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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 강은교 詩話集
강은교 / 문학동네 / 2000년 7월
평점 :
품절
논리적인 언어가 감당할 수 없는 문학적 진실에 대한 진술을 강은교의 이 시화집은 대담하게 펼쳐보이고 있다. 시인의 체험, 그녀의 피와 살을 통해 겪어낸 그 진정성의 체험은 시가 무엇이며 문학이 무엇인지를 진술할 수 있게 한 힘이 아닐까?
언젠가 강은교 선생님에게 오규원의 <현대시작법>과 같은 책을 한번 써 보시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주제넘은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 그 물음에 앞서 이 책은 이미 나와 있었고,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나는 무척이나 부끄럽다. 직관과 사색을 거쳐 나온 선생님의 언어는 시가 무엇이며, 시를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너무나도 명징하게 그리고 직접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이다.
단연코 이 책은 우리 시단의 위대한 저작물로 기억될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엉성한 역설이 주는 가짜 아포리즘의 무수한 말들, 저자도 모르는 그런 말들의 소통불가능한 언설들. 이 책은 그런 얼치기들로부터 멀찜감치 떨어져 있다. 저자의 체험이 타자의 체험으로부터 소외되지 않고, 그 체험들이 서로에게 스며들어 서로에게 울림을 주는 체험의 소통을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이다.
선생님께서 손수 번역하셨던 칼릴 지브란의 문체를 많이 닮아있다는 인상을 받게 되지만, 장자에서 더 큰 영감을 받았을 법한 우화적인 표현들은 매혹적이다. 릴케와 지브란, 클래식과 서양의 미술품들을 언급하는 고상한 취향은 속물적 삶에 대한 거리두기, 즉 신성한 것에의 동경을 감지하게 하는데, 이것은 선생님이 넘어서야 할 인식의 벽이 아닐까? 바리데기의 무조신화 마져도 모던하게 처리하고 있는 이 책의 언술은 그런 의혹을 더욱 뚜렷하게 한다.
취미, 즉 부르디외가 말하는 아비튀스의 속박에서 자유로운 문인들, 사회학의 분석을 거부하는 문인들이야 말로 성실성을 넘어서 진정성에 도달한 문인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