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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재가 뿔났다! ㅣ 네버랜드 꾸러기 문고 47
이미지 지음, 이경석 그림 / 시공주니어 / 2014년 2월
평점 :
시공주니어 네버랜드 꾸러기 문고는 이제 막 책읽기의 즐거움에 눈뜨기 시작하는 초등 저학년을 위한 책. 그 마흔 일곱번째 이야기 <민재가 뿔났다!>는 소심한 주인공의 통쾌한 복수를 그린 작품으로 마치 게임 파이터와 하나된 흥미진진한 한판대결이 볼 만해요.
학교 앞 '왕재수문구점' 작은 오락 기계에 빙 둘러 싸고 있는 아이들. 학원에 가던 민재도 게임을 지켜보는 아이들 틈을 비집고 작은 화면 속에 두 선수가 싸우는 격투 게임에 빠져들어요. 상대는 울퉁불퉁 근육질 몸매의 프로 레슬러였고 다른 하나는 매서운 눈에 기다란 창을 든 외팔이 무사였어요.
한 눈에도 거인과 소인의 싸움이니 결과는 뻔한 듯 덩치 큰 레슬러를 응원하는 아이가 더 많았어요. "역시 레슬러 잘한다! 빠샤!" 하지만 민재는 마음속으로 외팔이 무사를 응원해요. 덩치가 크다고 힘이 세다고 꼭 이기는 것은 아니까요. '힘내! 외팔이, 힘내라고! 제발!'
그 때, 문구점 안에서 격투 게임 속 레슬러처럼 우락부락하게 생긴 문구점 주인아저씨가 버럭 화를 내요. 한 손에 긴 호스를 들고 문구점 주변에 물을 뿌리기 시작해요.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달아나기 바쁜데 민재는 미처 피할 틈도 없이 물벼락을 맞아 입고 있던 바지와 신발까지 몽땅 젖었어요. 그런데도 아저씨는 본 척 만 척 해요.
"날도 더운데 손님은 없고 재수 없게 똥파리들만 계속 꼬이는구먼, 쳇!" 이쯤되면 왕재수문구점이 문을 연지 얼마되지 않았음에도 벌써 이 동네 아이들의 적이라는 얘기가 거짓말 같지 않아요. 아이들이 물건을 사지 않고 구경만 하고 있으면 파리 쫓듯 쫓아 버리고 아이스크림을 고르려고 냉장고 문을 조금만 열고 있어도 혼을 내고, 또 큰 돈으로 싼 물건을 사면 거슬러 줄 잔돈이 없다며 소리치기 일쑤. 괜히 문구점 이름이 왕재수가 아니에요.
그럼에도 오락기를 비롯해 다른 문구점에는 없는 것들이 많은 왕재수문구점에는 아이들이 늘 몰려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해요. 그나저나 민재는 당황해서 아저씨에게 따지고 싶은 마음에도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아요. 게다가 엄마가 깨끗하게 빨아준 운동화는 흙탕물을 뒤집어쓴 채 불쌍한 표정으로 민재를 올려다보는 것 같아요. 뒤늦게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선 게 후회가 될 뿐이에요.
아마도 초능력에 관심 많은 친구 상우라면 왜 물을 뿌리느냐고 당당하게 말했을 거예요. "민재야 내가 닭살 초능력만 성공하면 복수해 줄게." 늘 새로운 초능력에 열중인 상우는 하루종일 닭을 먹으며 닭살 초능력을 연구 중이에요. 민재는 상우가 닭살 초능력을 성공하든 안하든 자기 편을 들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게 넘 든든해요.
그런데 상우랑 텔레파시 연습을 하던 날, 그만 민재 앞으로 쌩~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피하려다 그 바람에 온갖 스티커를 걸어 둔 문구점 진열대가 넘어지고 말죠. 그 자리에서 왕재수 아저씨는 무섭게 민재를 범인으로 몰아 세우는데 또 다시 민재는 억울하게 할 말을 못해요. 항상 윽박지르는 어른들 앞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하죠. 억울한 건 억울하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해요.
너무나 억울하게 꿀밤까지 맞은 민재는 혹이라고 하기엔 좀 큰..꼭 뿔처럼 빨갛게 부풀어 올랐어요.
이젠 초능력 뭐라도 왕재수를 단번에 날려 버릴 비장의 무기가 간절해요. 언젠가 상우가 즐겨보는 만화에서 본 적 있는 장풍같은 강력한 바람으로 힘센 악당들을 가볍게 쓰러뜨리고 힘없고 약한 사람들을 악당들의 손아귀에서 멋지게 구해내는 그런 멋진 초능력을 빨리 연습해야 해요. "장풍 나와라, 울트라 캡숑 슈퍼 메가 장풍, 얍!"
팔이 아픈 것쯤 견뎌야만 했어요. 쉽게 된다면 그건 초능력이 아닐 테니까요. 눈을 감고 손바닥에서 서서히 솟구치는 회오리 바람에 꽁지빠지게 달아나는 아저씨 모습을 상상하니 속이 다 시원해요. 하지만 민재의 복수는 상상만으로 끝난 게 아니에요. 마침내 꾹꾹 참아왔던 민재가 폭발하는 순간 민재의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무조건 거짓말이라고 몰아붙이는 아저씨가 미워서 견딜 수 없었어요.
가슴 속 깊숙한 곳에서 묵직한 덩어리가 목구멍을 타고 머리끝까지 치솟는 느낌. 이마에 난 뿔이 이마를 덮은 앞머리를 뚫고 점점 더 커지는 게 이러다간 뿔 난 괴물이 될지도 몰라요. 어떡하든 왕재수를 만나 자신의 억울한 누명을 벗어야 할 거 같아요. "오! 또 네놈이구먼 지난번에는 진열대를 넘어뜨리지 않나, 멀쩡한 물건을 불량품이라고 바꿔 달라지 않나, 이제는 도둑질까지! 이놈! 너 오늘 잘 걸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어요.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았는지 민재는 레슬러로 변한 왕재수를 멋지게 상대하는 외팔이 무사로 변신해 있었어요. 다름아니라 길게 자란 이마의 뿔을 한 손으로 확 뽑아 들고는 멋지게 창을 휘둘렀죠. 으..., 으으으..." 비록 모든 게 꿈이었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을 만큼 아주 생생한 기억. 어떻게 하면 왕재수를 골탕 먹일 수 있을까 골똘히 고민에 빠진 민재는 여러가지 방법들을 궁리해 내요.
민재가 그림까지 자세히 그린 수첩에 왕재수 골탕 먹이기 작전을 보면 이대로 왕재수가 당하는 꼴은
상상만으로 가슴이 후련해요. 1단계 벌에 쫓긴 왕재수가 바나나 껍질을 밟고 꽈당 미끄러진다. 2단계 아픈 엉덩이를 부여잡고 급히 자전거를 타려는데 펑크가 나 있다. 3단계 열 받은 왕재수가 옆에 놓은 간장을 콜라인줄 알고 벌컥벌컥 마신다. 4단계 놀란 왕재수가 간장을 뿜어내고는 입을 벌려 혀를 내민 채 숨을 몰아쉰다.
5단게 숨어 있던 민재가 멀리서 새총을 쏜다. 6단계 왕재수 입에 민재가 쏜 개똥을 명중시킨다! 드디어 작전 준비 완료!! 두둥, 진짜 덩치 큰 레슬러와 외팔이 무사의 싸움이 시작되었어요. 겁먹을 필요없어! 힘을 내! 용기를 내라고! 넌 할 수 있어! 넌 이길 수 있어! 반대로 끝까지 포기란 모르던 게임속 파이터가 힘차게 민재를 응원해요. 민재처럼 소심하고 용기가 없어 늘 억울한 일을 당해도 당당하게 맞서지 못하는 어린 친구들에게 네 잘못도 아닌데 주눅들지 말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넘 통쾌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