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은행
캐럴린 코먼 지음, 롭 셰퍼슨 그림, 고수미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아이들과 마주한 아침풍경은 항상 시끌벅적. 하루에도 같은 꿈을 세 번이나 꾼 딸 아이는 그 날 컨디션이 최고인 날이다. 아침 밥상머리에서부터 자신의 어젯밤 꿈 얘기를 이러쿵 저러쿵 풀어놓는데 은근히 아이들끼리는 좋은 꿈, 나쁜 꿈 경쟁이 붙어서 없던 꿈 얘기도 지어낸다. 참 별꼴이다! 하지만 캐럴린 코먼 글, 롭 셰퍼슨 그림의 <기억은행> 책을 읽고 나니 참 별꼴이던 아이들의 꿈 얘기가 '오늘은 어떤 꿈을 꿨을까?' 무척 궁금해졌다.

 

 아침 햇살이 눈부신 어느 작은 다락방에 눈 뜨자마자 어린 동생을 각별히 챙기는 마음착한 언니가 등장. 호프 스크로긴스와 허니 스크로긴스는 세상에 둘도 없는 자매사이라 동생 옷을 하나하나 챙겨 입히고 급할 때나 나쁜 일이 생길 때를 대비하여 꼭 챙겨야 하는 호루라기도 동생 목에 걸어준다. 호루라기는 허니의 필수품 1호. 그렇지만 허니와 엄마, 아빠의 사이는 정말 끔찍하게도 좋지 않다.

 

 "걘 잊어버려!" 호프는 멍하니 차창 너머로 버려진 동생을 보고만 있었다. 자동차바퀴가 일으킨 회오리 먼지바람에 허니의 작은 몸이 잠깐 보이지 않던 그 사이, 허니는 점점 작아져 작은 점이 될때까지 호프는 부모님께 애원하고 또 애원해봐도 소용없었다. 절대 농담하지 않는 아빠는 단호하고 냉정하게 호프에게서 억지로 허니를 떼어놓았다. 정말 끔찍하게도...

 

 

허니는 어디로 갔을까? 호프는 동생 걱정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 엄마 아빠는 허니의 매트리스를 버리고 허니의 옷과 장난감은 낮은 나뭇가지와 들쭉날쭉한 덤불에 걸어두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팔아치웠다. 하지만 호프는 눈길이 닿는 곳마다 허니에 대한 기억이 스며들어 마음이 괴로웠다. 무엇을 보아도 아무것도 보지 않아도 허니가 생각나고 모든 기억이 호프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상처가 난 호프는 울컥, 울음이 치밀어올라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하루종일 차고에 있는 간이침대에 누워 잠만 자던 호프는 엄청나게 쏟어지는 눈사태처럼 매일밤 미친듯이 꿈울 꿨다. 꿈속에서만큼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허니를 찾을 수 있었기에 밤이건 낮이건 꿈 꿀때가 가장 즐겁고 행복했다. 

 

어느날 밤, 꿈에서 깨어난 호프는 식탁에 산처럼 쌓여있는 청구서더미에서 자신 앞으로 온 편지를 발견하고 그 봉투안에 허니의 소식이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전세 세차 기계 은박지, 전화 세탁소 기후 은하수, 전철 세 바퀴 기관차 은수저...한참동안 머리를 이리저리 굴러봐도 도무지 무슨 뜻인지 모르는  '전세기은' 이라는 황금색 글씨가 편지봉투 위 검은색 타원 안에 적혀 있었다.

 

 

 

 호프 스크로긴스 수신 잔액변동 및 잔액부족 문제재중 그 뒤, 호프는 편지에 적힌 성가신 경고는 깡그리 잊어버리고 대신 무슨 꿈이든 자유롭게 꿈을 꾸던 그날 밤, 택배전문 회사 '오블레라타와 아이들' 차량에 올라타 물건이 아닌 호프가 배달되어 간 곳은 다름아닌 '전 세계 기억 은행'인 전세기은 대기실. 검은색 줄무늬가 물결치는 벽을 통과하여 컨베이어 벨트가 갑자기 멈춰 선 건물 안은 제복을 입은 보안 요원들로 가득했다.

 

그 가운데 여러 겹을 덧대어 만든 화려한 옷을 입고 나타난 바이올렛 멈은 꿈의 궁전의 수호자. 은행에 예치한 기억이 부족해서 온 호프를 꿈의 궁전으로 안내해준 사람이다. 호프야말로 꿈을 잘 꾸는 아이, 꿈을 꾸는 데는 챔피언인 아이이니만큼 꿈의 궁전에서 대우가 달랐던 거. 엄청난 규모의 기억광장 안은 높은 천장에 매달린 커다란 깔대기가 꼭 거꾸로 매달려 있는 커다란 도토리처럼 생겼다.   

 

 기억광장에 울리는 엄청난 소음이 완전하게 차단된 방에서 오만가지 생각으로 복잡했지만, 호프는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곳은 호프같은 꿈쟁이가 꿈 주머니로 아주 막대한 재산을 모을 수 있는 곳이다. 바로 꿈 청소부들이 꿈을 모아 오면 휴대용 꿈 수집기와 모니터로 꿈을 정리하는 곳으로 기억은행에서 꿈은 가장 귀중한 자산이 된다. "모든 꿈은 빛의 근원이란다. 어떤 것은 특히 환하게 빛을 낸단다. 그것들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드러내서 오랫동안 끊임없이 밝게 빛나는 거야."

 

   

 

 더 신기한 것은 사람들의 영구기억을 보관하는 안전 금고 벽, 호프는 허니의 기억을 포기할 수 없어 영구기억으로 채워진 거대한 금고 벽을 반작반짝 빛이 나도록 닦는 순간에 그토록 보고 싶었던 허니의 얼굴을 보고 말았다. 호프는 떨리는 손을 뻗어 손가락으로 기억 구슬을 잡았다. 기억구슬은 작고 따뜻하고 허니만큼 소중했기때문에 기억은행의 책임자, 스털링이 기억구슬을 받으려고 몸을 기울리자 호프는 그 자리에서 기억구슬을 꿀꺽 삼켜버렸다...

 

허니, 널 볼 수 있다면 난 뭐든 할 거야!

네가 가까이 있는 게 느껴져!

 

그리고 선명하게 울리는 허니의 호루라기 소리를 따라 스털링의 손을 뿌리치고 기억 수용기 끝에 올라서서 사람들의 기억을 몽땅 엉망으로 만들어 놓으려는 태비 일당들의 무리 속에서 가까스레 허니를 품에 안는다. 새롭게 시작하는 패거리, '새시패'의 우두머리 태비역시 끔찍할 정도로 바쁜 아빠에게 버림받은 상처로 길을 잃거나 버려진 아이들의 아픈 기억을 모두 지워버리려 했던 거. 결국 기억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나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들 모두 영원히 잊지 못할 순간의 기억은 오랫동안 기억되는 법. 거의 매일 밤 똑같은 꿈의 세계가 아닌 완전 새로운 꿈의 궁전으로의 여행이 잊혀졌던 기억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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