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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 뒤집어 쓴 도깨비 - 서정오 선생님이 들려주는 신기한 옛이야기
서정오 글, 최용호 그림 / 토토북 / 2011년 6월
평점 :
http://phillia0424.blog.me/80145986294
<똥 뒤집어쓴 도깨비>, 서정오, 토토북
"하늘복숭아 따면 제일 먼저 누구 줄~~까?"
우경숙

이야기와의 만남은 곧잘 아이들 상상력을 자극한다. 함께 입말로 말하고 듣는 이야기수업은 아이들과 만남을 더 값지고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자, 책상 위의 모든 물건을 치우세요" 하면 아이들은 "야! 이야기야 나오너라 시간이다!" 하며 함지박만한 웃음을 짓는다. 이야기 한 자락 꺼내어 함께 나누는 동안 아이들 마음과 내 마음을 충만한 일체감을 느낀다. 이 시간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는 드물다. 이렇게 아이들 기대가 높은 반면 내 이야기주머니는 늘 고만고만해서 늘 고민이다. 이야기주머니가 늘 찰랑찰랑대면 좋을 텐데 말이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이 하교하고 빈 교실에 있을 때 나는 '어디 아이들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재미난 이야기 없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올해 아이들과 나눈 중 기억에 남는 옛이야기는 <아기장수 우투리>, <팥이영감과 우르르산토끼>, <호랑이가 준 보자기>, '땅속나라 도둑괴물'(<세계민담전집1 한국편>), '저승사자 맞는 법(<세계민담전집1 한국편>)', '소원을 풀어주는 그림'(<옛이야기 들려주기>), '하늘에서 빌려온 복, 차복이 이야기(<세계민담전집1 한국편>)'와 같은 민담이나 우리 신화 '조왕신 여산부인과 문전신 녹두생이', '저승차사 강림도령' 등이 기억에 생생하게 남는다. 서정오 선생님이 입말체로 부려쓴 옛이야기는 오래 신어 딱 맞게 편한 신발처럼 익숙함을 준다.
서정오 선생님이 들려주는 신기한 옛이야기 스무 고개 <똥 뒤집어쓴 이야기>를 읽었다. 이 책에는 호랑이 이야기, 도깨비 이야기, 여우 이야기, 귀신 이야기, 저승 이야기, 신비로운 꿈 이야기, 신기한 물건 이야기, 하늘나라 이야기, 다른 세상 이야기, 원수 갚는 이야기 등이 실려있다. 기대감을 안고 책을 펼쳐 야금야금 읽으면서 금새 부자가 된 기분이다. 처음 읽을 땐 이야기에 흠뻑 빠져서, 두번 째 읽을 땐 아이들에게 이걸 들려주면 어떤 반응일까 하는 상상을 하면서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본다. 이건 흐린 날 교실 불을 끄고 블라인드까지 내려서 조도를 낮추어 긴장감 있게 들려주면 좋겠구나, 이건 옥상정원 정자에 모여 앉아 들어보면 어떨까? 이건 두 부분으로 나누어 이어질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을 주면 좋겠구나.
우선 '똥 뒤집어쓴 도깨비'(25~29쪽)이야기를 참 재미지게 읽었다. 옛이야기 주인공 중에는 '워킹 푸어(?)'가 많다.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나 늘 끼니 걱정 면하고 살기 힘든 백성. 그런데 이야기의 주인공인 가난한 농사꾼은 끼니 걱정만 걱정이 아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 해 두 해 흉년이 들고보니 나라 쌀을 꿔다먹게 되고 이리하여 빚이 자그만치 쉰 섬인 처지이다. 이만 하면 농사꾼의 사정을 돌아볼 리 없는 원님의 호령이 불 보듯 뻔하다. 가진 건 없고 나랏빚까지 쉰섬을 진 이 농사꾼에게는 무슨 뾰족한 대책이 있을까? 마침 서울미아리 도깨비가 이 가난한 농사꾼을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야기를 찾아읽는 독자의 즐거움을 위해 줄거리 스포일러(?)는 여기서 삼가겠다. 복은 정말 절실한 사람에게 절실한 순간에 찾아온다는 생각이 든다.
'하늘복숭아 따러간 총각'과 '하늘복숭아 따고 돌아온 새 신랑'(95~106쪽), 이 두 편은 연작이다. 어느 산골에서 눈먼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는 총각이 주인공이다. 눈먼 데는 하늘복숭아가 약이라 한다. 그리하여 총각은 하늘복숭아를 구하러 길을 떠나게 된다. 좋은 것, 귀한 것을 보면 늘 가족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천신만고 끝에 먹으면 눈이 밝아진다는 하늘복숭아를 얻은 총각은 이런 마음을 먹는다.
"이건 우리 어머니 드리고."
"이건 우리 임금님 드리고."
"이건 우리 백성들 드리고."
귀한 하늘복숭아를 눈앞에 두고도 욕심에 눈이 어두워지지 않는 총각이었기에 하늘복숭아 가까이 갈 수 있었을 법하다. 온나라 백성 중 눈먼 사람들에게 하늘복숭아를 나눠줄 마음을 절로 먹는 마음, 그 마음이 귀하다. 그나저나 하늘복숭아를 구하고 돌아온 다음에도 삶은 계속 되고 오히려 더 큰 위기가 찾아온다. 하늘복숭아 따고 돌아온 새 신랑은 임금님이 내리는 3단계 미션을 해결해야만 하는 처지가 된다. 결혼한 이후에 위기를 해결해야만 하는 신랑은 '우렁각시'의 신랑, '나무꾼과 선녀'의 신랑도 그렇다. 다행히도 신랑은 조력자들의 지혜를 빌려 무사히 위기를 넘긴다. 총각을 위해 지혜를 모을 사람이 셋이나 총각 가까이에 있다는 것도 참 감사한 일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지극한 마음 그뿐이 아닌가!
값진 옛이야기 새로 엮어 책으로 펴내주신 서정오 선생님께 늘 귀한 자극과 영감을 받는다. 새로 알게 된 이야기 중 '하늘복숭아 따러 간 총각 이야기를 다음 주에 우리 반 아이들과 나누어보고 싶다. 또, 옛이야기 가치 알아보고 즐기는 수업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 남부모임 선생님들과도 나누고 싶다. 무엇보다 우리 딸아이에게 오늘밤 도란도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이다.