심각해요. 그를 대신해 실제 가장 노릇은 매사 이 어려운 현실에서도
의젓하게 집안을 이끌어가는 며느리. 꼼짝 할 수 없는 남편을 위해 남은 가족을
근근이 먹여 살리는 올케야말로 그나마 기대고 의지할 산이에요. 온 천지 먹을 게 밑바닥.
시커먼 석탄 반죽이 하얀 밀가루 수제비로 보일 만큼
허기진 그들에게 빈 집만이 유일한 식량창고나 다름없어요.
한밤중 부엌칼, 망치 연장들고 도둑질도 마다않죠.
최소한 양심을 운운할 처지가 못 돼요. 당장 어린 조카들과 아픈 병자를 굶길 순 없잖아요.
차마 그 짓을 하지 말라 말릴 이유가 뭣이랴. 어차피 가족 중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 아니던가요.
다만 알고도 모른 척 그 일이 마치 없는 일처럼 철저히 함구하는 섭섭함이
주인공을 견딜 수 없게 해요. 더욱이 핏기라고는 없는 오빠의 정신이 맨정신이 아는 듯
허구한 날 좋은 세상 타령에 옆에 사람이 지쳐가요. 예전 말수없고
준수한 모습은 간데없고 전쟁이 완전 딴사람으로 만들었어요.
오빠가 그렇게 꿈꾸는 세상을 그릴 때
밤마다 험한 세상과 맞서는 두 여인들은 남의 집 담을 훌쩍 넘어요.
그날 밤도 꽤 높은 담을 자신있게 뛰어넘다 그만 발목을 접 질려 쓰러지고 마는 올케를
놀란 토끼눈으로 부둥켜 안는 주인공의 심장이 철렁 내려 앉아요.
나이답지 않게 얼토당토않은 그녀의 간절함이 무적같던 그녀의 태산을 울리고 말아요.
그 참았던 고통과 설움을 소리없이 마구 쏟아내요. 보는 이의 가슴도 함께 우리의 아픈 역사를
떠올리며 가슴 먹먹해져와요. 가장 현실적으로 본능적으로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의 전부가 다 무너지는 기분일 거에요.
누가 그녀를 도둑년이라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요.
그들이 어떤 힘으로 하루 하루를 힘겹게 버텨내는지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만화가 가진 가벼움도 이 장면에서만큼은 가슴 절절히 뜨거워지는 진중함이 잘 배어나요.
작가가 10년을 기다려 소설 원작을 만화로 그렸다는 정성이 고스란히 느껴져요.
이전에 같은 박완서 작가의 작품을 그렸던 전편과는 느낌이 또 달라요.
휠씬 그 전편보다 민속적이지만 특유의 우리 역사적, 시대적
강한 색채가 돋보이는 작품같아요.
무엇보다 이야기 전개가 주인공 1인칭 화법으로 이뤄져
눈으로는 생생한 만화를 보는데 이야기는 소설을 읽는 재미에 푹 빠져들어요.
그리고 주인공을 비롯한 인물들의 생생한 묘사와 내면적 심리 갈등, 근본적 인간의 본질 등
문학소설이 가진 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해요. 아직 소설은 어렵다 읽기 마다하는
청소년들이 읽으면 좋아할 책이라 생각들어요. 아이들이 배우는 역사 교과서도 이렇게
재밌게 만들면 어떨까요. 자꾸 우리 역사가 교과서에서 줄고 빠지면
우리 아이들은 역사를 교과서가 아닌 만화책에서 배워야 하는 게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