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뒷골목 풍경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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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는 참 고약한 임금이로다! 우아한 정통 역사책에서 익히 들어온 영조의 치적을 모르는 바 아니나 고단한 백성들이 하루 일을 마치고 한 잔 걸치는 탁주마저 임금의 명으로 금하다니 이 부분에서 만큼은 참으로 고약한 임금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오호라~ 불쌍하도다! 영조 치세의 수많은 주당들이여! 술 한 잔 마음놓고 마시지 못하는 암흑의 시대를 견디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는가? 게다가 영조라면 조선의 역대 임금 중에서도 명이 길어 재임기간이 무려 50여년에 이르지 않더냐? 그 장구한 세월 동안 추상같은 금주령을 피해 땅 속에 술동이를 파묻고 골방에 숨어 쉬쉬하며 마셨더란 말이냐?


지금이야 술의 주원료인 쌀과 보리가 남아도는 세상이고, 나도 해만 떨어지면 눈빛이 반짝반짝 ‘어디 술 마실 쾌가 없을까?’ 전화통 붙잡고 기다리는 주당이니 아마 금주령 치하 그 시절에 살았더라면 분명 골방에 숨어 홀짝홀짝 술잔을 기울이며 임금과 금주령과 세상을 탓하고 있는 못난 한량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양반이 아니었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 그렇긴 하다. 하지만 뭐 그렇더라도 특별히 아쉬울 것은 없다. 마당 쓸다가 돈 줍는다는 말이 있듯 어쩌다 생긴 공돈으로 탁주 한 되 받아다가 몰래 숨어 마시는 마당쇠였다 한들 어떠랴? 호젓한 물레방앗간에 탁주 한 사발과 삼월이만 옆에 있으면 더 이상 부러울 게 없었을 터!


아무래도 이 책은 위와 같은 말투로 읽어야 제 맛이 난다. 작가도 책 머리에서 밝힌 바와 같이 근엄하고 장중한 역사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왕조와 신하가 등장하는 역사, 영웅이 나타나 난세를 구하더라는 우아한 역사서를 기대했다면 애초에 책을 잘못 고른 것이다. 요새 수능시험에서의 부정행위가 날마다 뉴스에 오르내리는데 과연 조선시대의 과거시험에도 부정행위가 있었을까? 로또나 경마가 없던 조선시대의 서민들은 무슨 도박으로 인생역전을 꿈꾸었을까? 조선시대에도 패션 유행을 주도해가는 오렌지족이 있었을까? 섹스스캔들의 대명사 <어우동>에 대한 재판은 어떻게 진행되었으며, 그녀의 남자들은 어떻게 처벌되었을까? 등 임금의 어가행렬이 지나가는 큰길의 역사가 아니라 책 제목 그대로 뒷길, 골목길의 역사가 궁금한 사람들에게 적당한 책인 것이다.


그렇다고 책 만듦새가 뒷골목스럽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동안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백성들의 역사, 민초들의 역사를 독특한 문체로 읽기 쉽게 써내려간 작가가 오히려 정통 한문학과의 근엄하신 교수님이라는 점도 재미있고, 한문학 교수답게 매우 많은 분량의 문헌 고증을 제시함으로써 설득력을 높이고 있다. 게다가 얘기의 흐름과 함께 적당한 그림과 사진을 깔끔하게 배치하여 독자가 한 눈에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는 점에서 아주 잘 만들어진 책이다. 어느 매체의 영화평 스타일을 빌자면 ‘역사서에는 반드시 아름다운 후궁이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 구독 절대불가, 그 외 누구나 강추!’라 하겠다.


미시사 책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조선시대를 살았던 조상들의 문화적 수준이 오늘날 우리의 그것보다 저열했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은 명백히 잘못된 생각이다. 책을 읽어 나가다 보면 무릇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다 그만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 갖은 똑똑을 다 떨고 있는 나도 영조의 금주령 아래 살고 있다면 지금쯤 없는 제사를 만들어서라도 술 한 잔 마실 구실을 찾고 있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이요, 나물캐는 아낙이 과거시험장 담 밑으로 연결된 답안지 수송용 대롱을 발견했던 것처럼 요새 경찰은 핸드폰 문자메시지를 이용한 수능시험 부정을 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백하거니와 그들이 춘화를 돌려 보며 희희낙락했던 것처럼 나도 지금 모니터 바탕화면에 흑백 누드사진을 올려 놓았기 때문이다.


요 며칠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파전에 막걸리 한 잔 생각이 간절하다. 아무래도 오늘 저녁엔 피맛골 근처에 가서 한 잔 마셔야겠다. 물론 지금은 영조 시대가 아니라는 점에 대해 감사의 묵념이라도 한 번 올리고 나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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