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잔상들
장혜령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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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정말 좋다! 장혜령 작가한테 반해버렸다. 재작년 숨도에서 열린 김연수 강연에서 장혜령 작가가 사회를 맡았는데, 그때 독자들의 질문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해서 전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정말 시인 같았다.) 그 후 그가 소설리스트의 'JUNE'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뒤로 넘어갈 뻔 했다. 블로그에 옮겨적었을만큼 그 분의 글을 좋아했었으므로. 이 책은 그 애정으로 출간되자마자 산 책인데 이제야 읽게 됐다.

 

강연에서 만난 그의 인상만큼이나 글도 사려 깊다. 그가 책과 영화, 사진 등을 통해 보고 들었던 사랑에 대한 이미지들을 옮겨놓았다. 어쩐지 글을 읽는다는 느낌보다는 작가가 사려 깊게 옮겨놓은 장면들을 구경하는 느낌이다. 작가가 보여주는 서로 다른 이미지들이 겹치고 이어지는 느낌이라 마치 짜임새가 훌륭한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작가는 덧붙이는 글에 이렇게 썼다. "내가 느낀 것을 쓰는 게 아니라 내가 본 것을 씀으로써 읽는 사람이 그 장면을 느낄 수 있으면 했다. 보는 것은 나이지만, 내 감정을 지우고 이미지를 남길 때 그 표현은 비로소 시에 가까워졌다." 읽다 보면 작가가 고치고 또 고쳐 쓴 문장이라는 게 느껴진다.

 

어서 빨리 그의 소설 <진주>도 읽고 싶다. 그 책은 8월에 기록에 남기게 될 것 같다.

 

아래는 책에 등장하는 레퍼런스들. 미처 옮겨적지 못한 것도 있는데, 아래에 있는 것도 다 읽을 수 읶을지 모르겠다..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카슨 매컬러스 <슬픈 카페의 노래> 
피에르 바야르 <예상 표절>
쓰시마 유코 <나>
크리스토프 바타유 <다다를 수 없는 나라>
한강 <희랍어 시간> -> 유일하게 읽었지만 (^^;) 재독하고 싶어서.
필립 퍼키스,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
토니 모리슨 <재즈>
파스칼 키냐르 <은밀한 생>
유미리 <물가의 요람>

죽는다는 것은 더는 비밀을 봉인할 무덤이 남지 않는 때가 온다는 말 아닐까. 그 말은 그만큼 많은 기억의 무덤들이 우리 몸에 들어차 있다는 뜻도 되지만 어떤 것도 봉인할 필요가 없어지는 순간이 온다는 뜻도 된다. 그때는 죽음이 우리를 찾아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죽음을 향해 들어선다. - P86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에는 빛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필립 퍼키스는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를 다니던 대학 시절, 세 시간 동안 빛이 변하는 것만을 바라보았던 사진 수업에 대해 쓴다. 해가 저물어가던 강의실 안에서 사람들의 목소리, 분위기, 어조, 그 모든 것이 신의 뜻처럼 그에게 다가왔다. 그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대상을 명명하지도, 사랑하지도, 증오하지도 말고 그저 빛이 표면에 머물러 있는 그 순간만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그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 P125

작가의 글쓰기는 밝은 탁자 위에서 이뤄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세상과의 단절, 고독이라는 깊은 어둠을 거쳐서만 비로소 그것은 나타난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문장들은 단숨에 우리의 시선을 낚아채지만 어떤 문장들은 서서히 그 속에 스며들 것을 요구한다. 그런 세계에 들어서기 위해 우리가 견뎌야 하는 것은 어둠이라는 시간이다.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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