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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 스파이 ㅣ 중학년을 위한 한뼘도서관 22
김대조 지음, 이경희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12년 5월
평점 :
알라딘 '6월의 좋은 어린이책' 전문가 추천도서 선정에 빛나는 주니어 김영사의 중학년을 위한 한뼘도서관22, <우리 반 스파이>는 '스파이를 찾아라! 왕대박 현상금' 출간이벤트부터 책에 대한 호기심이나 기대감이 컸었는데요. 소위 학교에서 공부 못하고 말썽만 피우고 사고만 치는 주인공 은수를 오히려 골탕먹이는 스파이가 누구며, 같은 반 친구나 선생님한테 '젠 원래 저런 얘야!' 따가운 눈총을 참아내고 오해를 풀 수 있을지 전문가추천보다도 아이가 먼저 책을 재밌게 읽고나니 더 궁금해지더군요.
3교시 시작하는 종소리를 따라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면서 문을 하도 세게 닫는 바람에 소리만 크게 나고 문은 다시 튕겨져 반이나 열렸어요. 가뜩이나 덩치가 백두산만한 선생님이 큰 소리를 지르자 순식간에 교실은 얼음물을 뒤덮어 쓴 것처럼 조용해졌지요. 이럴땐 선생님과 눈을 안 마주치는 게 좋다고 여긴 요주의 인물, 은수는 영문도 모르고 잠자코 고개를 숙이고만 있었어요. 물론 다른 아이들도 무슨 일인지 모르는 눈치였지만 다들 자기가 걸리기 싫다는 듯 입을 꾹 다물고 있었고요.
그 때, 선생님께서 복도에 있던 화분을 교탁위에 올려놓으며 "누가 여기다 압정을 박아 거야? 왜 가만 있는 나무에 압정을 박고 그래?" 버럭 화 내시니, 아이들의 눈빛은 선생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자동으로 은수 쪽으로 향하네요. "선생님 저, 정말 아니에요." 아무리 은수가 자신이 한 짓이 아니라고 손까지 흔들어 가며 말해도 "그럼 누가 그랬어?" 선생님과 아이들의 시선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또 너구나!' 하는 눈빛으로, 이미 범인을 알았다는 투로 은수를 대하였죠.

"저도 모르죠. 제가 화분도 깨고, 유리창도 깨고, 쓰레기통도 부순 건 맞아요. 그리고 교실 화분에 꽃나무를 몰래 뽑아서 그 밑에 쓰레기 쑤셔 넣은 것도 맞고요." "뭐? 꽃나무를 뽑아서 어쨌다고? 이녀석이!" 그만, 은수는 긴장한 나머지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해 버리고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 꼴이 되어 버렸으니 후회해 봐야 이미 늦었지요. "선생님 그게 아니라요." "너, 이 녀석 당장 뒤로 나가!" 그러니 이번 일처럼 자신이 한 짓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자신이 범인으로 내몰리는 상황이 은수는 너무 억울한 거죠.
더군다나 선생님이 우리반에 스파이가 있다는 말을 하기 전까지는 적어도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벌을 받는 게 억울하진 않지만 요 며칠 자기가 한 잘못이 아닌데도 자꾸만 벌을 받고 있다는 것은 은수같은 말썽쟁이에게 진실이란 게 존재하는 건지 의심이 갈 정도예요. 오히려 그럴 땐 진실을 알려주는 종이나 마법의 거울이 있다면 한번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죠. 은수입장에선 분명한 건, 선생님이 은수만 미워하거나 아니면 숨어 있다는 그 스파이가 은수를 미워해서 일부러 골탕먹이는 것이라 생각할 수 밖에 없었어요.

도대체 스파이란 녀석이 어떤 녀석이길래 선생님께 거짓으로 고자질을 하는 지, 당장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스파이를 찾아야겠다는 간절했죠. 심지어 친구들은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는데 혼자 바닥에 엎드려서 반성문이란 걸 쓰고 있자니 이보다 더 억울할 수가 없어요. 반성문, '오늘 아침에 하장실 간 사이에 승규가 저의 받아쓰기 공책을 몰래 훔쳐보았습니다...'
그런데 화장실을 하장실, 친구들을 칭구들, 어쩜 반성하는 아이의 진심을 보려해도 자꾸 틀린 글씨가 마음을 방해하는지 "에휴! 글씨봐라 글씨. 내가 콧구멍에다 연필을 끼우고 써도 이것보단 낫겠다. 맞춤법에 맞게 쓰지 못할 거면 또박또박 정성이라도 들여야지. 글씨가 이 모양이니깐 네 마음도 그 모양이지." 선생님 얘기가 구구절절 옮다는 게 저희때도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늘 하셨거든요.
그럼에도 은수는 글씨가 비뚤다고 해서 마음이 비뚠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 정말 마음이 삐딱한 아이로 찍힐 거 같아서 하지 못했다니 아이 마음도 전혀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네요. 그렇다고 사흘 꼬박 고민하고 내린 결론이 흰 마스크를 쓴 채 침묵시위를 하는 건 누가봐도 좋은 방법이 아닌 듯 친구들은 무슨 재미난 장난을 하나 싶어 깔깔 비웃기 시작하고 도리어 선생님을 붉으락푸르락 더욱 화나게 만들어 결국 선생님 전화를 받고 학교로 오신 부모님 손에 붙들려 가면서 은수가 밝히고 싶었던 진실은 쓰레기통의 쓰레기처럼 초라하게 구겨지고 말았어요.
"엄마도 삐아삐아, 선생님도 삐아삐아, 다 삐아삐아삐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 뒤로도 왠지 머나먼 낯선 세상에 혼자 떨어진 느낌이었던 은수에게 참으로 기적같은 일이 생겼어요. 바로 선생님이 은수의 말을 믿어 준 것인데 은수는 너무 감격해서 말을 잇지 못했어요. 무엇보다 자기의 진실이 선생님에게 통했다는 사실이 무척 기뻤거든요. 물론 은수가 야심차게 준비한 미끼작전도 멋지게 실패로 돌아가 끝까지 스파이가 누구인지 밝혀내진 못했지만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은수가 공부시간에 손들고 서 있고 거짓말을 대충 섞어서 반성문을 쓰는 일, '괴짜' '말썽쟁이' '변태' 같은 기분 나쁜 말이 항상 은수앞에 따라 다니던 일도 지우개로 문지른 것처럼 점점 사라지듯 희미해졌어요.
그나마 유일하게 은수와 마음을 터놓는 사이인 동네 배우아저씨의 진심어린 조언, 응원의 메시지가 큰 힘이 된 거 같아요. '네가 진심으로 사람들을 대하면 사람들도 너의 진실을 믿어 줄 것이며 진실은 바로 네 마음속에 있다!'고요. 이제는 더 이상 손들고 벌서고 반성문쓰는 일따윈 그만하고 자신도 누군가에게 기분좋은 칭찬을 받고 싶다는 은수의 결심이 곧 은수를 멋지게 변화시키라 생각들어요. 마지막 장에 "나도 칭찬받을래! 엄마, 나도 칭찬받을래!' 좋아서 펄쩍펄쩍 뛰는 은수의 모습이 계속해서'우리 얘는 저러면 안되는데..' 걱정부터 앞섰던 저의 불안을 조용히 잠재우며 한 두번 우리 아이의 사고쯤 눈감아 줄 넓은 아량이 생기는 듯 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