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피스의 집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256
다케우치 마유코 그림, 오이카와 겐지 글, 김난주 옮김 / 시공주니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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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그린피스는 개구리다. 그린피스(greenpeas) 즉 완두콩 캔이 현관문이다.

그래서인지 제목부터 동글동글 완두콩하나하나를 연결해서 만들었다. 땅속 그린피스의 집에는 많은 물건들이 있다.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라고 통칭할 수 있겠지만 그린피스에게는 하나하나 소중한 것들이다. 동물에게도 쓰레기(나에겐 필요 없는 물건)란 개념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본인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이 쓰레기란 걸 알면 어떨까?

 

어쩌면 나에겐 쓰레기지만 타인에겐 필요한 물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이야기일까? 하루에도 몇 톤 씩 쏟아지는 온갖 생활 쓰레기들이 태평양 바다 어느 곳에 거대한 플라스틱 섬을 만들어 새들의 쉼터가 된 이명애작가의 <플라스틱 섬>이 바로 떠오른 건 알지만 모른 체하고 싶은, 관여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이라서 일까?

 

누구나 다 알지만 어떻게 되겠지. 내가 아닌 누군가 정부? 공공단체? 비영리환경단체들이 잘 하겠지. 결국 나는 그저 조금 더 쓰레기를 줄이려고 노력하거나 기관의 방침을 잘 따르는 정도로만 이 죄책감을 무마하려는 걸까?

  

  

날카롭게 따진 캔 뚜껑의 단면에 그린피스가 다치지 않을까? 란 걱정이 그림책을 보자마자 들었던 것도, 미처 치우지 않은 위험한 물건을 들고 노는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 같다. 내 잘못인 걸 알지만, 아이 탓이 아닌 걸 알면서 위험한 물건을 왜 가지고 노냐고 꾸중하며 사고가 일어나지 않음에 감사하고 다행이라고 여기는.

그린피스에게 위험한 빈 캔을 현관문으로 쓰게 한 것도 결국은 나다. 환경호르몬이 어마어마하게 나오는 폐타이어에서 편하게 목욕을 하게 만든 것도 나다.

 

그런데 그린피스는 행복해 보인다.

앉을 때마다 또로롱 이쁜 소리가 나는 피아노 소파.

심심할 때 마다 읽을 수 있는 많은 신문전단지 책.

체력을 길러주는 운동방에 있는 세탁소 옷걸이와 바람 빠진 비치 볼.

알록달록 너무 이쁜 각양각색의 유리병들은 소중한 보물이다.

그리고 따뜻한 털장갑은 포근한 침대가 되어주고.

    

그린피스는 계속계속 방을 더 만들어 방마다 온갖 물건들, 다양한 보물들을 모아두고 싶은 행복한 꿈을 꾼다. 그린피스에게 쓰레기는 쓰레기가 아니고, 인간이 버린 쓰레기를 가치 있는 다른 용도의 물건으로 사용하고, 버리는 게 수가 아님을 몸소 보여준다.

 

쓰레기로 가득 찰지도 모를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는 건 실은 아무 소용이 없다.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행동들. 지금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일회용 사용하지 않기, 재활용하기 등을 하고 있다. 얼마 전에 재활용업체들이 비닐을 수거하지 않는 바람에 일주일 정도 비닐대란(대란은 너무 무서운 프레임을 안겨주는 단어다)이 일어났던 건, 시작일 뿐이다.

결국엔 인류가 멸망한 뒤엔 쓰레기로 뒤덮인 시기는 40억 살 정도의 지구에게는 아주 잠깐의 힘든(?)시기였을지도 모르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은 더 이상 자신들의 이기심으로 다른 종족에게 피해를 주진 않아야 한다. 넘쳐나는 쓰레기와 무분별한 개발로.

 

미니멀리즘. 줄이고 줄여서 딱 필요한 것들만 가지고 사는 삶이 유행이다.

안 쓰면 버리고 필요하면 또 사는 겐 아니라, 버린 이상은 불필요하다고 판단한 이상은 없이 살 수 있는 삶을 사는 게 미니멀리즘이라고 본다.

이가 없으면 잇몸처럼, 과소비는 흥청망청 사들이는 이들에게만 적용되지 않고 우리 대다수가 그러고 있지만 모를 뿐이다.

넘쳐나는 재화들 속에서 풍요를 지속적으로 누리는 길은, 소중하게 여기며 아껴쓰고, 오래쓰고, 나눠쓰고, 고쳐쓰고, 바꿔쓰고. 지금은 내 것이지만 언제든지 누구의 것이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사용하면 어떨까 싶다.

 

그린피스의 이름을 보자마자 환경단체인 그린피스(Greenpeace) 가 떠 오른 건 작가가 대놓고 사용한 의도임을 알면서도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는 데엔 반박할 수가 없다. 그럼 나도 그린피스처럼 살아볼까? 두 그린피스 중 어느 거라도....

 

 

 

이 글은 시공주니에서 제공된 도서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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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잡았어!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257
데이비드 위즈너 지음 / 시공주니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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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잡았어 I Got It - 데이비드 위즈너                                                    
        
 
 

 

난 잡을 수 있어.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부모의 끊임없는 격려? 믿음?
무한한 실패에서 깨닫는 힘?
힘들고 어렵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할 수 있는 힘은 자존감이다.
스스로를 믿고 용기를 가지고 도전할 수 있는.

아이는 바라본다.
주저주저 무리의 곁을 맴돈다.
친하지 않아서인지, 붙임성이 없어서인지, 실력이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알 수 없지만 망설인다.

인원이 부족해서인지,
아이의 맘을 조금이라도 알아봐 줬는지 무리는 아이를 끼워준다.
포지션을 지정받고 신이 나서 달려간다.
야구광은 아니지만 중견수(?) 정도로 보인다. 뒤에 외야수들이 서 있는 것으로 봐서.
상대팀 타자가 힘차게 받아친 공이 아이 쪽으로 날아온다.
쉽게 잡을 수 있는 듯한데 그만 나무뿌리에 발이 걸려 넘어져 버린다.
상대팀은 좋아하고 같은 팀원들은 속상해하기도 창피해하기도 한다.
또다시 기회가 왔다. 공은 아이 쪽으로 날아오고 이번에는 정말 잘 잡을 수 있을 듯한데,
어마어마하게 큰 나무 기둥이 앞을 가로막아 놓치고 만다.
이쯤 되면 야구장에 웬 걸림돌이 이렇게 많지 싶은 게 이상하다.
아이가 걸려 넘어진 건 실은 아이의 불안이다.
놓칠 수 있다는 보이지 않는 불안감이 장애물을 만들어 냈다.
실재하는 장애물은 눈으로 보고 피할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불안이 가져오는 장애물은 더 피하기가 어렵다.
이제 날아오는 공은 열기구만큼이나 커졌다. 불안이 자신감을 잡아먹고 간이 콩알만 해 진 형국이다.
두렵고 무서운 마음에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 버릴 만도 한데,
다시 용기를 끄집어 내어 도전한다. 멋진 녀석^^

그리고 결국은 해낸다.
내가 잡았어!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끊임없이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아이의 얼굴은 밝다.
웃고 있는 모습에서 우리는 밝은 미래가 보인다.
즐기고 행복해하는 모습에서 아이의 성장이 보인다.
함께 즐기고 있는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이기고 지고, 상관없이 그저 함께 달려나가는 이 순간이 좋다.

처음부터 아이 곁에서 응원하듯 함께 하던 새들도 힘차게 날아오른다.
지켜봐 주고 응원하고 불안한 마음을 알아주는 새들은 불안과 반대에 있는 용기의 상징이지 않을까.
타자가 친 공이 포물선을 그리고 날아가 수비수의 글러브에 잡히기까지는 실은 길어야 10초를 넘기지 못한다.
정식 야구장이 아닌 동네 아이들이 뛰어놀 듯하는 운동장이라면 더 좁을 테고.
그 짧은 찰나의 순간.
불안하고 두렵고 무섭지만 용기를 가지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아이에겐 100초보다 더 길지도 모른다.
어쩌면 순수한 아이라서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은 용기로 도전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실패해도 게임에 져도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니까.
중요한 건 이기고 지는 게 아니니까.
친구들과 어울려 뒹굴고 깨지고 땀 흘리고 웃고 즐기는 게 소중한 거니까.
 

인종도 다르고 외모도 다르고 성별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지만 문제 될 건 없으니까.
모두가 그저 함께 야구를 하고 싶은 아이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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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오리와 생쥐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251
존 클라센 그림, 맥 버넷 글, 홍연미 옮김 / 시공주니어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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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클라센이 그리고 맥 바넷이 글을 쓴 새로운 작품.

콜라보의 시너지를 가장 잘 끌어내는 작가들이 아닌가 싶다.

벌써 둘이서 함께 작업해서 만든 책으로 칼데콧상을 두 번이나 받다니.

나보다 나를 더 잘아는 파트너인가 보다.

 

그림책 공부를 하고나서부터 책의 물성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겼다.

아이들이 휴대하기가 편한 건 페이퍼백이지만 한국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양장본이 많다.

그래서 겉표지의 물성은 대부분 비슷한데 속지의 질감에서는 차이가 많다.

늑대와 오리와 생쥐는 스케치북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린 듯한 수채화 느낌이다.

지문이 묻지 않는 종이의 질감도 그림이 주는 느낌을 더 잘 받쳐준다.

몇 번 만 더 덧칠하면 구멍이 뽕 하고 날 것 같은 배경의 느낌도 정겹다.

우리집 2번이 좋아하고 즐겨하는 스타일이라 더욱.

  

  

늑대와 오리와 생쥐는 동거 아닌 동거를 하게 되었다.

동거보다는 집주인과 세입자의 관계인가?

쌍방계약에 의한 관계는 아니니 불법점거라고 봐야하나?

 

포식자와 피식자인, 자연에서는 함께 할 수 없는 동물들이 주인공이다.

늑대는 오리와 생쥐를 잡아 먹었지만 오리와 생쥐는 먹히지 않은 아이러니.

자연스레 호랑이 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 수 있다는 격언이 떠오른다.

자신이 처한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최선의 선택(?)을 한 오리.

그런 오리에게 탐복하고 함께 행동(?)하기로 한 생쥐.

더 나아가 현실을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행동에 돌입한 둘.

  

  

사실 엔딩에 깊이 공감하지 못했다.

이동의 자유가 없는 안정된 삶이냐.

이동의 자유가 있는 불안한 삶이냐의 기로에서 나라면 두려움을 안고서라도 자유를 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번이 다가와 이렇게 말해준다.

‘“상상력!! 상상력을 잊지마요.”

작가는 상상력으로 책을 만드니까 상상을 하지 않으면 이해하기도 힘들다고.

 

그림책을 읽으며 주인공의, 화자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게 아직도 좀 어렵다.

머리로는 그렇게 해야지 하면서도 마음으로는

나라면 안 그럴텐데..’

나는 이해가 안되네. 왜 저런 선택을 하지?’

나라면 절대 저러지 않을텐데..’

나라면이  잘 버려지지가 않는다.

1번의 충고를 깊이 되새기며 다시 한 번 그림책에 코를 박아본다.

읽고 읽고 읽고

내가 늑대가 되고

오리가 되고

생쥐가 될 때 까지

 

 

이 글은 시공주니어에서 기증받은 도서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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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하얀 집 비룡소 창작그림책 62
이윤우 지음 / 비룡소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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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할머니와 하얀 집 - 이윤우

 

 

 

알록달록 숲속 한가운데 눈처럼 하얀 집에 사는 할머니.
벽도 바닥도 가구들도 온통 하얗다. 거기에 고양이도 하얗다.
할머니는 하얀집이 더러워 질까봐 아무도 초대하지 않았고 외출도 하지 못했다.
사라진 고양이를 찾으러 나갈 수도 없었다.
몇일만에 나타난 하얀 고양이는 얼마 후 새끼 고양이들을 낳았다. 알록달록 세마리를.
아빠가 누구길래 알록달록일까 순간 궁금해짐^^

  
새하얀 집을 새하얗게 유지하기 위해 언제나 쓸고 닦던 할머니에게 새끼 고양이들은 그야말로 불청객.
종일 어지르고 할머니는 치우고 하루가 금새 흘러가고 곯아떨어지기 일쑤다.

누구를 위한 삶이었을까?
할머니는 하얀 고양이 한마리와 함께 조용히 평화롭게 지내던 예전에도 행복한 얼굴을 아니었다.
깨끗한 집에서의 삶은 행복했을까?
더러움과 깨끗함의 경계는 너무 주관적이다.
깨끗함과 더러움의 판단 역시 너무 주관적이다.
매일 밤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청소기를 돌리는 윗집 아낙도 할머니 같다.
웃는 얼굴을 못 봤네 그러고 보니. 윗집 아낙도 행복해 보이진 않다.


깨끗하면 좋다.
그렇지만 삶의 목적과 가치를 혼동해서는 안된다.
깨끗한 집에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면서 청소를 하는 시간이 죽도록 힘겹다면 행복한 걸까.
이웃이 놀러오고 이야기를 나누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마음까지 나누게 된다.
집은 더러워진다.
그러나 행복하다면 청소쯤이야 조금 덜, 더 하면 어떠리~

나는 어떠한가.
나는 삶의 규칙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다.
할머니는 고작 청소뿐이지만.
나는 삶 전체에 내가 정한 틀이 있고 그것이 깨어지는 것을 참을 수 없어한다
내가 왜 늘 화가 나 있을까? 우울증일까? 삶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져서 일까? 사회적 성취감을 느낄 수 없어서일까?
아니었다.
어디에서건 그 틀이 깨어지면 난 화가 나고 그 틀을 깨는 이들에게 화를 냈다.
그런 나 자신의 모습을 최근에야 발견 아니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새끼 고양이들과 부대끼며 행복을 알게 되었다.
자연스레 인생에 있어서 뭐가 중요한지를 알게 되고 그토록 깨끗함을 유지하던 집을 내어준다.
공유하게 된다. 웃음을 짓게 된다.

나는 아직 할머니처럼 변하지 못했다.
늘 뒤치닥거리중이다. 감정의 처리, 물건의 처리,
생각의 변화는 종이 한장 차이인데
표지의 할머니의 표정이 거울을 보는 듯 해 씁쓸하다.

나의 틀을 깨고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고 싶다.
살아온 환경과 시간의 영향이 너무 크지만 할머니도 해내셨는데 나도 해보자.
알록달록 이쁜 집에서 모두 함께 뒹굴 수 있는 그날을 나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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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고양이 검은 고양이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253
기쿠치 치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시공주니어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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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검은색 옷이 많다.
검은색이 주는 무난함은 옷을 잘 입지 못하는
패션테러리스트에 가까운 나에게는 선물과 같다.
검은색은 어떤 색과도 섞이지 않지만
어디에든 녹아든다.
검은색은 튀지 않지만 숨을 수는 없다.

반면에 흰색 옷은 얼마 없다.
흰색이 주는 깨끗함, 순수함을 좋아하지만
흰색 옷에 무언가 다른 색이 묻는다면 그건 최악일 것이다.

흰색옷도 검은색 옷처럼 무난함을 주지만
자주 입지 않는 이유다.
어떤 색과도 다 잘 어울리면서 어디에든 녹아든다.
흰색옷은 튀면서 튀지 않는다.

기쿠치 치키의 [흰 고양이 검은 고양이]에 나오는 고양이는 서로를 존중한다. 있는 그대로
흰 고양이로, 검은 고양이로 바라보며 좋아한다.
나보다 희여서 나보다 검어서가 아니라
그냥 너라서 좋아한다.
이유없는 조건없는 사랑같다.


나도 검은 고양이에 대한 편견이 있다.
어른들은 검은 고양이가 요물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에는 요물이 뭔지 몰라도
부정적인 느낌을 받았고
자라면서 요물의 뜻을 알게 되니
그냥 검은 고양이가 무서웠다.

가까이 하기 싫고 온 몸이 까맣고 눈동자마저 까만,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정이 불편했다.
단 한 번도 왜?라고 생각하고 찾아보지 않았다.
그랬다면 적어도 검은 고양이를 좋아하진 않아도 싫어하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가끔 타고난 나의 어떤 부분이 싫을 때가 있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키가 컸던 나는 키만 크다는 말이 듣기 싫었다.
큰 키를 장점으로 살릴 수 있는 모델이나 운동선수가 아닌 이상, 큰 키는 컴플렉스였다.

뒤통수에서 들려오는 키가 크다는 낯선 이들의 수군거림은 들어도 들어도 적응되지 않았다.
얼마 전에도 쇼핑을 마치고 계산을 하기 위해 카운터에 줄을 섰는데 낯선 남자 둘이 나의 키에 대해 즐거운 담화를 나누기 시작하셨다.
그러려니 하려다 또 갑자기 울컥하며 차로 돌아와 남편에게 하소연했다. 담담하게 별일 아닌 것 처럼.
그 때 늘 남의 편이던 남편이
"키 큰 사람 본 적도 없나 저 녀석들은. 어디서 사람 외모를 가지고, 모자란 것들"
이라고 툭 던지는데 어찌나 위로가 되던지.
남의 편이 아니어서 좋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새삼 깨닫게 되어 행복했다.

검은 고양이도 그런 내 마음과 같았을텐데.
그건 내 의지로 어찌할 수 없고 그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고 위로하면서도
'어쩌라고? 이렇게 타고 난 걸..그건 나쁜 것도 아니고 죄도 아닌데..'
이라며 속상할 수 밖에 없었을텐데.
세상의 편견과 이유없는 미움에 마음을 다친 걸 텐데..

내가 검은 고양이가 아니라고
내가 검은 고양이를 검다고 뭐라했다.
그런데 나는 검은 고양이다.

미안해 검은 고양이야..
진심으로..
이제는 행복하게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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