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캥캥캥 우리 형
야마시타 하루오 지음, 고향옥 옮김, 히로세 겐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평소엔 잘 짖지 않아 조용하다가도 한번 짖을때에는 감기걸린 목소리로 캥 캥 캥 짖는다하여 이름이 '캥'인 프렌치 블도그. 아이와 같은 여덟살 나이지만 아이보다 어른대접 톡톡히 받는 어엿한 형이에요. 오랜시간 아이가 생기지 않던 부부에게 대신 캥을 들이며 키우다 얼마 뒤에 바로 갖게 된 아이라 엄마,아빠는 캥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사랑해요. 아이가 캥을 시끄럽게 짖는다고 혼낼때도 "형이라고 불러. 나이는 같아도 너보다 생일이 빠르잖아." "그래, 캥 형이 와서 네가 세상에 태어난 거야. 고마운 줄 알아야지." 만날 캥 편만 들죠. 게다가 아빠는 개는 말을 못하니까 거짓말도 안 한다고 자주 말하곤 해요.
하지만 캥에 대한 아이의 생각은 엄마, 아빠랑은 전혀 달라요. 캥이 아이와 단둘이 있을때는 사람처럼 말을 할 줄 알 뿐만 아니라 자기에게 으스대면서 명령하는 걸 무지 좋아한데요. 그 이유도 자기가 아이보다 형이니까 잘났다고 생각하는 거라면 아이와 캥의 날카로운 신경전은 딱히 설명을 안해도 알 거 같아요. 또한 캥의 가장 큰 무기는 뭐니 뭐니해도 죽은 척 연기하기라서 혼내거나 귀찮게 하면 벌러덩 드러누워서 눈의 흰자위를 드러내는 어리광에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캥은 점점 심술꾸러기가 되어 가죠.

아이가 학교 가기전에 아침밥을 먹고 있으면 캥이 우유 컵에 얼글을 들이밀고 또 아이 모자를 숨기기도 하고, 연필을 갉아 먹기도 해요. 보다 못한 아이가 "캥! 하지마, 바보야!" 화를 내면 오히려 엄마는 캥을 야단치는 게 아니라 캥의 배를 쓰다듬거나 입을 마추는 등 각별한 애정을 쏟으며 캥의 나쁜 행동을 눈감아 줘요. 그럴때면 엄마는 캥의 입에 쪽쪽 뽀뽀를 하기도 하고, 엄마 얼굴을 마구 핥는 게 더러워 죽겠다는 아이 표정만 봐도 '형은 무슨!' 얼마나 불만이 가득한지 짐작할 수 있어요. 아무래도 아이가 학교에 다니면서 아빠랑 엄마도 직장에 가고 온종일 캥 혼자서 집을 봐야 하는 답답한 심정을 이해하기에는 아이는 아직 어린 동생이죠.
그럼에도 동생 눈에는 형의 행동이 못마땅한게 한 두가지가 아니에요. 특히 엄마없이 캥과 단둘이 집을 볼때 캥이 빨간 수건을 물고 오더니 두 발로 서서 '슈퍼캥' 놀이를 하자고 해요. 바로 캥이 말하는 슈퍼캥 놀이는 캥이 빨간 수건을 망토처럼 두르고 하늘을 하는 놀이인데 당연히 아이는 슈퍼캥 놀이가 싫겠죠. 마치 캥이 슈퍼맨이 된 것처럼 으시대며 갖은 뽐을 잡는 게 눈꼴시려 같이 놀 마음따윈 없어요. 반대로 아이가 원하는 놀이는 침대 위에서 수건을 늘어뜨리고 블도그를 낚는 낚시 놀이라 보나마나 캥이 몸서리칠 터.. 암만해도 엄마가 집에 오시기 전까지 서로 티격태격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기는 어려워보여요. 갑자기 아이가 공부할때 캥이 방해하면 안되는 규칙을 내세워 교고서를 펼쳐들자 서서히 캥의 심술에 발동이 걸리기 시작해요.

그리고는 엄마가 캥이 아기때부터 읽어주던 그림책,《늑대와 일곱마리 아기염소》를 읽어달라고 떼를 써요. 아이가 "안 돼. 지금 공부하고 있잖아!" 소리쳐도 캥은 늑대처럼 어금니를 보이며 막무가내로 "안 읽어주면 박치기한다!" 으르렁대요. 그렇다고 그림책을 읽어주려 들면 "그만둬. 역시 엄마가 읽어 주는게 좋아." 토라져 어디론가 쫑쫑 가 버리기나 하고 아이는 하나뿐인 형 기분 맞추기가 너무 힘들어 보여요. 심지어 부엌에서 아빠가 남긴 포도주를 할짝할짝 핥아먹고는 바닥에 포도주를 다 흘리고 말죠. 그때, 낯선 사람에게서 전화가 걸려오고 잠시 뒤에 딩동딩동 초인종은 숨넘어갈 듯이 게속 울러대자 아이는 더 정신이 없어요.
일단 아이는 캥을 진정시켜놓고 의자에 발을 딛고 올라가 현관문 조그만 문구멍으로 밖을 보아요. 그 순간 문밖에서 집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낯선 사람의 눈과 딱 마주쳤지 뭐예요. 그렇지만 절대 모르는 사람에게 문을 열어주면 안된다는 엄마의 말씀을 잘 따라서 섣불리 문을 열어주지 않아요. 그러니 더 서로의 얼굴을 못보고 서로의 입장에서 오해하는 재밌는 상황들이 의외의 큰 웃음을 자아내고요. 아빠의 새 골프채를 배달 온 택배기사에게 형이라고 떳떳하게 밝힐 수 없는 아이의 입장이 너무 이해돼요. 하필 이 와중에도 술 취한 캥은 엄마의 화장대에서 또 사고를 치고 마네요. 캥이 화장지 상자에서 화장지를 마구 뽑아내는 바람에 형이 저지른 뒤치다꺼리는 동생 몫. 이쯤되면 이건 형이 아니라 웬수가 따로 없어요.

이번에는 엄마 립스틱을 가져다 자기 입술에 바르더니 캥의 얼굴이 새발갛게 변한 거 있죠. 아니 립스틱을 바른 게 아니라 립스틱을 통째로 갉아먹는 것처럼 보였어요. 당장 엄마가 오기 전에 캥의 얼굴을 빨리 씻겨야 엄마한테 혼나지 않을 거 같아요. 아이는 캥을 욕실로 데려가 수건에 물을 묻혀 닦아도 보고 비누를 묻혀 닦아도 봤어요. 그래도 립스틱은 잘 지워지지 않아요. 오히려 얼굴전체에 더 번져 캥의 목까지 빨갛게 물들어 버렸어요. 하는 수 없이 아이는 캥의 얼굴에 샴푸를 쭉쭉 짜는데 캥은 코에 샴푸가 들어갔는지 계속 재채기를 해요. 캥이 재치기할 때마다 코에서 비누방울이 퐁퐁 솟아 올라요. 몽굴몽글 몽글몽글 비누거품을 뒤짚어 쓴 캥이 완전 순한 양이 되었어요.
그런데 창밖에는 진짜 소나기 구름이 몰려와요. 아이와 캥이 제일 무서워하는 게 바로 천둥. 아빠가 소나기 구름은 천둥을 데리고 온다고 했으니 정말 큰일이에요. 집에 엄마가 없으니 마당 넣어 놓은 이불도 비가 오기전에 서둘러 걷어야 해요. 점점 시커먼 구름사이로 불꽃처럼 번쩍번쩍 우르릉 쾅, 소름끼치는 천둥소리가 내리쳐요. 아이는 잔뜩 겁을 먹었어요. 한편 마당에 볼일을 보러 나간 캥이 그만 천둥소리에 놀라서 기절을 하고 마는데요. 그것도 자기가 싼 똥 옆에 벌러덩 누운 채 아이가 다가가 귀에 대고 소리도 쳐보고 볼을 꼬집어봐도 캥이 꼼짝도 하지 않아요. 이대로 정신을 잃고 영영 깨어나지 않을 거 같아 무지무지 불안해요. 그러나 못말리는 캥의 사고뭉치 뒷이야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어요.
앞서 아이가 소개한 캥의 필살기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어요. 더불어 오늘같은 날, 혼자가 아니라 함께 외로움을 나눌 형제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지 몰라요. 비록 몸은 고되고 짜증나고 피곤해도 마음만은 서로를 의지하는 고마운 존재란 걸 깨달아요. 그만큼 <캥캥캥 우리형>은 가끔씩 형인지 사고뭉치 동생인지 모를 아주 특별한 형제애를 과시. 때론 자신을 괴롭히는 형이 있어 혼자이고 싶고, 때론 엄마의 잔소리때문에 억지라도 놀아줘야 하는 귀찮은 동생이 다 담겨 있어요.
하루에도 몇번을 "너랑 절교야!" "너랑 절대 안 놀아!" 싸우는 저희집 아이들만 해도 아이들끼리 싸운 뒤애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 없이 멀뚱멀뚱 지내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요. 한번은 저희 딸이 남동생과 싸우고 씩씩대며 "내가 너랑 다시 놀면 바보다!" 으름장에 놓기에 이번에는 진짜 화가 났나보다 눈치를 보니 아이들이 화가나서 내뱉는 말이나 행동이 거칠 뿐 진짜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 거 같아요. 마지막 장면에서 두 주인공이 당장이라도 치고받고 싸울 듯 대단한 신경전을 또 벌이는 가운데 그들의 진짜 속마음은 엄마에게 칭찬받던 듬직한 아들의 모습 그대로 입가에 행복한 미소를 머금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