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강 - 2012 볼로냐 라가치 상 수상작 Dear 그림책
마저리 키넌 롤링스 지음, 김영욱 옮김, 레오 딜런.다이앤 딜런 그림 / 사계절 / 201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순수한 동심이 찾아낸 대자연의 비밀과 아낌없는 나눔의 미덕을 그린 수작. 2012 볼로냐 라가치 상 픽션부문 명예상 수상작 <비밀의 강>은 작가 생전에 어린이를 위해 쓴 유일한 작품. 1955년 유작으로 출간 당시만 해도 흑인 아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동화책에 대한 저항감이 컸다는데요. 이미 1956년에 뉴베리 명예상을 받은 걸 시작으로 반세기가 지나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에 힘입어, 2011년 매혹적이고 환상적인 일러스트로 작품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하네요. 

 

 이야기는 플로리다 외딴, 숲속 마을에 사는 칼포니아라는 여자 아이가 키우는 버기 호스란 강아지 얘기부터 시작하는데요. 영어로 '마차를 끄는 말'이라는 뜻의 버기 호스가 강아지 이름치고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는 게 하필 생긴 모습 어느 한구석이 닮았다든가 마차를 끄는 큰 말들처럼 먹성도 힘도 엄청나게 좋다든가 하는 이유보다도 작가는 칼포니아가 얼마나 타고난 시인인지를 강조하는 듯해요. 창밖에서 시끄럽게 아침 잠을 깨우는 새 소리마저 "사랑해? 사랑해?" "그럼, 물론이지." 사랑고백쯤으로 들리고요. 매일매일 똑같은 평범한 일상도 어린 소녀가 읖조르는 시 한편에 세상에 다시 없을 아주 멋지고 근사한 날로 기억돼요.

 

무슨 일이 일어나든 너무너무 좋은 날. 만일에 엄마 아빠를 사랑하지만 않았다면

줄행랑치고 싶은 날. 왜나하면 날씨도 고삐까지 풀려버린 멋진 날이니까.

 

하지만 버기 호스는 칼포니아가 이런 화창한 날에 여행이든 모험이든 집을 떠나지 않길 바라나봐요. 칼포니아 눈치를 살살 살피며 당장 주인없는 강아지처럼 축 늘어져 있다가 "일어나, 잠꾸러기. 오늘은 왠지 특별한 일이 생길 것 같거든. 일어나봐, 버기 호스." 한껏 기분이 들뜬 몇마디에 어쩔 수 없이 졸졸 따라나서는 모습이 넘 귀여워요.

 

 

 

 그런데 단란한 아침식사 시간에 아빠가 하시는 말씀이 요즈음엔 마을에서 통 생선이 잡히지 않아 걱정이래요. 칼포니아 아빠는 마을에서 가난한 이웃들에게 생선을 팔며 정직하게 살아왔는데 더이상 이런 식으로 불경기가 계속되면 조만간 가게 문을 닫아야 할 지 모른데요. 옆에서 칼포니아는 아빠가 하시는 말씀을 다 알아듣지 못하지만 근심이 가득한 아빠의 말씀을 듣고나니 아빠가 한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요. 이전에 이따금 버기 호스와 함께 낚시를 할때는 고작 작은 송사리 말고는 잡아 본 물고기가 없어서 아빠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거라는 걸 잘 알아요. 그렇지만 칼포니아는 나무에 기대서 좋은 생각이 떠오를 때까지 계속 생각했어요. "내가 물고기라면 입으로 뭘 물고 싶을까?" 라고요. 

 

 그리고는 자신이 만일 물고기라면 하도 꿈틀꿈틀대는 징그러운 지렁이대신 특별하고 아주 예쁜 것들만 물려고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장면에서 놀라운 건 주인공 칼포니아가 눈을 감고 골똘히 낚시 생각을 할때 소녀가 기댄 나무를 자세히 살펴보면 나뭇가지와 잎 사이가 온통 물고기 모양으로 그려져 있어요. 거기에 어린 아이다운 순수한 매력이 강아지도 물고기도 모두가 자신의 친구인 거 같아요. 칼포니아가 생일잔치에서 쏘고 남은 분홍빛 종이로 커다란 장미들을 만들어서 갈래머리에 달고는 달랑 낚시대 하나 챙겨들고 마을에서 가장 지혜로운 알버타 아주머니를 찾아가 조언을 구할 생각이었죠. 역시나 알버타 아주머니 가게에 손님이 뚝 끊긴 것만 봐도 이 마을에서 생선이 잡히지 않는다는 건 마을 사람 모두가 가난해진다는 의미라 하루라도 빨리 이 어려운 시절이 지나갔으면 하는 간절함이 크죠.

 

"알버타 아주머니, 아주머니는 숲속 마을에서 가장 지혜로운 분이시니,

어디가야 커다란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지 좀 알려 주세요."

 

 

  다행히 알버타 아주머니는 커다란 물고기가 많이 잡히는 장소를 알고 계신 듯, 칼포니아에게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비밀을 알려주셨어요. 바로 숲속의 비밀의 강을 칼포니아라면 대번에 그 강을 알아보고 찾을 있을 거라는 확실한 믿음을 소녀의 코끝이 가리키는 대로 따라가라 하셨죠. 하지만 칼포니아조차 정확한 정보도 없이 오직 코끝의 감각으로 뭔가를 찾아낸다는 것이 한심스러워

자신을 따르는 버기 호스에게 "코는 늘 앞쪽만 가리키는데, 어디서 꺾어야 하는지 어떻게 알지?"

문득문득 궁금증을 쏟아냈어요. 그러면서도 어느덧 오솔길을 벗어나 숲속으로 들어서는 칼포니아는 어디선가 불쑥 나타난 토끼를 따라서 코끝이 가리키는 대로 방향을 틀고, 다시 얼마쯤 지나서는 파란 어치 한마리가 우람한 참나무 가지 사이로 날아드는 걸 보자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코끝의 방향이 바꾸며 걷게 됐죠. 

 

 그리고 그 숲길의 끝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비밀의 강이 펼쳐지는데.. 물고기들이 어찌나 많은지 서로 앞을 막아서며 헤엄치고 있을 정도로 많은 물고기에 칼포니아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어요. 정말 알버타 아주머니가 말한 비밀의 강을 찾아내고 자연에게서 소중한 걸 얻기 전에 먼저 허락을 구하는 칼포니아의 착한 마음씨는 천사나 다름없어요. 사람들이 자연을 마치 우리 소유물인냥 주인 행세를 하고 함부로 훼손하는 욕심에 아무런 죄책감이 들지 않는다면 이런 위대한 자연의 선물은 기대할 수 없을 거 같아요. "얘들아, 난 어려운 시절을 겪고 있는 우리 마을을 도우려고 여기 왔어. 그러니까 미안한데, 너희를 좀 잡아가도 화내지 말아줘." 게다가 강둑에 매여 있는 자그마한 빨간 배 한척을 타고 노를 저어 강 한가운데서 낚시를 시작하는데요. 칼포니아가 물고기 미끼로 사용하는 건 다름 아닌 머리장식인 줄 알았던 분홍 종이꽃, 분홍 장미 한송이를 낚싯바늘에다 매달아서 물고기를 낚으러 해요.

 

처음에는 한동안 물 위를 동동 떠다니더니,

 서서히 물속으로 가라앉는 분홍 장미를 커다란 메기 한마리가 덥석!

 

 

  눈 깜짝할 사이에 물고기를 낚아채 올리는 칼포니아의 손길 바빠져요. 나중에는 칼포니아가 버기 호스와 함께 겨우겨우 집으로 가져갈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들을 낚아 올렸지요. 그때마다 버기 호스도 무척 기뻐했어요. 하지만 칼포니아 기뻐하는데는 좀 다른 이유가 있는 듯 하네요. 마을 사람들이 메기를 워낙 좋아해서 아빠가 좀 더 비산 가격을 부를 수 있을 거라 좋아했던 이유 다음으로 원래 메기라는 물고기는 성질이 몹시 고약해서 머리에 달린 날카로운 수염으로 사람까지 찌르러 들기때문에 애써 잡은 생선이 그나마 메기라 마음이 덜 미안하다는 거죠. 그러니 이 어린 소녀의 간절한 소원이 이뤄진 셈이에요. 더군다나 이 많은 물고기를 어떻게 집으로 가져 갈 지가 고민일때, 강 주변에 무리지어 피어 있는 실유카 이파리를 질긴 끈으로 사용하는 거마저 모두 자연의 도움을 받아 순조롭게 해결하죠. 

 

 이젠 길고 가늘면서 뻣뻣한 실유카 아파리를 따서 물고기들의 아가미를 꿴 다음, 낚시대에 주렁주렁 엮어 어깨에 짊어지고 집에 가는 일만 남았어요. 칼포니아는 알버타 아주머니의 말씀대로 이곳, 비밀의 강을 찾을 수 있었던 똑같은 방법으로 집을 가 보리라 마음 먹었지만 어느새 사방은 어둑어둑해지고 밤에만 움직이는 동물들이 어슬렁어슬렁 눈에 띄기 시작했어요. 그 중에는 저녁 먹잇감을 사냥하러 나온 동물들도 있어 무척이나 위험해 보이죠. 바로 그때, 죽은 나무 꼭대기에 커다란 부엉이가 큰 눈을 빙글빙글 굴리며 먹음직스런 물고기를 내려다보는데 심지어는 부엉이보다도 더 덩치가 크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는 커다란 짐승들이 불쑥, 보는 이의 심장이 더 쪼그라 들 정도로 무섭기 그지 없어요. 그나마 칼포니아는 침착하게 가장 싱싱한 메기를 배고픈 짐승들에게 정성껏 대접해요. 낚시대에 꿰어 놓은 메기를 풀어내는 건 만만찮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놈으로 골라 내어 깨끗한 풀밭에 내려놓으며 자신이 자연에게서 받는 소중한 것들을 기꺼이 굶주린 그들에게 나눠주는 거죠. 

 

누군가 널 겁주려 할때, 가장 먼저 마음을 읽어 줘야 해.

그럼 절대로 더 괴롭히지 않을테니까. 가끔씩 어떤 누군가는

"고마워."라며 인사말도 건넬 테니까. 

 

 

  칼포니아가 친구인지 적인지 알 수 없는 검은 표범에게 자신이 대접할 수 있는 최고의 만찬을 준비하고는 그들한테도 분명 사람과 똑같은 어려운 시절이 온 거 같다고 생각하죠. 어쩌면 힘든 시기를 함께 겪고 있는 또 다른 이웃이라 생각해서 무사히 그 어두운 숲길에서 벗어나 집으로 갈 수 있었는지도 몰라요. 드디어 집으로 향하는 오솔길에 들어섰을때는 이미 버기 호스는 기쁨에 들떠 컹컹 짖어대며 앞서 달려가고 있고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동물들이 처음과 다르게 소녀를 안전하게 배웅하는 듯 보이고요. 또한 어둠이 깔린 나무들 역시 각기 다른 표정의 얼굴들로 소녀를 감시하는 듯, 마치 사람의 눈길이 닿지 않는 자연의 신비로움이 자연에 대한 더 많은 비밀이 있음을 암시하는 듯 하죠. 특히 알버타 아주머니께 물고기를 드리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자 아주머니는 정말 믿을 수 없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표정으로 자연의 모든 신께 감사의 기도부터 올리죠.

 

  마침내 사랑하는 엄마, 아빠의 품 속으로 돌아온 칼포니아는 몹시 지칠대로 지쳐 있어 엄마, 아빠가 물어보시는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어요. 다만, 다음날 아침이 되서야 아빠가 생선을 팔기 위해 일찌감치 가게로 나갔다는 걸 알아챘어요. 그리고 아빠의 생선가게에 생선을 사러 온 사람들로 북적댔어요. 다만 생선값을 지불 할 수 없는 가난한 이웃들에게는 물고기를 외상으로 나눠줬어요. 결국 마을 사람들은 그토록 살기 힘든 시기를 잘 견디고 형편이 차층차츰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물론 알버타 아주머니의 가게에도 손님이 찾아오면서 다시금 마을에 안정과 활기를 되찾게 되었겠죠. 그러면서, 칼포니아는 버기 호스를 데리고 비밀의 강을 다시 찾아나서 보지만 두번 다시는 찾을 수가 없었어요. 아무리 예전 기억을 더듬어 코가 가리키는 대로 이쪽이든 저쪽이든 몇날 며칠을 찾아 헤매도 이상하게도 작은 물웅덩이만 찾아냈지요. 그건 풍요로운 비밀의 강은 실재 강이 아니라 간절한 바람이 이뤄 낸 자연의 고귀한 선물이기에 원한다면 언제든 그곳에 갈 수 있어요. 

 

칼포니아처럼 두 눈을 꼭 감고 내 마음 속 비밀의 강을 찾아

여행을 떠나보세요. 하늘에는 황금빛 물결이 너울대고 강에는 옥빛 물살이 출렁이는

여전히 아름다운 비밀의 강으로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