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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랏차차 뚱보 클럽 - 2013년 제19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ㅣ 일공일삼 83
전현정 지음, 박정섭 그림 / 비룡소 / 2013년 4월
평점 :
키 159센티미터, 몸무게 79킬로그램, 별명이 십인분인 주인공 은찬이는 혼자 아이들 열 명과 겨루는 줄다리기가 시시하게 끝날 정도로 힘이 엄청 세요. 이쯤되면 주위에서 돼지, 뚱보라 놀리는 소리를 지겹게 들을 터. 아무리 천사표 엄마래도 아이의 건강을 생각해서 당장 살을 빼도록 잔소리를 안 할 수 없는 문제죠.
방과 후 간식으로 간편하게 끓어먹는 라면도 먹고 싶다해서 맘편히 먹을 수 없어요. 일단 엄마 눈에 띄지 않게 뜨거운 면발을 단숨에 후루룩 입천장 좀 데는 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어야 웬만한 분식집 주인도 울고 갈 정도의 환상적인 할머니표 특제 라면의 맛을 맛 볼 수 있어 행복해요. 하지만 귀신같은 엄마를 속일 방법은 없어요.
엄마에게 들킨 라면은 국물 한 방울 안 남기고 냄비째 다 버려지고 불똥은 애써 라면을 끓여 준 할머니에게도 튀더니 결국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공포의 체육관 비만교실 얘기가 나오고 말았어요. 그러면서 엄마의 눈에서 금방이라도 레이저가 뿜어져 나올 듯 무서워요. "너, 오늘저녁부터 줄넘기 천번뛰기 다시 시작해. 엄마가 창문 밖으로 개수 세고 있을 테니까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 마."
그 정도로 다시 비만교실에 다니라는 협박도 모자라 은찬이의 보물 창고나 다름없는 냉장고마저 빼앗아 버린 엄마는 더이상 인정사정 봐주는 일이 없어요. 오히려 아이못지 않게 살과의 전쟁에 시달리는 엄마가 외모에 신경쓰는 홈쇼핑 모델이라 더 예민할 수 밖에 없죠. 알고보면 예상과 달리 최대한 엄마의 오겹살 뱃살이 강조되는 쫄쫄이 티셔츠를 입고 운동기구나 다이어트 상품을 광고하는 비만 전문모델이라 다른 아줌마들은 뱃살이 빠지면 좋아해도 은찬이 엄마는 광고섭외가 안 들어온다고 걱정이 많아요.
사실 한밤중에 막다른 골목길에서 무시무시한 사냥개에게 쫓기는 꿈을 깬 은찬이가 목격한 건. 새벽 2시 잘 달궈진 불판 위 지글지글 잘 익은 삼겹살 굽는 소리가 나고, 바쁘게 전자레인지가 돌아가는 데..자신보고는 간식으로 먹는 라면의 칼로리가 어쩌구저쩌구~ 불같이 화를 냈던 엄마가 혼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몰래 먹는다니 배신감마저 들어요.

순간, 은찬이는 엄마가 음식을 한입 가득 입에 넣으려는 찰라 짠 하고 나타나 엄마를 놀래 줄 생각으로 기회만 엿보고 있었죠. 그런데 맛있는 음식 앞에서 엄마의 표정이 전혀 행복하지 않아요. 방금 전자레인지에서 물처럼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을 컵에 따라 한 손으로 코를 쥐고 단숨에 주스처럼 마시는 가 하며, 밥과 삼겹살 고기를 함께 싸먹는 게 아니라 불판 밑에 모아 둔 기름을 고기와 볼이 미어터져라 먹는 모습이 가슴 찡해요.
그것도 갑자기 먹은 걸 토하고 다시 계속해서 아이스크림 주스와 남아 있는 삼겹살을 마지막 한 점까지 다 먹는 엄마의 일그러진 표정에는 자신보다는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죽을 힘 다해 힘겹게 사는 고단함 삶의 무게가 느껴져요. 왠지 아들의 무딘 마음으로도 자식에게 감추고 싶은 엄마의 초라한 뒷모습을 알은척 하면 안될 것 같아서 소리없이 제 방으로 돌아와 눕는 엄마와 아들의 다른 처지가 너무 마음 아파요.
지금까진 엄마가 물만 마셔도 저절로 살이 찌는 체질인 줄로만 알았지 이런 엄마의 야식에 엄청난 비밀이 숨어 있을 지는 꿈에도 몰랐을 아들 녀석은 밤새 화장실을 들락날락해서 얼굴이 핼쑥해진 엄마를 차마 똑바로 보지 못하고 아이 뒷통수에 대고 오늘부터 학교 끝나면 곧바로 비만교실 가라는 엄마 말에 대충 대답을 얼버무리고 말아요. 그러니 엄마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그 지옥의 비만교실을 피할 수만 았다면 운동의 '운'자와도 친하지 않는 은찬이가 학교 역도부에 들기로 결심한데는 큰 용기가 필요했겠죠.
요즘같은 더운 날씨에 컨테이너를 개조해 만든 역도부 훈련실 안은 찜통이 따로 없는데요. 역도부 가입 첫날, 꿈에서 봤던 사냥개처럼 사납게 생긴 역도부 주장의 신입생 정신무장 중에서 대뜸 "여긴 너 같은 뚱보들 살 빼주는 비만교실이 아니야. 괜히 장난 삼아 시간 때우러 왔다가 팔 부러지고 다리 부러져 후회하지 말고 제대로 운동할 생각이 아니면 지금이라도 당장 그만두는 편이 너한테 백배 이로울 거야."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가슴이 뜨끔. 첫날부터 생각했던 것만큼 역도부 생활이 마냥 쉽지만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과연 은찬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되네요.

역시나 역도부 훈련은 '공포의 비만교실' 만큼이나 만만치 않죠. 매일 아침 학교에 도착해서 맨손체조를 시작으로 운동장 열 바퀴 돌기, 윗몸일으키기, 다리찢기 등 각종 몸풀기 훈련을 시작하면 온 몸에 땀이 비 오듯 점점 몸은 녹초가 되어가고요. 거기다 역도부 주장형은 쉴새 없이 고함을 질러대니 이러다가 엄마가 원하는데로 진짜 살이 빠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단, 엄마가 반대하는 힘든 운동으로 살을 뺐다면 "누가 역도해서 살 빼래? 도대체 왜 그렇게 역도를 하겠다는 건데?" 왜 이런 잔소리가 안 나오겠어요.
결국 서로에게 섭섭한 감정이 폭발. 그마저 자식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에 하는 말인 줄 알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말을 하는 엄마가 답답하고 야속할 정도로 이미 외모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으로 상처를 입은 모양. "엄마는 내가 뚱뚱한 게 창피해?" 그 한마디가 오히려 아이 앞에서 부끄러워지는 우리의 따가운 시선, 사회적 나쁜 편견이란 생각이 들어요.
더군다나 엄마가 운동을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과거 격투기 선수로 운동을 좋아한 아빠 때문이란 걸 알기에 엄마의 응원과 격려가 쉽지 않네요. 평소 격투기 선수답게 키도 훤칠하게 크고 온몸에 울퉁불통한 근육이 빵빵한 아빠 앞에선 은찬이의 어깨도 금방 으쓱. 듬직한 아빠의 팔에 대롱대롱 매달린 은찬이도 이땐 그저 평범한 아들같은데요.

아빠랑 목욕탕에 들어서면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건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죠. 그리고 목욕을 끝내고 난 뒤 아빠와 먹는 냉면 한그릇은 꿀맛 그 자체. 아빠랑 각자 냉면 한그릇에 사리 서너 개를 더 얹어 눈깜짝할 사이 그릇을 싹싹 비우는 식성도 완전 붕어빵이죠. 그런데 먹는 거라면 마다할 리 없는 은찬이도 싫어하는 음식이 있었느니 아빠와의 추억이 제일 많은 냉면은 은찬이가 유일하게 먹지 않는 단 한가지 음식이에요.
아빠의 마지막 경기가 있던 날, 경기 도중 상대편 선수에게 머리를 맞고 링 위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그 이후로 아빠는 다시 일어설 수도, 다시는 아들과 함께 목욕탕도 갈 수 없었죠. 엄마에게는 두번 다시 그 같은 일을 겪고 싶지 않은 강한 모성애때문에 애써 아들의 용기를 인정하지 않는 거. 대신 남들이 알아주는 일이든 알아주지 않는 일이든 그런 건 마음에 담을 필요가 없을 뿐더러 중요한 건 자신이 얼마나 그 일을 좋아하고 열심히 하는 가를 일깨워 주는 따뜻한 할머니의 응원이 그동안 훈련 받으며 힘들었던 기억과 시합에 대한 걱정,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몰라 주는 엄마에 대한 서운함이 모두 봄눈 녹듯 녹아 버리네요.
드디어 공양미 삼백석 효녀심청이 마음으로 전국 주니어 역도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게 된 보람 초교 고은찬 선수. 대회장 안을 메운 사람들의 함성과 들뜬 해설자의 목소리가 뒤섞이며 첫번째 시기는 깔끔하게 성공. 이번 대회가 첫 출전이 무색하게 작년 주니어 대회 우승 선수와 한번 겨뤄 볼만하다는 기대가 가득해요. 게다가 사람들의 환호가 점점 커지는 관중석 맨 뒷자리에 반가운 엄마의 얼굴이 보여 저도 모르게 엄마와 눈이 마주치자 눈물이 핑 도네요.

워낙 베테랑 선수인 상대편 선수의 탁월한 집중력으로 아쉽게 우승은 놓쳤지만 대회 우승못지 않은 진심어린 칭찬이 여기저기 쏟아져요. 비록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그냥 뚱보 엄마의 뚱보 아들로 보일지 몰라도 앞으로도 쭉 다이어트 No~ 행복한 뚱보로 살고 싶다는 은찬이는 결코 자신에게 향하는 사람들의 눈총쯤 번쩍번쩍 들어 바닥에 내다 꽂을 힘과 배짱이 두둑해요. 그러니 함부로 사람의 겉모습으로 상대를 업신여기거나 상처 주는 일 없도록 책임있는 말과 행동에 신경써야겠어요.그나저나 은찬이네 외식하는 날, 저도 시원한 냉면 같이 먹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