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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 진화하는 페미니즘
권김현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19년 10월
평점 :
1. 들어가며
나는 사실 미투 운동이 대한민국 사회에 가져다 준 영향을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미투 운동이 시작된 2018년 2월, 나는 입대를 했다. 군대 자체가 사회와 단절된 공간인데다가, 사회의 소식을 가장 접하기 힘든 훈련병과 이등병 때 미투 운동이 대한민국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남자로서 페미니즘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학문이 아니다. 그리고 페미니즘을 제대로 공부한 적도 없다. 하지만 현재 남성 중심의 가족 구조에서, 나아가 남성중심 사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남성을 중시하는 유교가 조선의 국교처럼 여겨졌고, 시대가 변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사회에 많은 남성주의가 남아 있다. 이는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가치에 어긋나기 때문에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
사실 남성이 페미니즘에 반감을 갖는 가장 큰 이유는 페미니즘이 여성 우월주의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사실 페미니즘 단체 중 여성 우월주의가 있다는 점은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단체가 여성 우월주의는 아니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자체는 여성주의로 해석할 수 있으나, 남녀평등을 위한 하나의 사상으로 이해해야 한다.
만약 페미니즘에 대하여 아예 모르는 사람이 읽으면, 반드시 불편하다. 하지만 페미니즘을 주장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왜 그들은 페미니즘을 주장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물론 대부분의 남성이 남성우월주의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한 바는 없을 것이다. 과거부터 그래왔거니 해서 당연하다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 적어도 내 서평을 읽고 나서는 한번 쯤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2. 좋았던 구절
평소에 정의를 외치던 사람들조차 왜 이런 동영상을 공유하는 것에는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을까. 수치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수치심을 잃은 인간은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아버지를 움직이게 한마음은 수치심과 정의감이었다. 수치심은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게 해주고, 정의감은 더 나은 인간이 되도록 해준다. 둘 중 하나라도 없으면 잘못된 일을 바로잡을 수 있는 용기를 내기 어렵다. - p.33 line 22 ~ p.34 line 6
상대를 걱정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대하는 사람은 정중하게 행동하고, 조심스럽게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지 묻고, 필요 없다고 거절하면 즉각 물러난다. - p.36 line 5~7
왜 사람들은 피해 의식이 생기는 걸 두려워할까. 우리 사회에서 '피해 의식'은 '남 탓을 한다'라는 말과 동의어로, 보통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이건 과대망상이나 남 탓하기라는 문제 행동을 피해자에게 뒤집어씌우는 일이다. 이런 덧씌우기는 피해자가 '건강한' 피해 의식을 가지는 걸 방해한다. 피해 의식은 사전적 의미를 바탕으로 해석하면 이렇다. 첫째, 피해자는 문제의 발생 원인이 아니다. 둘째, 피해자는 문제의 발생을 막을 의무가 없다. 셋째, 피해자는 권리를 침해받은 자로서 공감 받을 자격이 있다. 이렇게 피해 의식을 이해하면 문제는 간단해진다. 없어져야 할 것은 피해 의식이 아니라 피해자를 비난하는 문화다. 두려워해야 할 것은 피해 의식 때문에 재미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비슷비슷한 영화만 보고 그 익숙함을 재미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 p.61 line 6~17
십 수 연간 토론 수업을 해본 결과, 반드시 필요하다고 실감한 규칙은 다음 두 가지였다.
첫째, 토론할 거리가 아닌 건 토론하지 않는다. 주제를 토론할 수 있도록 재가공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둘째, 토론 상대가 원하는 것이 토론이 아니라 공격이거나 '장사'일 때는 토론하지 않는다. - p.65 line 15 ~ p.66 line 5
내 생각도 같다. 이것이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짓누르는 억압에 대해 오랫동안 입을 다물었던 이유다. 여성들이 자신이 겪은 문제에 대해 직접 목소리를 내면 내부 총질을 하지 말라, 공작정치에 이용당하지 말라는 성마른 충고를 힘주어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여자의 전쟁은 언제나 내전이었다. 친밀한 사이인 가족과 애인이, 여전히 충성심이 남아 있는 공동체 안에서 신뢰하는 동료가 바로 자신의 가해자다. - p.71 line 12~18
선거권 연령을 하향하고, 여성의 정치 참여가 늘어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참고로 고이케 유리코는 평화 헌법을 부정하고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희생자를 위한 추도문 작성을 거부한 극우 인사다. 극우에 관심을 가진 젊은 층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여성과 청소년의 정치 참여 확대는 그 자체로 특정 진영의 유불리로 계산할 수 없다. 급진좌파 페미니스트부터 극우 민족주의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치적 색깔을 지닌 이가 더 많이 등장할 것이다. 그럼에도 더 많은 이가 투표권을 가지게 되는 것, 과소대표 되었던 여성이 더 많이 정계에 진출하는 것 자체가 진보적 가치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실질적 민주주의는 평등한 참여가 보장될 때 가능하고, 민주주의의 정치적 효능감은 공론장의 수준이 달라질 때 경험할 수 있다. 선거권 연령 하향과 성 평등 민주주의가 중요한 이유다. - p.95 line 4~16
인간은 타인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자신의 힘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는 상황을 겪는 인간이 가장 처음으로 느끼는 공포는 바로 타인에 대한 공포다. 내가 곤경에 처해 있는데 아무도 나를 돕지 않거나, 자격이 없다면 내가 속한 사회에서 하루아침에 뿌리가 뽑혀버리는 일은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보았을 매우 구체적이고도 원초적인 악몽이다. - p.139 line 1~6
슬픔과 애도의 의례는 언제나 살아남은 자를 위한 것이다. 죽은 이의 영혼이 아니라 죽인 자와 함께 살아가야 할 남은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는 일이다. 미처 알지 못했던 한 인간의 삶과 함께할 기회를 잃어버린 것을 애도하는 일이다.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되는 것이 아니다. 기쁨이건 슬픔이건 나누면 두 배가 된다. 그러니까 기쁨은 당사자가 가졌을 때 가장 순정한 기쁨을 오롯이 누릴 수 있고, 슬픔은 나눌수록 농도가 옅어진다. 그러므로 나눠야 하는 것은 기쁨보다는 슬픔 쪽이다. - p.147 line 14 ~ p.148 line 6
권력이 없는 자의 이야기에 대한 권력자의 신경증을 기억해 보자. 끊임없이 자기 고통을 늘어
놓는 환자, 두서없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노인, 공공장소에서 악을 쓰는 아이, 지나치게 예민한 여자...... 이 모두가 불러일으키는 지겹고 불쌍하고 약하고 짜증스러운 감정들은, 말할 수 있는 사람과 들어야 하는 사람이 권력관계에 따라 이미 정해졌으며 그 룰을 벗어난 사람들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보여준다. - p.155 line 1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