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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경제
조원경 지음 / 책밭(늘품플러스)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1997년과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우리 국민들의 경제에 대한 관심이 늘어서 대중적인 경제서들이 많이 출판되고 있다. 대중경제서는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경제이론과 현상을 얼마나 쉽게 풀어나가느냐가 관건인데, 쉽게 쓰는 것에 집중하느라 사실관계 자체가 흐려지거나, 매우 논쟁적인 주제를 한쪽 시각만 간단히 전달하고 마는 등 문제가 없지 않았다.
대중경제서들의 여러가지 시도 – 어려운 얘기를 쉽게 설명하기 위한 시도 - 중에는 아예 다른 장르를 차용하는 것도 있었다. ‘88만원 세대’로 유명한 경제학자 우석훈은 2012년 한국의 경제권력을 독점하는 경제관료들의 세계를 그린 ‘모피아’라는 본격 장르소설을 내기도 했고, 그 이전에도 수요, 공급 곡선이나 기회비용, 가격결정, 효용함수, 게임이론 등 경제학의 기본을 다룬 소설 형식의 책들이 종종 있었다. 이런 시도들이 경제와 경제학에 대한 거리감을 줄여주고 숫자에 찌든 기본개념에 대한 접근을 얼마간 도와주기도 했지만, 경제학적 깊이와 통찰이라는 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
그런데 며칠 전 현역 기획재정부 관료가 명작소설을 제재로 자신의 경제관을 피력하는 소설을 냈다. 보고서, 연설문 등 글 잘 쓰는 이로 관가에서 유명하다는 저자가 작심하고 쓴 본격적인 대중경제서다. 경제 관료들이 책을 내는 것이 그리 드문 것은 아니나, 은퇴 후에 회고를 하는 형식이 아니라 현역에서 한참 역동적으로 활동중인 관료가 쓴 책이라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양극화, 경제와 정치의 관계, 경제정책과 개인의 행복, 실업과 노동의 의미, 개발협력의 과제 등 다양한 경제 문제들에 대한 관련이론과 정책을 소개하고 저자 자신의 관점을 담았다.
그렇기에 소설이라는 장르가 주는 편안함은 한쪽으로 비켜서고, 읽는 내내 독자의 뇌는 긴장하게 된다. 책상에서 소파, 소파에서 침대로 이어지는 내내 5백 쪽이 넘는 내용이 지적 호기심을 계속 시험하며 긴장감을 유지한다. 심지어 재미있다!
개인적으로 책의 구성이 한때를 풍미했던 철학 입문서 ‘소피의 세계’와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작부터 주인공 소녀 소피에게 온갖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시대별로 등장하는 철학자들과 토론하며 답을 찾아가는 소설식 철학책. 저자는 남성 철학교사였다. 마찬가지로 ‘명작의 경제’에서도 주인공은 중년 남성 관료인 저자와 달리 젊은 여성 기자이다. 아마도 저자는 작품 속에서 보다 완벽한 변신을 통해 자신이 속한 현실을 떠나 더욱 깊이 있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듯 하다.
전체적으로 근래에 보기드문 수작으로 최고의 점수를 주고 싶은 책이다. 조만간 이 책 ‘명작의 경제’는 ‘경제의 명작’으로 통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마도 경제학 관련된 수업을 듣거나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로부터 주 독자층이 형성될 듯. 다만, 전세계를 넘나드느라 소개된 명작소설 중에는 우리에게 생소한 중남미, 중국 등의 작품들이 있는데, 본격적인 이해를 위해 이것들부터 읽어야 한다는 부담은 갖지 않아도 되겠다. 친절한 저자는 소재만 도입할 뿐 원작소설의 줄거리를 몰라도 이 작품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꽤 신경을 썼다.
사족이지만, 같은 노벨 경제학상(이라 불리는 왕립스웨덴은행상)을 받은 크루그먼과 스티글리츠를 비교해보면, 크루그먼이 월등하게 글을 잘 쓴다. 그런 명석한 두뇌에 글쓰는 재주까지 타고 나다니… 그러지 않아도 평소에 글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부러웠는데, 부러운 사람이 한 명 더 늘었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