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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하늘나라는 어디일까 ㅣ 네버랜드 꾸러기 문고 44
킬리안 레이폴드 지음, 이나 하텐하우어 그림, 유혜자 옮김 / 시공주니어 / 201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초등 저학년을 위한 시공주니어 네버랜드 꾸러기 문고 44 <토끼 하늘나라는 어디일까>는 아끼던 토끼 펠레가 죽자, 펠레를 찾아 나서는 불레의 짧은 여정을 그린 동화로 어린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죽음이란 의미를 스스로 고민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따뜻하고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이네요. 여섯살 남자아이 불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토끼가 어느날 토끼장 안에서 뻣뻣하게 굳은 채 꼼짝도 하지 않는 걸 발견하고는 눈앞이 캄캄해지죠.
그 순간에 불레 머릿 속에 딱 한가지 드는 생각이 "펠레는 어디로 갔을까?" 이미 딱딱하게 굳고 차갑게 식은 채 토끼장 바닥에 누워 있는 몸 안에 펠레가 들어 있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한데 불레는 결국 펠레를 찾아 나서기로 마음을 먹으며 이야기는 시작돼죠. 그런데 죽은 펠레가 이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아요. 불레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죽는 것은 태어나는 것과 정반대라면 펠레는 죽은 순간부터 작아져 그 사이 생쥐나 파리같이 작아지지 않았을까 걱정이 들기 시작했어요.

집안 침대, 세면대, 다리미, 바구니, 낡은 양말 속, 심지어 쓰레기통를 뒤져봐도 어느 곳에도 몸집이 작아진 토끼나 토끼털 한올도 보이지 않아 점점 더 걱정스러웠고요. 그렇다면 펠레가 집에 없다는 건 어디 다른 곳으로 간 게 아닐지, 한참을 생각하던 불레는 혹 죽음이란 건 어디로 멀리 여행을 떠나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나머지 이웃집 삐거덕 할머니를 찾아뵙고 물어보기로 해요. 마침 할머니네 부엌에서 빨갛게 불이 붙은 화덕 앞에서 불꽃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불레는 죽음도 마찬가지로 저렇게 활활 타오르다 사그라지는 불 같은 거라 생각들었어요.
어쩌면 할머니도 죽은 할아버지를 찾으러 다닌 적이 없을까 이런저런 궁금한 생각들을 할머니 앞에서 늘어놓는 불레의 표정이 무척 진지하죠. "할머니, 펠레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걸 누가 알겠니? 한번 죽으면 다시는 안 돌아와. 그래도 펠레가 할아버지를 만나 서로 의지하고 지내면 좋겠구나." 그러면서 불레에게 들려주는 하늘나라의 모습이나 날씨 얘기가 마치 할머니가 지금 펠레가 있는 하늘나라에 갔다 온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불레의 궁금증은 커져만 갔어요.
오히려 왜 어른들은 늘 이렇게 이상한 대답만 해주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화가 날 지경이에요. 할머니로부터 예전에 할아버지가 쓰시던 낡은 허리띠를 선물로 받고 할머니 집을 나오자 삐거덕 할머니보다 죽음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다시 찾아가 보기로 마음 먹어요. 그래서 정육점 아저씨를 찾아뵙고는 죽은 동물들이 어디로 가는지 다짜고짜 물어보죠. 아마도 소나 돼지를 잡는 정육점 아저씨라면 죽은 동물들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거라 생각한 모양이네요.

"흠, 그러니까..." 돼지나 소 들이 등에 붙은 작은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다니는 하늘나라를 말하는 건지, 정육점 아저씨도 불레의 질문에 무척 대답하기 곤란하긴 마찬가지여서 불레에게 커다란 뼈를 하나 선물로 주는데 그 이유가 참 멋져요. "혹시 사자 하늘나라에 가게되면 사자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릴 미끼가 필요할 거야. 이렇게 먹음직스러운 뼈는 하늘나라에 분명히 없을 거다."
그리고 정육점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의문의 던지기 명수, 할아버지역시 불레가 원하는 답을 해주기 위해 엉뚱한 얘기를 지어내는 거 같은데 과연 그 얘기가 맞을지는 알 수 없어요. 그냥 무작정 할아버지 말대로 차표를 선물받고 전차 종점에서 구멍가게 옆 터널을 지나서 죽은 토끼들이 살아있는 토끼들과 만나 달리기 시합을 한다는 곳으로 출발하죠. 그것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넓은 풀밭에 도착해보니 어쩜 처음에 삐거덕 할머니가 말한 풀밭과 똑같을 뿐더러 불레는 그렇게 많은 토끼들을 한꺼번에 본 적이 없었지요.
마침내 펠레를 쏘옥 닮은 토끼를 발견하고는 어둠속으로 뒤따라 쫓으려 순간, 눈앞에서 도망치는 펠레대신 덩치는 크고 털은 아주 많고 고불거리는 개 한 마리가 불쑥 불레 앞에 나타나 펠레 뒤를 쫓을 순 없게 됐어요. 그제야 불레가 주변을 살피니 아무리 둘러봐도 사람은 보이지 않고 밤의 그림자가 크고 짙게 드리워져 불레는 더럭 겁이 났고요. 그나마 불레 옆에서 검은 털복숭이 개 한마리가 불레를 빤히 바라보며 꼬리를 살살 흔들더니 주둥이로 불레의 장화 속에 감춰둔 뼈다귀를 냉큼 물고는 불레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주는 듯 했죠.

그리고 할아버지 허리띠를 개줄로 사용하여 불레가 지나온 어두운 터널도 무사히 건너 집으로 돌아 올 수 있었어요. 그 후 며칠간 수소문끝에 펠레를 구해준 듬직한 검은 개는 진짜 주인이 없는 떠돌이 개로 밝혀져 개를 길러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무척 좋아하게 돼죠. 그렇게 펠레의 흔적을 찾아 떠난 여행은 새로운 반려동물을 만나며 끝이 나지만 결국 그 끝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거겠죠.
게다가 이야기 내내 삐거덕 할머니가 불레에게 해준 얘기 중에 이런 말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사람은 어디든 마음대로 다 갈 수 있는 게 아니며 죽은 동물을 아무리 찾아다녀봐야 소용없다. 가끔은 가만히 앉아 생각을 하는 게 더 좋을 때도 있다. 그러니 힘들어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는 충고가 불레같은 우리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조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엄마와 아이가 함께 읽으면 참 좋을 거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