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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레시피 - 레벨 3 ㅣ 익사이팅북스 (Exciting Books)
이미애 지음, 문구선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9년 8월
평점 :
하품이 절로 나오는 심심한 산골 마을,
굼실굼실 구더기가 기어다니는 재래식 변소가 있고,
말린 산나물냄새, 메주 냄새가 가득한 집에
장승같이 키가 큰 와할머니가 산다.
늘 동당동달 바쁘고, 조금만 잘못하면 득달같이 혼내고,
부려먹고 곯려먹기 좋아하는 외할머니.
그 존재만으로도 내 가슴에 내리누르는 외할머니가 나는 싫다.
그런데 그런 외할머니 집에서 5학년 여름방학을 보내게 되었다.
방학숙제 면제와 블라이스 인형을 안겨 주는 엄마의 꼬임에 넘어가
작은 시골 역에 내린 순간, 나만 달랑 보냈다고 벌컥벌컥 화를 내는
외할머니와 맞닥뜨린 순간, 나의 불길한 느낌은 적중했다.
아 이럴 줄 알았어. 최악이야.
아마도 지난 여름방학과 같은 초등 5학년 여름방학을 하기 싫은 방학숙제를 안해도 된다는 엄마의 꼬임에 서현이는 가족과 멀리 떨어져 사는 외할머니댁으로 보낸 모양이다. 그것도 엄마, 아빠와 함께가 아니라 낯선 시골집에 할머니와 단 둘이 보내야 하는 여러가지 난관들이 벌써부터 걱정반 기대반으로 가닥차다.
그리고 <할머니의 레시피>란 책 제목답게 시골집 앞마당에서 기르는 토종닭을 한 손에 쥐어 잡고 다른 한 손엔 밭에서 싱싱한 파 서너 단을 한꺼번에 뽑아들고 반가운 손녀딸을 향해 "서현아 찜닭 해 묵자!" 한 마디를 외치시는 할머니의 모습과는 달리 "엄마야!" 놀라서 기겁하는 손녀딸과 앞마당의 다른 암닭과 어린 병아리들까지 결코 순탄하지 않지만 그 속에 녹아있는 정겨운 고향의 향수가 느껴진다.
어쩌면 고향을 떠나 살아서 그 고향에 대한 향수가 더욱 그리운 지 몰라도 예전에 느꼈던 작은 불편함까지도 너무나 정겹다. 가장 큰 화장실 문제도 그렇고, 아직 부엌일에 서툰 서현이에게 걸레대신 낡은 할머니 속옷을 던져주는 것도 그렇고, 이웃 간에 서로 허물없이 지내는 것도 그렇고, 소박하지만 음식하는 사람의 정성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할머니의 시골밥상도 모두 정겹기는 마찬가지이다.
감히 그 어떤 진수성찬과도 비교 할 수 없는 <할머니 레시피> 속에 단순히 음식의 재료를 준비하고 다듬고 요리하는 거 말고도 할머니와 함께한 짧지만 애틋했던 시간과 살면서 영원토록 잊을 수 없는 할머니와의 추억이 가슴깊이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