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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를 놓는 소년 ㅣ 바다로 간 달팽이 24
박세영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23년 10월
평점 :
아직까지 명절 때마다 부엌에 남자가 들어가면 안 된다는 할머니가 존재한다. 조선시대 유교가 국교이자 통치이념으로 자리잡은 이후 성에 따른 고정관념이 더욱 확산되어서 남아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수를 놓는 소년'은 병자호란이 일어난 17세기를 배경으로 하는데 여성이 하는 일인 수를 남성이 한다는 것 자체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책 <수를 놓는 소년>은 병자호란이 일어난 이후인 17세기 초중반을 시대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우리는 병자호란으로 인해 겪은 아픔이라고 하면 삼전도의 굴욕이 대표적으로 생각난다. 그러나 인조는 삼전도의 굴욕에서 머리에 피 좀 난 게 다인 반면, 조선인은 청나라에 끌려가 노예 생활을 하였다. 수를 놓는 소년도 바로 청나라에 끌려간 노예 중 한 사람이었다.
“너는 왜 수를 놓느냐?”
“예?”
난데없는 질문에 윤승은 자기도 모르게 서 사부를 마주 보았다. 서 사부는 등을 의자에 기대고 느긋하게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왜라니요? 윤승은 눈으로 그렇게 되물었다. 윤승의 기억 속에서 외할머니는 늘 수를 놓았고, 엄마도 어지간해서는 손에서 바늘을 놓은 적이 없었다. 그다음 차례는 누나였고 누나가 아픈 뒤로는 윤승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누구도 왜 수를 놓는지 말한 적이 없고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윤승의 가족은 언제나 수를 놓았다. 수를 놓아야 돈을 벌고 그래야 먹고 살 수 있었으니까.
“질문이 어려우냐? 그럼 이렇게 묻겠다. 너는 무엇을 위해 수를 놓느냐?”
머릿속에서 누나와 엄마, 외할머니 얼굴이 빙빙 돌았다. 윤승은 애꿎은 수틀 가장자리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한참 동안 대답할 말을 찾았다.
“엄마와 누나가 언제나 수를 놓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수를 놓았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이, 이렇게 말하고 나니 몹시 궁색하게 들렸다.
“가족을 위해서? 그러면 지금은> 편지에 조선에서 왔다고 쓰여 있던데, 여기에 가족이 있느냐?”
돌아가신 부모님과 헤어진 누나를 생각하자 순식간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럼, 여기 온 다음에는 무엇을 위해 수를 놓았느냐?”
무엇을 위해서였을까? 여종 아이를 구하려고? 진씨 부인의 명령 때문에? 세자빈마마의 은혜를 갚으려고? 세 가지 모두 맞는 것도 같고 또 어떻게 생각하면 그중 어느 것도 답이 아닌 것 같았다. - p.116 line 8 ~ p.117 line 18
청나라는 한족이 아니라 야만족이었다는 이유로 조선인 무시하였다. 실제로 그랬는지 관계없이 청나라는 성에 구분 없이 수를 놓을 수 있었다. 그와 더불어 가장 마음에 들었던 구절인데, 이 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나는 여기에서 찾았다. 소년이 왜 수를 놓는지 처음에 알지 못하였다. 단순히 살기 위해서 수를 놓았다. 그러나 왜 수를 놓는지 찾아가는 과정에서 현재의 우리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