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들의 풍경
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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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의 마지막 평론집 '말들의 풍경'을 읽었다. 89년에 김현이 죽었을 때 나는 김현이라는 사람을 알지 못했고 평론이라는 글쓰기도 몰랐다. 그러나 내가 문학을 한답시고 도서관을 어슬렁거렸을때 가장 강렬하게 그리고 가장 가깝게 다가온 사람들 중의 한사람이 김현이었고 그의 평문들이었다.

그의 전생애가 남긴 글들을 다 읽지 못한, 그리고 다 이해하지도 못한 나는 그의 부재를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항상 나의 문학적 사유를 따라다니고 있으며 내 의식과 무의식 속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육체의 소멸이 영혼의 소멸이 될 수 없음을 나는 확인한다.

김현의 평문은 '이다'체의 단정이 특징이다. 그 단정은 타자의 삶에 대한 자신의 대타적 관계를 부각시키는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 쉽게 말해 그것은 나르시시즘이라고 할 수 있는 강렬한 자기애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래서 김현의 평문에는 작가들과의 '인정투쟁'의식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자기의 드러냄이라는 김현의 글쓰기는 이타주의를 배면에 깔고 있으며 인간주의를 그 본질로 하고 있다는 데서 요즘의 젊은 평론가들과는 구별된다. 이타주의와 인간주의를 도반한 인정투쟁의 글쓰기는 그래서 상호인정의, 상호반성과 성찰의 단계로 뛰어오른다. 이 때문에 김현은 지금도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나이기 때문에 너와 달라야 하고, 나는 내가 아니기 때문에 너와 같아야 한다. 나는 너와 같이 싸우고 사랑하지만 네가 아니고, 너는 나와 같이 싸우고 사랑하지만 내가 아니다. 너와 나는, 무서운 일이지만 흔적들이다. 욕망만이 웃는다. 불쌍한 개인성이여, 너는 네가 너를 강력하게 주장할 때, 네가 아니다.'('말들의 풍경'을 시작하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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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문학 어떻게 볼 것인가
황종연 외 지음 / 민음사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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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문학은 그 이전의 문학과 큰 폭의 차이를 드러내었다. 90년대 이전의 문학이 역사와 민족과 같은 거시적인 세계관에 바탕한 것이었다면, 90년대 문학은 신세대 작가로 분류되는 일군의 젊은 작가들에 의해 일상의 복원 혹은 자아에 대한 탐색이라는 새로운 모색이 이루어 졌다.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논쟁이나 민족문학론과 같은 근대적 성찰은 90년대에 와서 급격하게 약화되고, 대신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담론이 한국의 문학을 휩쓸었다. 지난 시대의 논리는 후일담의 형식으로 반추되기도 하고, 대중 소비사회의 해악에 대한 냉소적인 비판이 있었다. 그리고 타자화 되었던 것의 복원으로 여성과 생태에 관한 관심이 드높았았다.

이 책은 90년대 문학에 대한 젊은 평론가들의 정리와 평가를 담고 있다. 21세기의 문턱에 자리한 이 시점에 지난 세기의 마지막 10년을 되돌아 보는 일은 의미있다. 21세기의 문학은 거시적인 세계관과 미시적인 세계관이 생극을 이루고, 개인과 공동체, 이성과 감성, 전통과 진보의 가치가 다같이 어우러진 것이어야 한다. 이같은 문학의 성취는 많은 것들을 요구할 것이다. 그 요구들에 부응하기 위해 내가 할 일은 무엇인지 고민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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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문학사와 철학사
조동일 지음 / 지식산업사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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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가 논문을 쓰는데 결정적인 자료가 되었던 <생극론의 역사철학 정립을 위한 기본 구상>이라는 글 때문에 사서 읽게 되었다.

그런데 제법 두꺼운 분량의 책이지만 너무 재미있게 속독해 버렸다. 기존에 <<한국문학사상사시론>>에서 전개했던 논의들을 보다 정교하게 가다듬은 내용들도 보이고 다른 곳에서 보았던 글들도 실려 있었는데, 특히 <근대극복의 과제와 한일 학문>은 잠을 설칠 정도로 감동을 받았다. 일본의 부당한 근대논리를 식민지 체험의 악감정으로 몰아부치지 않고, 차분하고 단호하게 그들의 모순을 지적하면서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제시해 주는 그 글은 대승적 학문의 참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 글을 일본 본토의 학술대회에서 발표했다고 하니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르겠다.

방대한 양으로 쓰여진 <18세기 인성론의 혁신과 문학의 사명>은 중세 후기의 '인물성동이논쟁'이 호론과 낙론으로 나뉘어 격렬한 논박을 벌이다가 임성주, 홍대용, 박지원에 의해 일원론적 주기론으로 혁신되는 과정을 중세에서 근대로의 과도기적 담론으로 해석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때 철학의 혁신은 그러한 내용을 담아낼 수 있는 표현(글쓰기)의 혁신과 함께 이루어진다. 이 글을 읽으면서 <<문학연구방법>>이라는 조동일의 저서가 우리 선인들의 문체에서 상당부분 영향받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특히, 문답법과 도설)

읽기와 쓰기을 함께 고려한 <최한기의 글쓰기 이론>도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비판적인 독서는 곧바로 그 비판을 넘어서는 글쓰기를 통해 완성될 수 있다는 읽기와 쓰기의 변증법. 그 외의 여러 논문들도 다른 저작들에서 다루었던 내용들을 좀더 보완하고 가다듬어서 정리해 보다 깊이있는 이해를 도와 주었다.

조동일의 작업은 고전(전통)을 다시 봄으로써 현실의 새로운 논리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그 전통의 중심은 최한기로까지 이어진 '일원론적주기론'이다. 조동일은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까지 이어진 우리의 사상 혁신이 근대를 완성하지 못하고 만것을 한탄만 하지 않고 자신의 학문적 작업을 통해 성취하려고 한다. 그 작업은 이제 어느정도 윤곽을 드러냈다고도 생각된다. 그의 세계문학사론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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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기 문학비평 연구
송희복 / 문학과지성사 / 199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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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근현대문학비평사는 정치논리의 강한 영향 아래에서 전개되어 왔다. 그것은 격동기라 할만한 우리의 근현대사의 부침에 문학이 반응해온 결과이다.

이 책은 을유 해방에서부터 6.25전쟁까지의 5년을 '해방기'로 설정하여, 그 기간의 비평적 현상을 좌우익의 정치논리와의 연관을 고려하여 설명하고 있다. '해방기'는 '권력 구심의 부재, 역사 의식의 무중력, 문화적 진공'이라는 문학외적 제도의 관점을 추수한 김윤식의 '해방공간'이라는 용어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용어이다.

해방기의 문학비평은 좌익의 선점으로 출발하여 우익의 승리로 마감된다.(남한의 관점) 해방공간의 정치적 위상은 좌익 계열에서 박헌영의 조선공산당 재건파가 여운형의 조선인민당과 백남운의 남조선신민당을 통합해가는 형태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은 박헌영의 8월테제(현정세와 우리의 임무)로 표명되는 인민민주의 민족통일전선의 결과 였지만, 이는 결국 좌우익의 통일을 실패하고 좌익만의 통합에 그친다. 임화의 주도하에 창립된 조선문학가동맹은 바로 그러한 정치적 정황과 대응하고 있다. 이 때 이같은 통합에 불만을 가졌던 인사들은 월북하는데, 이들은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후 월북한 임화등의 남로당계 좌파를 숙청하는 주역이 된다.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중심으로한 우파는 순수문학을 내세우면서 좌파의 이념지향과 정치적 도식주의를 공격한다. 이들 우파의 대표적 논객은 김동리와 조연현이다. 결국 이들은 객관적 정세로 인해 좌파에 대해 승리를 거두지만 이것은 쟁취한 승리가 아니라 주어진 승리였다는데서 불완전한 것이었다. 이 불완전함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완성되지 못하고 있다.

우익 문학의 승리와 남북전쟁으로 말미암아 이땅의 문학은 반공이데올로기에 입각한 보수적 문학이 주도권을 장악하게 된다. 4.19는 요즘 다시 주목받고 있는듯 한데(창비의 기념저작) 48년 단일 정부의 수립과 함께 내재화 되었던 진보주의 문학을 소샹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문학비평사의 전개는 이같은 적대적 대타관계의 긴장 속에서 전개되었고, 그로인해 우리의 문학은 그 긴장의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진정한 민족문학의 건설은 바로 이 과도한 긴장을 완하시키는 것에서 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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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의 암소:미셸 푸코 연구 현대의 문학 이론 16
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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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의 미셸 푸코 연구서 <시칠리아의 암소>를 읽었다. 김현의 글은 나를 분발하게 만든다. 유려한 문체와 타자에 대한 이해의 깊이, 텍스트에 대한 예리한 분석력, 이런 것들은 김현의 이름 앞에 왜 대가라는 수식이 필요한가를 절감하게 한다.

산재해 있던 푸코의 문학 비평들을 한데 묶어 <미셸푸코의 문학비평>이라는 책을 엮었던 김현이 이 책을 쓴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푸코의 난해한 문맥은 김현의 분석을 통해 나름의 질서를 갖추고 전달된다. 푸코의 질서에 대한 탈주와 그 뒤를 쫒는 김현, 그것은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되어 있다.

'그의 글을 읽는 독자들은 그의 탈-체계적 사유를 다시 체계화하여 그를 읽으려고 애쓴다. 그는 벗어나려고 하고, 그를 읽는 독자들은, 나처럼, 그를 잡아 가두려고 한다. 그 힘들 사이의 긴장의 공간이 그의 사유의 공간이다.'(80쪽)

푸코는 문학과 미술같은 비-철학적인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철학적으로 사유함으로써 철학과 비-철학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러니까 문학비평과 마찬가지로 그의 미술비평은 철학의 반성이라는, 그의 표현을 빌면 철학적인 것의 고고학적 계보학적 위치를 규명하려는 노력의 표현이다. 그의 노력을 통해 비-철학적인 것들의 상당수가 철학적인 것의 영역 안에 들어 온다. 광기 감옥 성 고백 병원 등의 비교적 큰 주제들뿐만이 아니라, 거울 칼리그람 등의 비교적 사소한 주제들에 이르기까지 그가 다룬 것들은 철학적인 것의 범주 안에 들어 온다.'(196쪽)

푸코의 시대 구분을 따르면 15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5세기 동안의 기간은 두 번의 단절을 보이며, 이 단절은 비연속적(바슐라르의 '인식론적 단절'의 영향을 받음)이다. <말과 사물>에 에서 언급한 에피스테메 이론(푸코는 뒤에 에피스케메 이로능로 부터 거리를 두게 된다.)을 따르면 유럽의 역사는 16세기까지의 전고전주의적 에피스테메(유사성과 조응), 17세기 중엽에서 18세기 말까지의 고전주의적 에피스테메(재현), 19세기 초에서 20세기 중엽까지의 근대적 에피스테메(역사성)로 나뉘어 진다. 김현이는 이러한 시대구분이 '쉽게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 주장들이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학교에서 가르치는 시대구분의 교묘한 변형이기 때문이'(54쪽)라고 한다. 또한 김현은 에피스테메가 '변모의 국면들 사이에는 인식론적 단절, 불연속이 있으며, 변화된 국면에서는 새로운 인식이 생겨'(66쪽)나는데, 이 새인식이 쿤의 '패러다임'과 비슷하다고 하면서도 세가지면에서의 차이를 인용하고 있다.(67-8쪽 참조)

<푸코의 문학비평>에서는 담론과 권력(76-9쪽 참조), 저자의 죽음(83-91쪽 참조)에 대해 명쾌하게 소개하고 있다.

데카르트의 해석을 두고 벌인 데리다와 푸코의 논쟁을 소개하면서 '푸코는 이성이 광기를 배제했다고 보고, 광기의 역사를 씀으로써, 고전주의적 이성의 한계를 드러내려 하고, 데리다는 이성 속에 돵기가 숨어 있다고 보고, 그 숨김의 양태를 드러내려 한다.'(120쪽)고 요약한다.

<권력 언어 매혹>은 산재하는 권력인 '미세권력', 앎(지식)과 권력의 관계, 규율사회 등 권력에 관한 푸코의 사유와 함께 바르트와 보드리야르의 권력개념을 소개하고 있다. 고해성사와 경찰의 심문기술에 이르기까지 통제의 역사를 고찰하는 부분은 재미있게 읽힌다. 그리고 '인문과학은 규제의 산물'(137쪽)이라는 푸코의 말은 지식과 권력의 관계에 대한 통찰에서 나온 것이다.

<권력 언어 매혹>은 현대성에 대해 비판과 옹호라는 이중적 태도를 보였던 푸코에 대한 하버마스의 비판을통해 푸코의 현대성 개념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억압없는 사회를 향한 노력>은 짧지만 명료한 글이다.

김현의 이 푸코 연구서는 체계적인 사유로부터 벗어나려는 푸코를 비-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한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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