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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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스노우볼 굿즈에 눈이 멀어 사게 된 책. 올리브 키터리지라는 여인에 관한 이야기다. 올리브는 커다란 덩치의, 한 번도 미안하다는 말을 한 적 없는 괴팍한 성정의 인물이다. 오랫동안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다. 제목만 보면 올리브의 이야기로만 진행될 것 같은데 그렇진 않다. 13개 단편 중 올리브나 올리브와 가까운 인물인 남편, 아들의 이야기는 서너 편에 불과하고 그 외는 바닷가 마을 크로스비 주민들의 삶을 다뤘다. 이들은 올리브와 관련이 있기도, 없기도 하다. 누군가에게는 7학년의 무서웠던 수학 선생님, 누군가에게는 마음씨 좋은 헨리의 괴팍한 아내.. 같은 식으로 기억되는 식이다.

처음엔 올리브가 책 속의 숨은 히어로인 줄 알았다. 겉보기엔 쌀쌀맞고 괴팍하지만 사실 따뜻한 마음을 숨기고 있는, (마치 오베라는 남자의 오베 같은) 삶에서 얻은 지혜로 모두에게 위로를 주는 인물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올리브에게 남은 건 결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는 후회뿐이다. 올리브가 노년에 이르러 느끼는 회한이 숨 막히도록 절절하다. 특히 아들 크리스토퍼가 있는 뉴욕으로 가서 사흘을 머무는 내용의 단편 <불안>이 압도적이다. 온통 난잡한 집안, 안 본 사이 묘하게 수다스러워진 크리스토퍼, 맹해보이는 아들의 새 아내 앤.. 그 속에서 올리브가 느끼는 불안과 혼란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문장을 옮기려고 인덱스 해 놓은 부분들을 다시 보는데, 모조리 올리브에 관한 부분이어서 올리브가 확실히 강렬한 캐릭터구나 생각했다. 물론 다른 단편들도 재밌지만.

흡입력 있는 장편만큼 독서에 흥미를 붙이기 쉬운 것도 없는 것 같다. 정말 재밌는 장편 소설.

두 사람은 결혼 초기에 많이 싸웠다. 올리브가 지금처럼 지긋지긋해하는 싸움도 많았다. 하지만 결혼 후 어느 시기가 되면, 어떤 종류의 싸움은 더는 하지 않게 된다고, 그 이유는 지나온 날이 남아 있는 날들보다 더 많아진 시점에서는 사물이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올리브는 생각했다. - P221

또한 가고 싶으면 가라고 헨리에게 말했다고 해서 그가 죽으리라고 생각한 것도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세상에서, 이 이상하고 불가해한 세상에서 그녀는 자신이 대체 누구라고 생각했던 걸까? 올리브는 옆으로 돌아누우며 무릎을 가슴까지 끌어당기고 트랜지스터라디오를 켰다. 튤림을 심을 것인지를 곧 결정해야 할 것이다. 땅이 얼어버리기 전에. - P293

매일 아침 강변에서 오락가락하는 사이, 다시 봄이 왔다. 어리석고 어리석은 봄이. 조그만 새순을 싹틔우면서. 그리고 해를 거듭할수록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런 봄이 오면 기쁘다는 점이었다. 물리적인 세상의 아름다움에 언젠가는 면역이 생기리라고는 생각지 않았고, 사실이 그랬다. 떠오르는 태양에 강물이 너무 반짝여서 올리브는 선글라스를 써야 했다. - P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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