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초 여성이 받았던 문학 수업은 기껏해야인물 관찰과 감정 분석뿐이었습니다. 여성의 감수성은 수 세기동안 공동 거실 안에서 영향을 받으며 훈련되었습니다. 사람의감정이 여성들의 마음에 인상을 남겼고, 인간관계의 양상이 항상 눈앞에 펼쳐졌지요. 그리하여 중산층 여성은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소설을 썼습니다. 이 유명한 네 명의 여성가운데 두 사람은 천성적으로 소설가가 아니었습니다. 에밀리브론테는 시극을 썼어야 했습니다. 조지 엘리엇은 변덕스럽게흐르는 정신을 역사나 전기에 활용해야만 했고요. 그러나 그들은 소설을 썼습니다. 나는 서가에서 ‘오만과 편견을 꺼내 들면서, 더 나아가 그들은 훌륭한 소설을 썼다고도 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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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을 모두 제거하고 나면, 여성은 이제 오직 그녀 자신이 됩니다. 또한 글을 쓰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 자신‘이란 무엇인가요? 그러니까 여성이란 무엇일까요? 확실히 말하자면 저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인간이 능력을 발휘하는 모든 기술 및 직업 영역에서 여성이 스스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여성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은 지금 여러분이 여기서 발견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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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반도와 일본이 단절되어버린 결과, 이 생활권이 분단된 것이라 지적한 바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제는 귀국할 수 없다. 그러 니까 정주다‘라는 편협한 논리는 ‘귀국이냐 정주냐‘를 성급히 강요하는 양자택일론의 연장선상 에서 나온 것이며, 그야말로 재일조선인의 자연 스런 생활에 반(反)하는 것이라 하겠다. 재일조선인은 역사적 경위에서나 보편적 인권의 측면에서나 ‘국경을 넘어선 생활권‘을 확보하고 주권자(네이션)로서 본국과 왕래하면서도 일본에서 정주외국인으로서의 권리들을 보장받아 마땅한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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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리아는 사람보다 먼저 고통을 느끼고 죽음으로써 위험을 알린다. 식민지배의 역사 때문에 일본 사회에 태어난 재일조선인은 말하자면 ‘탄광의 카나리아 와도 같다.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경고하는 역할을 역사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다. 비유컨대 나의 저술은 질식해가는 카나리아의 비명과도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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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기행 - 추방당한 자의 시선
서경식 지음, 김혜신 옮김 / 돌베개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재일조선인의 대다수가 일본 식민지배의 결과 의도하지 않은 채 이 나 라에서 태어났다. 때문에 이 나라의 언어밖에 모르고, 여기밖에는 집에 없 고, 여기밖에 직장이 없고, 여기밖에는 친구도 아는 사람도 없다. 다시 말 하면, 삶의 기반이 여기 외에는 없는 것이다. 어떤 때는 완곡하고 부드러운 말로, 어떤 때는 거친 목소리로 싫으면 나가라고 하는 말을 들어가면서, 그 래도 여기밖에는 살 곳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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